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림동 고시촌. 로스쿨 도입 이후 점차 쇠락의 길을 걷고는 있지만, 여전히 젊은 사람들이 많다. 사회과학서적의 메카중 하나인 ‘광장서적’ 역시 고시촌에서 명소였다. 군사정권 시절 서울시내에서 ‘금서’를 구할 수 있었던 몇 곳중 하나였던 광장서적은 이해찬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이 정치입문 한참 전인 1978년에 문을 열었다.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이 의원은 1990년에 동생에게 서점을 넘겼고, 동생 이해만씨가 수험서 등을 함께 판매하는 종합서점으로 바꾼 이후에도 한동안은 잘나가던 서점이었다. 2013년 경영난으로 문을 닫자 일부 언론과 광장서적을 추억했던 많은 사람들은 ‘사회과학서점의 종언’이란 평가와 함께 ‘동네서점의 쇠락’을 아쉬워했다.

북션(BOOKTION)은 서울 신림동 고시촌 ‘광장서적’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있다.(사진 위) 1층은 북카페 형태로 꾸몄다.   ©중기이코노미

고시촌은 예전 같지않고 광장서적도 사라졌지만, 광장서적 그 자리엔 여전히 서점이 자리잡고 있다. 광장서적 폐업 후 정성훈 대표가 북션(BOOKTION)이란 새로운 간판을 내건다. 정 대표는 “관악구 주민이 52만명인데 동네서점은 7개, 7만4000명당 하나”라며 “광장서적이 사라진 후 ‘이 동네에 그래도 서점은 있어야지’라는 생각에 북션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고시촌 문화 리모델링…서점·극단·사회적기업 손잡다

광장서적이 사람들의 발길을 계속 붙잡지 못한 이유는 로스쿨 도입 등 외부영향도 있지만, 무엇보다 신림동 지역에서 ‘필요한’ 공간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 정 대표의 생각이다. 또 정 대표가 서점을 업으로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서점은 책을 중계해주는 역할 이상으로 문화적 역할을 수행합니다. 지역 네트워크·마을 공동체 안에서 소통하는 공간이 돼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신림동 지역주민들이 편하게 찾아와서 이러저런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북션을 만들기 위해 지역단체들과 함께 다양한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북션은 고시촌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를 후원하며 지역과 함께한다.   ©중기이코노미

“고시촌은 공부 외에 이렇다 할 고유 콘텐츠가 부족했습니다. 사방이 막힌 공간에서 공부만 하는 고시촌 이미지를 영화제, 극단 및 소극장, 감독과의 대화의 시간 등을 통해 문화적으로 리모델링한 셈이죠. 사회적기업 ‘쉐어어스(share us)’가 고시촌 시설을 개방형으로 리모델링한 것도 고시촌에 입주한 고시생간의 커뮤니티를 활성화하자는 의미입니다”

“서울시 조례, 공공기관 조달 우선·서점인증제 빠져 아쉬어”

사실 서점이 없어진 바로 그 자리에 서점이 다시 들어서는 것은 보기 어렵다. 특히 최근 서점업계가 어렵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이에대해 세대교체 시기라고 진단을 내렸다.

“동네서점 운영자는 나이가 많은 경우가 많습니다. 트렌드에 맞춰 인테리어를 다시 한다거나, 인터넷을 이용해서 젊은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서점을 찾는 사람이 줄어드는 경우도 있죠. 반면 젊은 세대들은 아이디어가 좋아도 자금이 없습니다. 초기 투자비용이나 수익대비 운영비가 생각보다 많이 듭니다. 대출을 받으려 해도 서점에 많은 금액을 대출해 줄 은행은 없습니다”

정성훈 대표는 “세대교체 중인 동네서점업계가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도록 정부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기이코노미

이와함께 서점업과 직접 관련이 있는 법이 없다는 점은 아쉽다고 했다. 도서정가제법이라 불리는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제22조 ‘간행물 정가 표시 및 판매’가 서점의 도서유통에 관한 거의 유일한 조항이라는 주장이다.

“서울시가 지난 7월14일 시행한 ‘서울특별시 지역서점 활성화에 관한 조례’에는 정작 지역서점을 활성화할 수 있는 실질적인 내용과 수단이 부족합니다. 예를들어 공공기관 조달계약을 하는데 지역서점을 우선한다는 내용이 빠졌습니다. 상위 법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서점에 대한 법률적인 지원 근거가 없다는 점도 최근 서점이 사양업종화된 이유 중 하나입니다”

또 정 대표는 서점업계의 문제점 중 하나로 ‘페이퍼서점’을 지적했다. 서류상에만 서점으로 등록하고 공공기관이나 학교·학원과 조달계약을 입찰한 후, 출판 도매상들에게 넘기고 수수료만을 챙기는 경우다.

“진짜 서점을 가리기 위한 서점 인증제도도 이번 조례에서 빠진 것입니다. 서울지역 전체 서점에 대한 전수조사없이 특정 서점에 대해서만 인증을 부여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 였습니다. 일부 지역의 경우 동네서점을 통해 공공기관 납품이 이뤄지고 있는데, 이는 단체장 의지이지 제도화가 된 것이 아닙니다. 단체장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하면, 동네서점으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지하층에 진열된 서적들.   ©중기이코노미

동네서점에 대한 지원이 소극적이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다는 게 정 대표의 진단이다. 오프라인 서점만의 맛을 이어가고 지역주민과의 커뮤니티가 형성되면,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서점과도 승산이 있다는 얘기다.

“온라인 서점 점유율이 전체 서점 매출액의 40%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지만, 최근 둔화된 모습을 보입니다. 온라인 서점이 마냥 성장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오프라인 서점만의 맛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직접 보고 만지고 책장을 넘기며 확인해야 하는 오프라인 서점의 필요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책은 시간에 따라, 읽는 독자에 따라 가치가 다릅니다. 지금이 온·오프라인간의 타협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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