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연구원 5대 원장으로 취임한 김세종 원장은 내부 승진을 통해 원장의 자리에 오른 첫 번째 케이스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전문연구원과 명지대학교 연구교수를 거쳐 2005년 1월 중소기업연구원과 인연을 맺은 지 10년차 되던 해인 2014년 취임했다. 김 원장은 “시기적으로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 운이 좋았다”고 말하지만,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중소기업에 대한 애착이 강하게 느껴진다.

중소기업연구원 김세종 원장   ©중기이코노미

“창조경제라든가 혁신경제로의 이동 등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들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려운 과제들입니다. 중소기업 입장에서 시간이 부족한 것이죠. 또 어려운 여건 속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격차가 계속 벌어진다면 양극화는 더욱 확대될 것입니다. 격차를 줄이기 위해 대기업을 끌어내리는 하향평준화는 당연히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라든가 일감몰아주기 등 일탈 행위들을 제어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소한 불공정한 행위는 막아 어려운 시기를 중소기업이 극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김 원장은 취임 이후 줄곧 발로 뛰는 연구를 강조해 왔다. 연구자로서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그 시작점은 중소기업 현장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 원장은 “연구원의 연구목적은 중소기업 현장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적합업종제도 시행 위한 이론적 근거 마련

국내 유일의 중소기업 전문연구기관인 중소기업연구원   ©중기이코노미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에서 대·중소기업의 동반성장에 대한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동반성장 연구에 참여했죠. 중소기업 보호를 ‘우격다짐’으로 요구할 것이 아니라, 동반성장에 관한 연구를 업그레이드하고 통계분석을 통해 나타난 팩트를 갖고 풀어보자는 게 적합업종제도 연구의 시작이었습니다”

하지만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했다. 대기업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업영역을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보장해야 하는데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하면 되느냐’는 입장이었다. 반면 중소기업은 ‘민간자율합의 형태가 아니라 법으로 보장해 달라’며 적합업종제도에 회의적이었다.

“그래서 합의를 민간자율에 맡기고, 3+3년의 기한과 일몰제를 둔 것은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적합업종이 중소기업을 무작정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3~4년간 기회를 주며, 그 기간동안 중소기업이 성장하고 대기업은 판매·유통채널로서 동반성장하는 모델을 적합업종의 이상적인 형태로 본 것이죠”

가장 이상적인 사례 중 하나가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막걸리 품목이다. 2015년 막걸리 품목은 대기업과 상생협약을 체결하고 적합업종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중소기업이 생산한 막걸리 제품을 대기업 유통망을 활용해 판매하고, 투자·마케팅·기술개발·품질개량에서 상호협력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적합업종제도가 한계를 보인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시장진입·확장 자제 권고가 자율적 형태이다보니 대기업이 이를 위반하는 사례가 발생하면서 더 강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김 원장은 “대기업의 전향적인 양보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적합업종은 한계가 있고, 그로 인해 애매모호한 성과를 거둔 점도 있다”며 한편으론 적합업종제도를 중소기업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점도 아쉬워했다.

“예를들어 적합업종제도를 시행함으로써 중소기업 기술이 발전했다는 사례가 많아야 적합업종제도를 법제화한다는지 명분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 중소기업들도 적합업종 지정기간을 활용해 R&D전략을 세우고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이 부족했다고 봅니다”

터키경제부 부국장 및 중기청 차장 등 터키 공무원 일행이 지난해 4월 중소기업연구원을 방문해 우리나라의 중소기업 정책 평가 및 통합관리시스템 구축 사례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사진 위) ‘중소기업 창조경제확산위원회 제17차 전체회의’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는 김세종 원장.<사진=중소기업연구원>

“지원사업 성과분석 통해 중소기업 방향 제시하겠다”

이와 함께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책이 비효율적이라는 지적도 했다. 기술개발과는 관련이 적은 금융지원에 편중돼 있고, 지원 성과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중복지원도 적지 않다는 얘기다.

이 같은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중소기업연구원은 2011년부터 지금까지 330만건의 지원사업에 대한 이력을 수집하고 성과를 분석한 ‘통합관리시스템’을 구축·완료하고, 일부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원사업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기에 그 이력만 모으는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수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특정기업과 특정산업의 수혜독점을 없애고, 사각지대를 최소화해 지원사업의 실효성을 높이는 게 목표다. 이와함께 현재 ‘기업마당’ 사이트를 통해 중소기업 지원사업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정부지원 바꿔 말해 예산을 얻기 위해서는 근거가 필요한데 중소기업들이 이런 분석자료를 내놓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중소기업이 어떤 지원을 받아야 하는지, 어떤 컨설팅 기능을 강화하면 더 효율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는지 등 그 분석자료를 우리 연구원에서 제공하려 합니다. 올 하반기에는 지원사업 성과분석을 통해 중소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할 계획입니다”

정부사업이 지향해야 할 방향으로는 제조업에 서비스업을 접목한 기업과 ‘지방·컨설팅·교육·정보·IT화·수출’ 지원 강화를 제시했다. 지금까지의 ‘제조업·수도권·하드웨어·내수’ 중심에서 벗어나자는 얘기다. 김 원장은 특히 “중소기업 정책이 제4차 산업혁명과 같이 앞으로 전개될 산업구조에 적합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우선 필요하다”며 “과거에 잘해왔으니 앞으로도 잘할 것이다가 아니라, 예측해 선제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세종 원장은 중소기업의 인력문제 해결이 가장 시급하다고 말했다.   ©중기이코노미

그렇다면 가장 시급하게 중소기업에 지원할 것은 무엇인가? 김 원장은 주저없이 ‘인력’을 꼽았다. 대기업과 경쟁하고, 중소기업의 수출을 확대하기 위해 인력이 우선 필요하고,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중소기업이 당면한 문제 역시 풀지 못한다는 게 김 원장의 판단이다.

“일본의 경우 중소기업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2002년 민간기업 ‘시마즈 제작소’의 연구원인 ‘다나카 고이치’가 노벨화학상을 받았죠. 또 2014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나카무라 슈지는 중소기업 엔지니어 출신입니다. 일본과 비교해 국내 중소기업 인력풀은 열악하고 심지어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똑같은 분야와 경력이라면 대기업 직원이 더 우대받는 것이죠”

중소기업에 특별한 혜택을 주는 것도 아니고, 최소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무대는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또한 중소기업에 재직하면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일례로 정부에서 추진하는 해외유학생 선발이나 개방직 공무원의 경우, 중소기업 재직기간이 길면 우선 선발하자는 것이다. 같은 중소기업이고 똑같은 조건이라면 근로자 임금·복지수준이 높거나, 장기근속 비율이 높은 기업에 기회를 주는 것이다.

“중소기업 스스로도 인력에 들어가는 비용을 투자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투자를 통해 얻은 인력이 연구개발을 하고, 해외시장을 개척하면서 기업을 이끌어 갈 것입니다. 자금과 정보는 어떻게든 지원할 수 있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중소기업 성장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람 중심의 기업’이 대접을 받는 풍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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