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이 작업 역시 대지와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고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 작가가 땅에 의도적으로 만든 기하학적 형태들은 ‘인위적’인 것이며, 그것은 땅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박형렬이 도입한 기하학적 도상들은 형태가 없는 것에 형태를 부여하고, 쓰임이 없는 것에 쓰임을 부여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Figure Project_Earth#21, Pigment Print, 144x180cm, 2013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은 동시대 시각예술에서 사진의 역할과 기능이 무엇인지 반추하게 한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그는 대부분의 사진가들이 그러하듯 발견과 기록이라는 단순한 방식에서 벗어나 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대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그 결과물을 사진으로 촬영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전략은 과거의 대지미술을 떠올리게 한다.

가령 로버트 스미드슨의 <나선형 방파제>는 그 자체로 예술작품이지만, 오늘날 그것은 오직 사진이라는 형태로만 감상된다. 장소 특정성에 발목 잡힌 예술작품은 결국 사진을 통해서만 유통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지막으로 남게 되는 사진만을 예술작품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장소 특정성은 사진과 달리 시간과 공간의 차원을 관객이 실제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할 뿐만 아니라 시각적 체험 자체도 사진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객은 박형렬의 작업을 통해 ‘지금, 여기’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동시에 그 자체로 예술작품이 되어버린 사진이라는 대상을 동시에 감상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의도한 것인지는 몰라도 사진은 단순한 복제의 도구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