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한국고압가스공엽협동조합연합회 사무실.   ©중기이코노미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한국고압가스공업협동조합연합회(이하 연합회) 이영식 전무이사는 중기이코노미와 만난 자리에서 산업용가스충전업을 ‘잔뿌리 산업’으로 지칭하며, 이를 살리기 위한 기반이 너무나도 열악하다고 말했다. 지원도, 활로도 없이 규제만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산업용가스충전업은 가스제조업소에서 원료액체가스를 제조하면 화물용 자동차인 탱크로리로 공급받아 기화시키고 압축해 고압용기에 충전하는 산업분야다. 산업용가스에는 산소, 질소, 아르곤, 탄산, 수소, 헬륨, 아세틸렌 등이 있으며 반도체용 특수가스, 고순도가스, 각종 혼합가스 등 그 종류도 많다. 이 가스들은 석유화학, 철강, 조선, 자동차, 전자, 의료, 식품 등 대부분 산업의 후방산업인 ‘뿌리업체’로 공급한다.

대기업들은 원료의 1차 제조를 담당하고 있으며 헬륨과 같이 일부 반도체용 특수가스를 수입·공급함으로써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다. 수입가스의 경우 제품가격에서 운송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커 중소기업의 접근 자체가 어렵다. 중소기업들은 2차 가공 후 용기나 저장탱크에 충전하는 역할을 맡는다.

연합회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산업용가스제조(충전)업은 대기업 7개사가 1조4600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산업용가스제조(충전)업 중 가스충전업 중소기업 280여개사의 연간 매출총액은 약 1조1000억원이다. 대기업은 평균 3000억원 가까운 매출을 올리지만, 중소기업인 가스충전업체는 평균 50억원에도 못 미친다.

이영식 전무이사는 “현재 뿌리산업 업체와 가스충전업체간 연결망은 잘 구축돼 있다. 하지만 시장이 포화상태며 수요업체의 설비들이 점점 가스 저소모용으로 개발되다 보니 규모는 점점 줄고 있다”며 “현재 적합업종으로 지정돼 분명 보호받는 효과가 있지만, 내년 일몰 이후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내년 적합업종 일몰이후 원료의 1차 제조를 담당하는 대기업과 반도체기업 등 대량수요처 대기업들이 2차 제조와 충전업에 뛰어들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왔다.   ©중기이코노미

공급망 쥔 외국계 기업들, 적합업종 일몰 이후 걱정

산업용가스충전업에 진출한 대기업은 에어프로덕츠코리아, 대성산업가스, 프레스에어코리아, 린데코리아, 에어프로덕츠코리아 등 6개 기업이다. 문제는 이들 대기업들이 1차 제조에 이은 2차 제조와 충전 및 판매업까지 영역을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들 대기업은 1차 제조 이외 대규모 수요처와 직거래를 통해 충전업을 영위하고 있다. 따라서 적합업종 지정이 해제되면, 중소기업이 ‘독점’했던 소규모 거래처와의 직거래가 가능하다. 이에반해 중소기업은 대기업이 거래하는 대규모 수요처에 물량을 공급하기에는 규모가 작다. 또 원료를 가공할 설비를 구축하는 것도 쉽지 않아 1차 제조 진출은 언감생심이다. 결국 2차 제조와 일반소비자 및 업소에 소규모로 공급할 수 밖에 없다. 달리 말하면, 대기업의 공급망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고, 대기업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것이다.

이 전무이사는 “1차 제조를 담당하는 대기업도 문제지만, 포항제철이나 대형반도체 기업과 같이 대량으로 가스를 소모하는 수요층도 언제든 2차 제조에 뛰어들 수 있다”며 “만약 가스충전업이 적합업종으로 지정되지 않았다면, 이미 많은 중소기업이 무너졌을 것”이라고 했다. 고압용기에 충전된 산업용가스제품은 품질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어 사실상 가격만으로 경쟁하는 경향이 있다. 대기업이 공급망을 쥐고 있는 상태에서 2차 제조와 유통·판매에 뛰어든다면 자본력과 공급망을 가진 대기업이 마진율과 공급량을 조절해 쉽게 점유율을 높일 수 있다.

한국고압가스공엽협동조합연합회는 조그만 가스저장용기(빨간색 박스) 하나만 추가해도 설비부터 부지확보까지 기준을 갖춰야 해 중소기업이 부담을 느끼고 사업확장을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생긴다고 했다.<사진=한국고압가스공업협동조합연합회>

“中企 현실 모르는 규제” vs “안전위해 마련한 기준”

대책이 부재한 이유로 이 전무이사는 소관부서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현재 산업통상자원부에 ‘가스산업과’가 있지만 LNG와 LPG만을 담당하고 있고, 산업용가스충전업 중소기업들이 취급하는 가스는 에너지안전과의 소관이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규제’가 있다는 게 이 전무이사의 분석이다.

현재 ‘고압가스안전관리법’에 따르면 저장탱크, 초저온용기, 고압용기 등 저장량의 합이 5톤 이상인 가스를 취급하기 위해서는 관련설비를 구축한 후 특별자치시장·특별자치도지사·시장·군수 또는 구청장에게 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 저장탱크와 충전용기 사이 거리는 30m 이상을 확보하고, 인근 공장과는 8m의 거리를 둬야 하며, 공사를 위해선 보름에서 한달가량 공장가동을 중단해야 한다.

이 전무이사는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5톤을 넘지 않는 저장용기를 가지고 있다”며 “규모를 조금 키우거나, 새로운 가스를 취급하기 위해 단 200kg짜리 용기 하나만 더 설치해도 부지 확보부터 설비를 위한 기초공사까지 전면적으로 해야하니 중소기업으로서는 규모를 키우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에서 가스를 무조건 위험하다고 인식하고 있는데, 중소기업이 다루고 있는 가스가 대부분 불연성 가스로 위험성이 크지 않다. 또 운반과 충전과정에서 위험이 더 커 운반과 충전횟수를 줄이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덧붙였다.

한국고압가스공엽협동조합연합회 이영식 전무이사는 “정부를 대신해 산업용가스제조(충전)업을 하는 중소기업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기이코노미

한편 이 전무이사는 규제 감시와 처벌도 과도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연합회 한 회원사는 가스저장용기를 늘리고 신고하지 않았다고 형사처벌과 과태료를 받았다. 문제는 이 회원사에 가스를 공급한 업체도 함께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것이다. 허가받지 않은 시설에 가스를 공급했다는 이유다. “이런 처분은 공급처가 고객에게 거래를 끊겠다고 말하라는 것인데, 어느 기업이 그럴 수 있겠는가”라며 가스충전업을 전담하는 부서가 없기 때문이라고 이 전무이사는 주장했다.

그러나 양 주무관은 “중간공급자에게 감시·점검·계도 의무를 맡긴 것은 수요처보다 전문가이기 때문”이라며 “행정력의 한계가 있기도 하지만, 고압가스를 충전·판매하는 과정에서 중간공급자들이 접근하기 쉽고, 또 전문가로서의 의무를 부여한 것이 법 취지라고 생각한다. 의무위반시 사건의 경중에 따라 시정명령만 내리기도 하며, 영업정지 기간 역시 사안에 따라 다르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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