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점에 판매목표를 강제하는 등의 불공정거래 행위로 2012년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된 농심 사건은 4년이 지난 2015년이 돼서야 5억원의 과징금 부과로 결정이 났다. 이에 앞서 2009년 도매점에 일방적인 판매목표를 할당해 이를 달성하지 못한 18곳의 도매점에 불이익을 주는 등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한 국순당 사건이 있었다. 사건 접수 후 4년이 흐른 2013년 공정위가 국순당에 부과한 과징금은 1억원이다.

두 사건처럼 보상도 아닌, 시정명령과 과징금처분이 내려지기까지 4년이란 시간이 걸리면, 불공정행위 피해자인 ‘을’들은 사실상 사업을 포기할 지경에 이를 수 밖에 없다. 불공정거래 행위를 공정위에 신고해봐야 시간만 허비하고, 가해자가 받는 불이익조차 미미한 수준이어서 예방효과도 없다. 피해당사자인 신고인이 신고한 것 자체를 후회하게 만드는 상태까지 가는 것이다. 공정행정체계 전반에 대한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공정위 사건 접수 후 결과 나오기까지 평균 330일”

서울시 소상공인지원과 곽종빈 과장은 중기이코노미와의 취재에서 “공정위에 사건을 접수하고 조사결과가 나오기까지 평균 330일이다. 현재 미스터피자 가맹점 사건의 경우 22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며 “그 사이 가맹점주들은 계약해지를 당하는 경우도 있고, 피해를 입은 사람이 포기하면 사건이 종료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소상공인지원과 곽종빈 과장은 “가맹점주들이 제기한 피해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하려 해도 지자체는 법적권한이 없어 가맹본부들이 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진은 미스터피자 가맹점주협의회 농성 현장. 미스터피자 불공정신고는 22개월이 넘었다.   ©중기이코노미

공정위의 늑장처리는 이미 예전부터 제기됐다. 공정위도 지난 2월 ‘사건처리 3.0’ 개혁방안을 발표하고 ‘공정거래위원회 회의운영 및 사건절차 등에 관한 규칙’ 고시를 통해 접수된 사건의 처리기한을 6개월내로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늑장처리 등 행정처리 지연은 단순히 의지나 역량의 문제라기보다는 공정행정체계 구조 자체에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 때문에 공정위가 전담하는 공정행정체계를 다변화함으로써 공정위에 쏠려있는 하중을 덜고 공정행정의 실효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한다.

서울시 곽 과장은 “이와관련된 토론회가 두 차례 열린적이 있고, 공정위도 토론회에 참석해 내부에서 논의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지난 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공정거래위원회 행정개혁을 위한 입법 토론회’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김남근 변호사도 공정위의 늑장행정을 개선하고,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근절하는 것과 함께 피해자 구제제도를 마련하기 위한 공정행정체계 개혁 논의가 시급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공정위 역할·권한, 지자체와 나누면 하중 줄어들 것

공정행정 개혁방향에 대한 의견은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기업의 고의적 담합행위와 불공정행위를 징벌적 손해배상과 집단소송제도를 통해 막는 방안과 둘째, 가맹점주단체와 가맹본사간 상생교섭과 같이 ‘을’들이 단체를 구성해 집단적 상생교섭과 상생협약을 체결하는 집단자치의 원리를 통해 공정거래 질서를 확립하는 방안이다. 세번째는 광역지방자치단체에서 가맹점, 대리점, 대형유통납품·입점 거래불공정 감독행정에 대한 권한을 부여하고 검찰과 공정위의 협업을 강화하는 방안이다.

이 세가지 의견 모두 공정위의 역할과 권한을 집단소송 제기자, 가맹점주단체, 광역지방단체에 일정부분 나누는 것이다. 특히 하도급·가맹점·대리점·대규모유통업거래 등 전국에 걸쳐 발생하는 불공정거래 사건은 관할권을 접근성이 좋은 광역자지단체로 이양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민변 김남근 변호사에 따르면, 한국 공정위의 예산과 인력은 세계 7위 수준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공정위가 그만큼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은 공정위가 전담하는 업무분야가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행정처분 등을 통한 불공정거래를 근절하는 공정위 시스템에서 롤모델인 미국의 연방거래위원회(FTC)의 역할과 기능을 보면 차이가 확실하다. 국내 공정거래법에 해당하는 미국의 경쟁법은 각 주의 공정위와 법무부 등 여러 행정기관으로 권한을 분산시켜 각자 기능과 역할을 하도록 했다.

지난 2013년 새누리당 경제민주화 실천모임 주최로 열린 ‘대기업-영업점간 불공정거래 근절을 위한 정책간담회’에서 김진택 농심특약점전국협의회 대표가 피해사례를 얘기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지자체, 실태조사 과정에서 명예훼손으로 고소 당하기도”

시장을 독점하기 위해 기업체가 합병 또는 결합한 형태의 경제력 집중사건은 주로 재벌이나 대기업을 통해 이뤄지는 만큼 중앙정부가 통합적 행정력을 발휘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 반면 가맹점·대리점·대형유통점·하도급거래와 소비자보호 등 그 대상이 수십만개에 달할 경우 ‘분산과 협력’의 공정행정이 적합하다.

공정위 가맹사업거래 홈페이지에 등록된 가맹본부 수는 3910개, 브랜드 수는 4844개, 가맹점 수는 20만8104개다. 그 종사자는 60만명에 달한다. 공정위 가맹거래과 공무원들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숫자라는 얘기다. 서울시 곽종빈 과장은 “지자체에 공정위 권한 중 일부를 위임해달라는 가장 큰 이유는 사건처리 기한을 단축하기 위한 것”이라며 “다단계·방문판매, 상조에 의한 피해, 가맹점·대리점 거래에 관한 부분은 과감하게 광역자치단체에 일정한 감독행정 권한을 위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곽 과장은 또 “지금 서울시나 경기도에서 하고 있는 불공정거래 조사는 말 그대로 실태조사에 국한될 뿐이다. 법적권한이 없기 때문에 자료를 요구할 수도 없고, 가맹점주들의 피해사례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하려고 해도 가맹본부가 응하지 않는다”며 “서울시에서 실태조사 하기 위해 가맹본부에 연락하면, 거부하거나 조사과정에서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서울시와 경기도에 전체 가맹본부의 50%가 있는 만큼 접근성이 좋은 지자체가 대처하는데 훨씬 유리하고, 지자체에 조사권만 위임돼도 불공정행위에 대한 경고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얘기는 설득력이 있다. 또 현장조사는 물론 실제 과태료까지 부과할 수 있는 권한까지 있다면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

현재 공정위는 이에대해 내부 검토중이라는 말만 할 뿐, 구체적인 행동은 없다. 곽 과장은 “서울시에서 공정위에 직접 제안도 하고 국회에 입법건의도 했지만, 확실한 답변을 받지 못했다”며 “법률상 공정거래조정원에서만 업무수행 하도록 돼있는 가맹사업거래 분쟁조정도 협의회를 각 시도에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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