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몇 기업이 CEO의 실언때문에 곤혹스러운 일을 경험하고 있다. ‘남자한테 참 좋은’ 산수유로 잘 알려진 천호식품 김영식 회장은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에 국정농단 사태를 언급하며 “대통령의 연설문을 작성해 준 최 아무개의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대통령이 여자(최순실) 하나 잘못 쓸 수도 있는 거지, 무슨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힐 사건이냐”면서 “하야하라, 탄핵하라 등 대한민국이 좌파의 최면에 걸려 미쳐 날뛰고 있다”고 적었다.

비난이 쏟아지자 김 회장은 즉시 글을 삭제하고 사과문을 올렸지만, 이미 소비자들의 마음은 돌아섰다. 불매운동까지 나섰다. 김영식 회장은 TV광고로 소비자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주던 기업인이다. 천호식품 역시 여러 사회공헌 활동으로 좋은 이미지를 쌓아온 터였다. 그러나 CEO의 말 한마디에 지금껏 쌓아온 노력들은 물거품이 됐다. 신뢰를 회복하려면 시간이 필요할 듯 보인다.

또 다른 논란의 장본인은 자라리테일코리아 이봉진 사장이다. 이 사장은 지난 22일 한 대학교 특강에서 촛불집회에 100만명이 참여했다는 것을 전제로 하며 “여러분이 시위에 나가 있을 때 참여 안 한 4900만명은 무언가를 하고 있다. 여러분의 미래는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면서 “정치는 여러분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공부나 하면 된다”고 했다. 이후 이 사장은 “집회 참여를 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해명했지만 주변 반응은 싸늘하다.

앞선 두 기업의 사례를 보면 자신이 발언한 상황이 ‘공식적’이라는 인식을 크게 하지 않은 듯 보인다. 김 회장은 직접 운영하는 카페였으니 자신에게 우호적인 이들이 글을 읽을 것이라는 생각에 본심을 가감 없이 드러낸 듯 하다. 이봉진 사장 역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이었고 하니, 자리의 중요성을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실제로 특강에 참여한 학생이 이 사장의 발언을 SNS에 올리지 않았더라면 소리 없이 지나갔을 가능성이 크다.

CEO의 실언이 문제가 된 것은 상황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TPO(시간·장소·상황)의 중요성이다. 두 사람의 발언은 국정농단에 대한 분노가 최고조에 오른 시기에 적절한 발언이 아니었다. 청중에 대한 고려도 중요하다. 최근에 만난 한 기업가는 농담조로 “직원들은 최저시급 120%만큼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CEO를 대상으로 한 설명회의 티타임이었으니 아무도 그 발언을 문제 삼지는 않았다. 만약 같은 발언을 노동조합 앞에서 했다면 전혀 다른 반응을 불러왔을 것이다.

최근 미국에선 CEO의 발언이 박수를 받은 일이 있었다. 애플 팀쿡 CEO는 트럼프의 당선이 결정된 후 충격에 빠진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팀쿡은 “너무나 다른 성향의 두 후보가 비슷한 표를 얻었다. 개개인이 어떤 후보를 지지했는지와 관계없이, 향후 우리가 나아가는 방법은 다함께 가는 것”이라고 적었다. 사실 팀쿡은 트럼프의 당선이 반가울 리 없는 인물이다. 팀쿡은 동성애 커밍아웃을 한 몇 안 되는 CEO이고, 트럼프는 성소수자에 대한 반감을 가감 없이 드러내 온 인물이다. 트럼프는 애플을 향해 중국 공장을 미국으로 이전하라며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팀쿡은 모든 것을 포용하고, 함께 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현지 네티즌들은 “멋지다. 계속해서 애플을 지지하겠다”는 반응이다. 우리 기업인들에게도 귀감이 될 만한 얘기다.

<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