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천. 곰팡이가 벽면 곳곳에 핀 방 한쪽 구석에는 밀린 공과금 용지가 가지런히 정리돼 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70대 노모와 장애인 아들은 두평 남짓한 이곳에서 4일 숨진 채 발견된다. 사채 빚으로 힘들어했고 왜소증이 있던 아들이 시각장애 6급 판정까지 받자 노모는 이웃들에게 사는게 힘들어 죽고 싶다며 고통을 호소한 것으로 전해진다.

#2.
지난 3일 경남 창원. 철도노조 노조원 A씨가 목을 매 자살했다. 철도노조는 자살사건을 놓고 “코레일의 무분별한 대규모 전출이 불러온 사회적 타살”이라며 “철도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몬 강제 전출을 즉각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코레일은 “노조가 사실을 왜곡하며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며 “A씨는 우울증으로 숨진 것이며 순환 전보 인사와는 무관하다”고 반박했다.

#3.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4일 “세 모녀 사건이 마음 아프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세 모녀가 생활고 끝에 자살한 사건에 대해 “이분들이 기초수급자 신청을 했거나 관할구청이나 주민센터에서 상황을 알았더라면 정부의 긴급 복지지원 제도를 통해 여러 지원을 받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 정말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서울 송파구의 한 단독주택 지하 1층에서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고, 밀린 공과금이라며 죄송하다는 편지와 함께 현금 일부를 남겨 우리 사회를 안타깝게 했던 사건이다.

정치적, 경제적 현안에 대해 무반응으로 일관해 오던 박 대통령의 이 한마디는 사회적 이슈로 부각된다. 그러나 세모녀 사건 이후에도 안타까운 자살소식은 끊이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자살’을 검색해보니 끝도 없이 사연들이 올라온다.

사회적 관심도 높아졌다. 새정치연합은 ‘세모녀 방지법’을 최우선 추진법안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정부 역시 지난 1일 자살 시도자 면접조사와 국민인식 조사를 토대로 실태조사 결과를 내놨다.

그러나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자살예방 대책은 의학적인 치료와 개인적인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전국민 정신건강검진만 나왔을 뿐 사회안전망을 다시 짜겠다는 대책이 없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자살은 병을 앓고 있는 한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한 듯하다. 위의 사례들처럼 자살을 유발하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도외시하고 과연 정신과 치료 몇 번 받고 약물을 복용한다고 자살이 줄어들까 의문이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OECD 회원국 중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증가 추세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사회적 관심과 정부의 노력은 여전히 부족하고 잘못 가고 있다. 특히 자살을 개인적인 문제, 의학적인 문제로만 치부하면 근본적인 예방책이 되지 못한다. 생활고에 시달려온 저소득층, 사업실패로 경제적 압박에 부닥친 중년들, 가난 때문에 노년을 마감한 임대주택 거주자 등 우리 사회가 조금만 관심을 보였어도 막을 수 있는 죽음이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처럼 사회적 약자로 전락한 사람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건전하고 건강하지 못하면 이런 선택이 나올 수 밖에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 사회의 낙오자에게 재기의 기회마저 주지 못한다면 이런 선택은 계속될지 모른다. 자살은 사회적 문제라는 인식 전환과 함께 촘촘한 사회안전망이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이 ‘국민행복’을 기치로 내건 박근혜정부가 해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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