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지난 8월12일 공식 뉴스룸에 ‘AP통신의 잘못된 기사에 대해 사실관계를 바로잡습니다’라는 보도자료를 올렸다. 이 보도자료를 통해 삼성전자는 “기사에서 언급된 ‘영업비밀’에 대한 반올림의 문제제기는 이미 오래전에 제기됐던 새로울 것이 없는 일방적 주장”이라며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자료는 보관기간 등을 관련 법에서 상세히 규정하고 있고, 삼성전자는 법규를 철저히 준수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또 “이 사안과 관련해 ‘삼성전자가 성분을 공개하지 못하는 화학물질은 해당 물질 제조회사가 납품과정에서 영업비밀로 지정해 그 성분을 삼성전자에 통보하지 않은 경우’ 임을 충분히 설명했다“는 입장을 내놨다.

논란이 된 AP통신의 기사 제목은 ‘2 words keep sick Samsung workers from data:trade secrets’다. 번역하면 ‘삼성의 근로재해자들을 정보로부터 차단하는 두 단어:영업비밀’이다. 삼성 반도체 직원들의 산업재해는 삼성전자의 말처럼 오래된 사안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삼성의 태도는 변하지 않고 있다. 법보다, 정부보다, 사람의 생명보다 ‘삼성’이 우선이기 때문이라는 비난이 29일 쏟아졌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29일 열린 삼성 반도체 관련 토론회에서는 법도 무시한 채 ‘영업비밀’을 내세워 자료제출 요청을 거부한 삼성전자가 도마 위에 올랐다.   ©중기이코노미

정보공개법 ‘사람의 생명·신체 또는 건강 보호위해 공개’

국회 의원회관에서 29일 열린 ‘끝나지 않은 삼성 직업병 계속되는 위험은폐, 과연 영업비밀인가’ 토론회에서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이하 반올림)의 임자운 변호사에 따르면, 2016년 10월 기준 삼성전자는 법원이 요청한 77건의 자료제출 요청 중 64건, 83%에 대해 자료제출을 하지 않거나 제대로 제출하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영업비밀’이라던지, ‘사건과 관계없다’, ‘관련문서를 폐기했다’는 이유로 제출을 거부한 것이다.

삼성전자가 주장하는 영업비밀은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공개법) 제9조1항의7 ‘법인·단체 또는 개인의 경영상·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법인 등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에 해당한다. 그러나 동법 가목에는 ‘사업활동에 의해 발생하는 위해로부터 사람의 생명·신체 또는 건강을 보호하기 위하여 공개할 필요가 있는 정보’, 나목에는 ‘위법·부당한 사업활동으로부터 국민의 재산 또는 생활을 보호하기 위하여 공개할 필요가 있는 정보’는 공개하도록 명시했다.

임 변호사는 “삼성이 ‘영업비밀’이나 ‘폐기’, ‘측정사실이 없다’고 한 자료 또는 상당부분 삭제하고 제출한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는 실제로 근로자가 유해물질에 얼마나 노출돼 있는지 알 수 있는 유일한 자료”라며 “삼성은 법원의 자료제출 요청에 답을 안하거나, A를 요구하면 B를 제출하거나, 일부만 제출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주장했다.

더군다나 임 변호사가 이날 발표한 자료를 보면, 삼성전자는 근로자의 보호구 착용여부까지 영업비밀로 공개를 거부했다.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박경신 교수는 이에대해 “어떤 물질이 이용되고 있다, 보호구가 지급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 가지고 영업비밀이 될 수 없다. 과거 영업비밀에 관한 판례를 봐도 영업비밀에 해당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김신범 실장은 “영업비밀에 대한 근거는 삼성이 직접 나서 성실하게 입증해야지, 고용노동부가 나서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중기이코노미

삼성 자료제출 거부…입증자료 불충분해 피해자 패소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삼성은 고용노동부 장관의 명령에 따라 산업안전보건공단이 작성한 정부기관 보고서를 마음대로 손 대기도 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올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2014년 국회와 법원, 2016년 국회에 제출된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사업장에 대한 안전·보건 진단’ 보고서 3건을 비교해보니 일부 내용을 삼성이 직접 삭제·수정했다는 것이다. 2014년 국회와 법원에 제출된 보고서에는 ‘L8 공장 위험요인 4건’으로 4개 공정의 문제점과 개선대책이 적혀있다. 그런데 2016년 제출된 보고서는 위험요인이 11건으로 늘어났다. 2014년 보고서에서 7개 공정을 삭제한 후 위험요인을 4건으로 수정한 것이다.

두 기간 동안 삼성이 제출한 자료를 비교하면 공개를 꺼린 이유를 알 수 있다. 2013년 삼성디스플레이 아산공장 보건진단 보고서 작업환경측정란의 경우 2014년 영업비밀이었던 부분이 2016년에 ‘메탄올, 에틸렌글리콜 함유한 물질을 사용하고 있으나 측정에서 누락됐다’고 기록돼 있다. 메탄올은 올해 초 삼성휴대폰 부품생산공장에서 근로자를 실명에 이르게 한 독성물질이며, 에틸렌글리콜은 가임기 여성이 노출될 경우 불임과 유산, 기형아 출산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생식독성물질이다. 또 작업환경관리 점검결과란을 보면 2016년 ‘유기폐액 증기 누출되고 있음’, ‘일부 배기장치가 설치돼 있지 않음’, ‘일부 쓰레기 용기는 배기구를 막고 있음’, ‘폐유기용제 출입구에 관련 보호구 표지가 미부착됨. 출입시 방독마스크 착용이 없음’이라고 명시된 내용이 2014년엔 빠져있다.

삼성전자의 자료제출 거부는 근로자의 패소로 이어진다. 1992년부터 2006년 삼성반도체 기흥사업장에서 근무한 이모 씨의 경우 퇴사 3년 후 루게릭병 진단을 받아 요양급여를 신청했으나 불승인 처분을 받고 소송을 제기했다. 2013년 서울행정법원은 “원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질병과 원고 업무사이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원고 패소판결을 내렸다. 또 다발성 경화증 진단을 받은 홍모 씨 또한 산재소송에서 “업무로 인해 다발성경화증이 발병했다거나 기존 질환이 급격하게 악화됐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증거가 없다”며 패소판결을 받았다.

지난 10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삼성전자 정재륜 부사장은 “영업비밀에 대한 판단은 우리가 직접 한다”고 말했다.<사진=뉴시스>

삼성전자 “영업비밀에 대한 판단은 우리가 한다”

고용노동부 장관 명령을 통해 작성된 보고서는 고용노동부에도 있다. 따라서 고용노동부를 통해 자료를 받을 수도 있다. 19·20대 국회에서 3번에 걸쳐 산업안전보건공단 기흥·화성·온양·천안 사업장 실태조사 후 작성한 ‘안전보건 진단보고서’를 제출할 것을 고용노동부에 요청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의 대답은 “영업비밀이기 때문에 그대로 전달할 수 없다”며 ‘근로자 건강관리 현황 및 개선방안’, ‘보호구 지급현황 및 개선방안’ 등 2014년 법원에 제출한 것과 비슷한 수준의 자료를 보냈다. 임 변호사에 따르면 고용노동부의 삼성 반도체 관련 자료제출 요청 불응률은 78%로 삼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 올해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은 “고용노동부는 삼성의 안전보건진단보고서를 자체 보관하고 있음에도 자료를 요청할 때마다 삼성을 통해 보고서를 받는다”고 지적했다. 임 변호사는 “해당 보고서에서 가리고 제출한 부분에 대한 판단을 삼성이 직접 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올해 국감에서 삼성전자 정재륜 부사장은 “사규나 법규는 없다”며 “영업비밀에 대한 판단은 경쟁사 동향 등을 보고 우리가 판단한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산업보건과 고동우 과장은 이에대해 “사회적으로 적절치 않다고 판단할 수 있겠지만, 행정심판위에서도 정보공개와 관련해 적법하다고 판결을 내렸다”며 “영업비밀은 한번 공개가 되면 회수가 어렵다. 회복이 불가능한 피해를 입기도 한다. 정보공개 청구과정에서 영업비밀 노출을 보호할 제도적 장치가 미흡하다고 여겨진다”고 했다.

그러나 노동환경건강연구소 김신범 실장은 “영업비밀임을 삼성이 적극적으로 나서 이를 증명해야지, 고용노동부가 할 이유가 없다”며 “비밀누설 염려가 있다면 관계자들이 영업비밀 누설금지 의무를 충실히 지키면 된다”고 지적했다.

임자운 변호사는 “영업비밀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무분별한 공개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이번 국감에서도 시인했듯 구체적 기준도 마련하지 않은 채 임의적으로 판단해왔다”며 “고용노동부도 사실상 아무런 통제를 하지 않았다. 사람 생명·건강과 관련된 정보는 원칙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정보공개 원칙에 관한 강력한 규범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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