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쳤던 지난 12일 100만 촛불집회 현장 소식을 덧붙이면, 그날 그곳은 한국사회의 모든 ‘갈등의 용광로’였다. 농민들은 쌀값폭락으로 인한 농업파탄과 故 백남기 농민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었고, 세월호 유가족 등은 세월호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문화계는 현 정권의 탄압을, 청소년들은 입시위주의 교육정책을, 장애인들은 장애인 차별을, 노동자들은 성과연봉제를 비판했다. 국정교과서 반대 그리고 위안부 합의 무효 목소리도 컸다. 그동안 사회 곳곳에서 쌓이고 쌓인 갈등이 일시에 터져 나온 듯한 모습이었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특히 최근 몇년 사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가릴 것 없이 모든 분야의 정책결정과 집행 과정에서 갈등을 겪고 있으나, 이를 해결하려는 정부의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이념적 갈등을 부추겨, 부당하고 불합리한 정책을 강행하거나 하려는 모습이었다고 해도 틀린 지적이 아니다. 정부의 ‘불통’으로 국민들 속은 곪아갈 수 밖에 없다.

얼마 전 중기이코노미와 만난 한 국회의원은 “국회에 들어와보니 공무원들은 참 한가하다”고 말했다. 집에 불이 났는데 이 불을 끌 양동이를 꽃무늬로 할 것인지, 줄무늬로 할 것인지를 따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비근한 예로, 지역 곳곳에 갈등이 산적해 있는데 그 현장은 안 가면서 해외로 갈등관리 사례를 연구하러 간다는 의원도 있더라”고 꼬집었다. 그 말을 듣고보니 우리 사회의 갈등이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사회적 갈등과 경제적 효과 추정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OECD 29개국 중 7번째로 사회적 갈등수준이 높다. 사회적 갈등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보고서는 “사회적 갈등을 개선하는 것만으로 3%대 경제성장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사회적 갈등이 국민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경제 전반의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굳이 연구보고서를 거론하지 않아도, 갈등을 해결하는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원론적인 얘기지만, 갈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우선해야 한다. 갈등을 해결할 능력이 부족한 정부라면, 민간이 주축이 된 갈등관리전담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정치적 혹은 행정적 영향에서 벗어나, 국민 삶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고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유형의 사회적 갈등 해결책을 연구하고 제시할 전담조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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