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급금 처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중소기업 대표 A씨는 최근 컨설팅회사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A씨는 자신이 가진 특허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이 특허에 대한 직무발명보상금으로 가지급금을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컨설팅회사가 소개해준 특허가치 감정기관에서는 특허를 4억원으로 평가했다. A씨는 가지급금 중 4억원을 대표이사인 자신에게 직무발명보상금을 지급한 것으로 처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A씨는 국세청으로부터 4억원을 그대로 추징당했다. 세금을 회피하려 직무발명보상금을 과도하게 책정했다는 이유에서다.

1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지식재산대전의 발명진흥회 상담석에서 중소기업 한 관계자가 직무발명보상 제도를 활용한 가지급금 처리에 대해 문의하고 있다.   ©중기이코노미

직무발명보상제도란 임직원이 직무 과정에서 발명한 보상에 대해 합당한 보상을 해주는 과정이다. 직무발명 보상은 전액 경비로 인정돼 기업 입장에선 법인세를 아낄 수 있다. 근로자 입장에서도 비과세라 기업이 지급하는 금액을 그대로 받을 수 있다. 발명자에 대한 보상을 적절히 하라는 취지에서 직무발명보상금에 대해서는 100% 비과세 혜택을 적용하고 있다.

문제는 이를 악용하는 기업들이다. 회삿돈을 가져다 쓴 중소기업 대표가 직무발명보상금 명목으로 가지급금을 해결하는 것이다. 특허는 가치평가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금액을 유동적으로 산정할 수 있어서다. 부르는 게 값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부동산의 경우 공시지가도 있고, 보유세도 내기에 평가액을 마음대로 조정하기는 쉽지 않다. 특허는 아직 그런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다.

직무발명보상제도를 활용한 가지급금 처리는 컨설팅회사와 감정평가기관 모두에 이익이다. 익명을 요구한 직무발명보상 컨설팅 한 관계자에 따르면 특허 가치평가 수수료는 건당 300~500만원 선이다. 감정평가기관이 가지급금 처리 컨설팅을 해줄 수는 없으니 이들은 컨설팅회사를 브로커로 활용한다. 업체를 소개해준 컨설팅회사는 감정평가기관으로부터 특허가치 평가 수수료 중 일부를 챙긴다. 컨설팅 비용도 별도다.

이에 정부에서도 내년부터는 직무발명보상 관련 법을 바꾸기로 했다. 직무발명보상금이 일정 금액 이상일 경우 세금을 물리겠다는 방침이다. 지난 7월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17년 세법 개정안에 따르면, 내년부터는 일정금액 이하의 보상금에 대해서만 비과세 혜택을 주기로 했다. 금액 기준은 시행령에서 정하도록 위임했다. 또 지금까지는 기타소득으로 분류했던 직무발명보상금을 내년부터는 근로소득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자료=한국발명진흥회, 그래픽=이혜원 기자>   ©중기이코노미

컨설팅업체의 움직임은 더욱 분주해졌다. 내년부터는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없으니 올해 가지급금을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허청 산하기관인 한국발명진흥회에서 직무발명보상 민원을 담당하고 있는 장호수 전문위원은 1일 중기이코노미와의 취재에서 “최근 직무발명보상금을 활용한 가지급금 처리 민원이 부쩍 늘었다. 컨설팅회사가 괜찮다고 하는데 정말 괜찮느냐는 확인 전화”라면서 “발명자들의 연구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한 제도를 법인 특수관계인이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보상금을 자체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해두니 허무맹랑한 금액을 산정하는 기업들도 있다”고 말했다.

직무발명보상금은 크게 출원보상금, 등록보상금, 실시보상금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출원과 등록보상금은 특허출원 과정에서 지급하는 일회성 보상금이다. 중소기업에서 가지급금 처리에 활용하는 것은 실시보상금이다. 특허를 적용한 제품이 판매됐을 때 연속적으로 지급하는 보상금으로, 정하기 나름이다. 발명진흥법에서는 직무발명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만 적고 있다.

입법엔 공백이 있지만 판례를 통해 형성된 적정 보상금 수준은 있다. 한국발명진흥회가 판례를 토대로 제시한 실시보상금은 제품 매출액의 0.05% 안팎이다. 직무발명 제품 매출이 100억원이라면 실시보상금은 500만원인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리사는 “컨설팅회사 말만 믿고 가지급금을 함부로 처리했다간 추징당할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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