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지의 반도체 대기업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한국산업은행, 한국성장금융과 함께 한국 반도체산업 생태계 강화를 위해 2000억원 규모의 ‘반도체 희망펀드 투자협약 양해각서(MOU)’를 지난달 29일 ‘반도체의 날’ 행사에서 체결했다. 사업다각화와 인수합병 등을 통해 국내 반도체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게 이번 협약의 골자다. 출자기관과 반도체 전문가 등이 자문단을 구성해 중소 반도체 설계·제조·장비·소재·부품기업, 센서·임베디드 소프트웨어기업을 대상으로 유망기업을 발굴한다. 이후 수요처를 연계해주는 역할도 맡을 예정이다. 대내외 수요감소와 중국진출 등으로 위기에 직면한 국내 반도체산업에 새로운 전기가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는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70% 이상을 점유했다. 1960년대 후반 외국기업의 조립생산으로 시작했던 반도체산업이 우리나라 단일품목 수출 1위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 반도체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선 고작 6%대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메모리반도체가 과감한 투자와 대규모의 연구개발 그리고 생산공정의 효율을 기반으로 성장하는 반면 시스템반도체는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설계능력이 경쟁력이다. 어찌보면 중소기업에 적합한 아이템일 수 있지만, 국내 중소기업의 경쟁력은 취약하다.

반도체산업은 중소기업 홀로 자생하기 어려운 분야다.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최첨단 기술이 필요한데다, 제품 주기도 빨라 웬만한 대기업이 아니고서야 R&D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신생기업 진입도 어려울 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정부 지원이 절실하고, 그런 점에서 이번 펀드 조성은 고무적이다. 반도체산업 시장을 확대함과 동시에 기술을 보유한 기업과 기술자들이 투자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우리는 그동안 스스로를 ‘반도체 강국’으로 평가해왔다. 세계 톱 반도체 기업 2곳을 보유하고 있는데다 세계적인 반도체 제조기술을 가진 탓에 우쭐해져 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끊임없는 혁신과 개발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머지않아 중국·대만 등 후발국가에 추월당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정부는 창의적 아이디어로 업계에 발을 딛는 창업자들에게 기회와 정보를 제공하고, 우수인력을 확보하는데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동시에 국내 대기업들은 국내 중견·중소기업과 동반성장할 수 있도록 산업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해당 중소기업의 발전없이 앞으로 반도체산업이 성장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부디 이번 펀드가 기술력을 갖춘 반도체기업을 발굴·견인하는데 마중물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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