“우리나라가 연간 R&D에 투자하는 비용이 19조원입니다. GDP 대비 R&D 투자비용이 세계 1위죠. 그런데도 우리는 2014년 4월 고등학교 2학년 학생 300명이 바다로 가라앉는 것을 막아내지 못했어요. 왜 국가는 연구개발에 수많은 돈을 쏟아 부으면서도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까?”

한양대 산학협력단 R&SD 전략센터 송기민 부센터장의 말이다. 최근 사회문제 해결형 R&D 사업 토론회에 참석한 그는 과학의 역할을 물었다.정부는 과학기술 발전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부었음에도 가장 기본적인 역할인 국민안전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의 지적은 세월호 사고에 대한 대통령의 책임을 묻는 질책이 아니었다. 과학기술에 투자하는 정부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었다.

생각해볼 여지가 많은 얘기였다. 한국은 천연자원이 없는 나라다. 인적자원이 국가경쟁력이라 믿었고, 그중에서도 과학기술 인력에 대한 투자는 아끼지 않았다. 우리에겐 맹목적인 신뢰가 있었다. 과학이 발전하면 산업이 발전하고, 이를 통해 국민의 삶이 윤택해질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 믿음은 조금씩 깨져가고 있다.

이런 공감대가 확산되며 조금씩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최근 정부는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주도로 사회문제 해결형 R&D 사업을 추진중이다. 연구 주제는 생활 밀착형이다. 야간작업자를 위한 발광형키트 개발, 반지하 거주자를 위한 습기 제거 방안, 층간소음 해결, 사람을 감지하는 신호등 시스템 개발 같은 것들이다. 처음 이 사업이 나왔을 당시 연구자들 사이에선 볼멘소리가 나왔다. 이렇게 ‘사소한’ 사업에 R&D 예산을 나눠주는 게 못마땅하다는 얘기다. 과학자들은 기후문제처럼 ‘지구를 구하는’ 엄중한 연구를 해야 한다는 인식도 있었다.

첫 사업이니 예산이 충분한 것도 아니었고, 연구자들 입장에선 일부러 할 이유도 없었다. 그래도 몇몇 연구자들이 나섰다. 자신이 국가로부터 받았던 수혜를 사회에 환원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연구는 실험실 안에서만 이뤄지지 않았다. 야간작업자들을 위해 발광형키트를 개발한 교수는 자신이 개발한 제품을 들고 작업자들 찾아가 피드백을 받았다. 옷을 입어본 작업자들은 답답하고 착용감도 나쁘다며 면박을 주기도 했다. 연구를 마친 교수는 이렇게 말했단다. “이 연구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면 미처 알 수 없었 것들을 정말 많이 배웠다”고. 

의미 있는 변화다. 과학기술에 대한 관점이 달라져야 한다. 물론 산업 차원에서의 연구도 중요하다.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재정 투입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정부가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국민안전과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과학기술이다. 이는 민간에서 투자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오로지 국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이고, 또 해야만 하는 일이다. 과학기술의 역할에 다시금 질문을 던져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