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지난해 7월 합병했다. 합병방식은 삼성물산 100주와 제일모직 35주를 맞교환하는 방식이다. 합병비율 1:0.35는 양 법인 통합을 주도했던 삼성이 결정했다.

합병전 삼성전자 이재용부회장은 삼성물산 주식이 전혀 없었고, 23.4%의 제일모직 지분만을 보유하고 있었다. 양사 합병에 따라 통합법인 삼성물산에 대한 이 부회장의 지분은 16.5% 치솟아 단번에 대주주 반열에 올랐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4.1%를 가진 주요 주주이기 때문에 삼성물산의 대주주란 말은 곧 삼성전자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부회장은 합병을 통해 삼성물산 대주주에 등극함으로써 삼성전자의 주요 주주로서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연 셈이다. 제일모직을 통해 삼성생명(19.3%)을 지배하고, 삼성생명을 통해 간접적으로 삼성전자를 좌우했던 복잡한 지배구조를 단순화시킨 것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통합은 삼성그룹 또 이건희 회장의 오랜 숙원사업인 가업승계의 9부 능선을 넘었다는 것이 업계 평가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통해 이 부회장은 돈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삼성전자에 대한 경영권을 확보하는 ‘횡재’를 했다. 그런데 최근 최순실 청문회, 검찰조사 과정에서 일부 확인된 사실을 종합하면 이 부회장의 경영권 확보는 단순히 횡재가 아닌 삼성의 치밀한 계획과 준비에 따른 결과다. 삼성전자에 대한 경영권 확보를 위한 이 부회장의 계획과 준비 자체는 그것이 법과 상식을 위반하지 않는 한 기업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몫이고 또 존중받아야 한다. 문제는 이 부회장의 계획이 실행되는 과정에서 국민연금공단이 자의든 타의든 위법 또는 부당한 결정을 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투자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삼성이 제시한 합병비율(1:0.35)을 전제로 합병이 이뤄질 경우 3000억원이 넘는 막대한 손실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연금공단은 이미 알고 있었다. 3000억원이 넘는 손실에도 불구하고 찬성결정을 한 이유는 합병에 따른 미래가치였다. 회의록에 언급된 내용을 보면, 투자위원회 결정은 불투명한 미래가치와 3000억을 교환한 것이다. 최소한의 리스크도 회피하고자하는 투자자의 심리에서 보자면 예외적인 결정인 것만은 분명하다. 연금공단이 기금운용 의결권을 행사할 때 의견을 듣는 공식 자문기관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합병에 즈음해 산출한 적정 합병비율은 1:0.43다. 또 ISS, 글래스루이스 등 국내외 자문기관 대다수도 삼성물산 주식이 저평가됐다는 이유로 합병 반대의견을 제출했다. 그럼에도 연금공단은 외부전문가가 참석하는 전문위원회 결정 절차를 거치지 않고 내부투자위원회 결정만으로 찬성을 결정했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지침에 따르면 ‘의결권 행사시 찬성 또는 반대 판단이 곤란한 안건은 주식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에 결정’에 따라야 한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결정 2주전에 이뤄진 ㈜SK와 SK C&C의 합병 건에 대해 연금공단은 ‘찬성 또는 반대 판단이 곤란한 안건’으로 보아 의결권 전문위원회로 넘겼고, 여기서 반대의견을 결정하자 그대로 의결권을 행사했다. 전문위원회 결정없이 자체 결정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한 것이 예외적인 상황이란 얘기다. 의결권 행사 자문기관의 반대의견까지 묵살하면서 전문위원회 결정없이 찬성결정을 강행한 배경에 의혹의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 최순실 청문회와 검찰조사가 주목하는 지점은 합병찬성 결정과정에 청와대 안종범 수석이 당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을 통해 연금공단에 압력을 행사했는지 여부, 그 과정에서 주고받은 대가가 있었는지 여부 등이다. 또 안 수석을 움직였던 것이 박근혜 대통령인지 그리고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등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조사대상이다.

지난달 25일 삼성의 미래전략실과 국민연금공단에 대한 압수수색 이후 검찰수사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알 수는 없다. 박근혜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했던 ‘바로 그 검찰’이 의지를 갖고 수사를 하고 있다면 조만간 진실은 드러날 것이다. 수사결과, 연금공단의 찬성의사 결정과정에 부당한 청탁 또는 거래가 없었기를 간절히 바란다. 연금공단이 소명한대로 합병에 따른 미래가치를 과다하게 책정하거나, 낙관적으로 봤던 투자결정의 오류 수준이길 바란다. 그렇지 않고 특정인의 사욕을 위해 국민의 노후자금이 동원됐다면 그에 따른 후폭풍을 우리사회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사실 의문이다. 문제는 이재용 부회장 개인이 아니고 삼성이다. 올 4월 기준 공정거래위원회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현황’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계열사 59개사에 자산총액은 348조2000억원에 이른다. 내년도 우리나라 예산규모가 400조원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6월말 기준 우리나라 주식 시가총액이 약 1433조원이고 국민연금기금의 국내주식 투자규모는 94조9000억원이다. 국내 증시총액에서 국민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6.62%로 그야말로 큰 손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SK와 SK C&C의 합병건과 같은 기업형태 변동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하는 기회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이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찬성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많은 의혹들은 기금운용 전반의 의사결정구조 자체가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연금공단 투자위원회의 전면적인 개편을 포함해 투명성과 객관성을 담보함으로써 기금의 안정적인 운영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국민연금기금이 공공의 자금이란 점에서 재무적 관점에서의 투자 이외에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 기업에 대한 투자와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위법 또는 부당한 거래가 개입되지 않았다고 믿고 싶지만, 만에 하나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기금운용의 투명성와 공정·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대안마련이 그래서 급하다. 회복 불가할 정도의 파장을 몰고 올 수밖에 없는 그 같은 결정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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