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기 전에 여성으로서의 사생활도 있다” 이번 검찰 수사에서 박근혜 대통령 변호를 맡은 유영하 변호사의 말에 개탄을 금치 못했다. 이런 곳에 ‘여성’을 갖다 붙일 줄이야. 지금 검찰은 여성 박근혜의 사생활을 파헤치자는 것이 아니다. 헌법질서를 유린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국가원수에 대한 조사다. 대통령은 공인 중에서도 국가 최고의 공인이다. 국가를 위한 의무를 다해야 할 순간 책임을 다했는지 묻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 과정에서 사생활이 일부 침해받을 수도 있다. 이는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어렵고, 무거운 자리다. 세월호 참사 당시 일분일초가 중요한 시기에 대통령은 7시간동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도 예외는 아니다. 

여성으로서 사생활을 언급한 유영하 변호사의 말은 여성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약하고 특별히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 치부하는 발언이다. 여성혐오의 일종이다. 여성단체에서 유 변호사의 발언을 경계하고 나선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검찰은 여성의 사생활이 아닌 대통령으로서 헌법질서를 파괴한 것을 조사하겠다는 것”이라며 변호인의 발언은 “성 고정관념을 강화시킨다”며 즉각적인 검찰 수사를 촉구했다.

이래서 여자는 대통령을 해선 안 된다거나,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는 혐오적 발언도 서슴지 않게 들리고, 또 용인되는 분위기다. 이번 사태는 박 대통령과 최순실이 여성이라서 생긴 문제가 아님에도 그렇게 몰아가는 분위기다. 박근혜 정권 이전에도 우리사회에는 뇌물수수와 부정부패가 횡행했다. 그것이 남성 정치인 때문에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비슷한 사건에서 여성들이 주체가 되니 여자가 문제라는 식이다. 최순실에 ‘강남 아줌마’라는 이름표를 붙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최순실 전 남편인 또 다른 비선실세 정윤회씨도 강남 일대를 주름잡았다고 하지만, 아무도 그를 향해 ‘강남 아저씨’라고 말하진 않는다. 

올해 양성평등에 대한 인식이 한층 개선되고 있던 찰나에 이런 사건이 터진지라 안타깝다. 여성을 타깃으로 한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여성혐오를 경계하고 양성평등을 외치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었다. 이번 사건으로 한층 후퇴하는 분위기다. 헌법질서를 유린한 대통령을 수사하겠다는데 ‘여성의 사생활’을 운운하는 변호인의 말도 그렇고, 불필요하게 여성성을 강화시켜 보도하는 언론도 주범이다. 딱한 건 이런 문제제기가 작은 외침에 그친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많은데 고작 그런 사소한 문제를 물고 늘어져야겠느냐고 말하는 이도 있다. 틀렸다. 국정농단에 대한 책임을 묻고 처벌하는 것이 첫 번째라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그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들도 분명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