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장학회와 미르·K스포츠재단은 닮은 구석이 꽤 많다. 모두 국가 최고권력자가 권력을 남용, 기업인에게 부당한 압력을 가해 재산을 축적했다는 점에서 우선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범죄실행 후 완전범죄가 된 반면 후자는 미수범으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정도다. 온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미르·K스포츠재단을 주시하고 있으니 말이다.

정수장학회를 통한 부정축재의 주범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정수장학회의 원래 명칭은 1962년 설립된 5·16장학회다. 그리고 5·16장학회의 전신은 부일장학회다. 부산상공회의소 초대회장, 부산일보 사장을 지냈던 김지태씨가 돈을 출연해 1958년 만들었다. 5·16 쿠데타 직후인 1962년, 부일장학회를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강탈해 5·16장학회로 신분을 세탁한 것이다. 5·16장학회는 전두환 군사정권이 들어선 직후 1982년 다시한번 신분을 세탁한다. 박정희의 ‘정’과 육영수의 ‘수’를 모아, 지금의 정수장학회로 재출범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정수장학회 이사장이었고, 정치활동을 본격화하면서 정수장학회에서 손은 뗐다. 박 대통령이 떠난 직후 2005년부터 2013년까지 정수장학회 이사장은 최필립이다. 최 전 이사장은 1978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보비서관을 역임했던 인물이다. 2012년 기준 정수장학회의 자산은 MBC 지분 30%, 부산일보 지분 100%,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 부지 등을 포함 238억6000만원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취득물을 박근혜 대통령이 사유화했다는 것은 8대 이사장 박근혜 그리고 9대 이사장 최필립, 존재 자체가 입증하고 있다.

온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미르(사진 위)와 K스포츠 재단을 주시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미르·K스포츠재단을 통해 부정축재를 주도한 주범은 ‘강남아줌마’ 최순실과 청와대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이다. 문화·체육의 발전 운운하는 설립목적은 껍데기였고, 이 두 재단은 최순실의 부정축재를 위한 저금통이었다. 최순실은 미르재단 설립을 불과 20일 앞두고 플레이그라운드사를 창업해 미르재단으로부터 대통령 순방행사 사업을 수주했다. 또 최순실은 K스포츠재단 설립 바로 전날 블루K사를 개업, K스포츠재단으로부터 연구용역비를 빼내려 했다는 정황이 검찰조사 결과 드러났다. 지금까지 확인된 바에 따르면 미르·K스포츠재단의 주인은 최순실이다. 그러나 합리적 사고를 할 수 있는 국민들이라면 최순실 배후에 박근혜 대통령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검찰이 현재 수사중이다.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과정에 부당한 공권력이 개입했다는 것 또한 정수장학회와 다르지 않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중앙정보부를 동원해 구속중인 김지태씨를 강박, 기부승낙서에 서명케했던 범죄행위가 두 재단 설립과정에서도 유사하게 재현됐다. 최순실과 안 수석은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승철 상임부회장을 동원해 삼성, 현대, 롯데, 한화, SK 등 재벌기업의 약점을 이용해 거래를 했거나 팔을 비틀어 800억원에 가까운 돈을 뜯어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범죄행위를 면책해 준 우리나라 법원의 판단을 잠시 돌아보자. 김지태씨의 후손은 부일장학회를 강탈한 대한민국 정부와 정수장학회를 상대로 빼앗긴 재산을 돌려달라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5·16 혁명정부가 중앙정보부를 통해 부당한 공권력을 행사해 강압적으로 김씨 재산을 헌납하도록 한 점을 인정한다”면서도 “김씨의 의사결정 여지가 완전히 박탈된 상태는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 재판부가 ‘정치적인 판결을 했다’고 세간의 비판을 받았던 부분이다. 김씨가 의사를 자유롭게 결정하고, 그에 따른 의사표시를 할 수 있는 환경에 있었는지에 대한 판단은 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재산헌납 의사표시를 한 시점에 김씨가 협박이나 강박에 의해 의사표시를 할 수밖에 없었다면 그 위법성이 중대 명백해 무효다. 그러나 협박이나 강박의 정도가 중대 명백하지 않은 경우 재산헌납 의사표시는 일단 유효하고, 다만 취소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간 내에 취소를 함으로써 무효와 동일한 법적효과를 가질 수 있다.

이와 같은 무효와 취소법리를 근거로 법원은 김씨의 헌납 의사표시 효력을 무효가 아닌 취소할 수 있는 의사표시로 판단했다. 그 근거로 법원이 제시한 것은 “구속된 김씨가 수갑이나 포승에 묶이지 않고 자유롭게 부인과 면회한 점, 부산교도소 병동에 특별 대우를 받은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5·16 쿠테타 직후 숨도 제대로 못쉬는 정국에서 김씨는 외환도피죄로 구속됐다. 이런 상황에서 헌납하면 풀어주겠다는 중앙정보부의 요구는 ‘협박 또는 강박’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다. 법원이 ‘재판’ 하지 않고 ‘정치’를 했다고 비판받는 이유다.

어쨌든 김씨 후손은 강탈당한 재산을 돌려달라고 재판을 청구했지만 헌납의사를 취소할 수 있는 제척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패소했다. 헌납 즉 증여의사를 취소해 증여 자체를 무효화할 수 있는 법정기간은 10년이다. 김씨가 1962년에 증여했고 그때부터 10년내 취소권을 행사하지 않았으니 억울해도 참으란 것이 법원의 결론이다. 법원의 ‘정치’에 따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일장학회 강탈 사건’은 완전범죄가 됐다.

그런데 최순실을 내세운 미르·K스포츠재단 사유화 사건의 결말은? 일단 미수로 그칠 공산이 크다. 800억원 가까운 돈을 재벌기업으로부터 뜯어내는 단계까지는 성공했지만 뒷심이 부족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말에 따르면 ‘간교한 사람을 분별하지’ 못한 박 대통령 자신의 탓이다. 아버지는 웃었지만 그 딸은 웃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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