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을 가결했다. 과정은 지난했지만 가결은 신속했다. 299명의 국회의원이 투표를 시작해 결과가 나오기까지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결과보다 눈여겨 볼 것은 과정이다. 국정농단 사태를 탄핵 표결까지 이끈 것은 국민이다. 200만 국민이 거리에서 촛불을 들지 않았다면 탄핵안은 국회 근처에도 못갔을 일이다. 국민들의 정치 참여는 직접적인 형태로 드러났다. 생업 때문에 촛불집회에 나오지 못한 이들은 일터에서 제 목소리를 냈다. 상인들은 자신의 점포에 ‘박근혜 하야’ 푯말을 내걸었고, 대형마트 근로자들은 ‘하야하라’ 배지를 달고 일을 했다. 

탄핵 정국에 불을 지핀 의미있는 사건들도 있었다. 탄핵안이 발의되자 국민 4명은 ‘박근핵닷컴’이라는 사이트를 개설했다. 단순한 서명운동 사이트가 아니라, 국회의원에게 탄핵 찬성을 청원하는 사이트라는 점에서 기존의 것들과는 달랐다. 청원을 받은 국회의원들에겐 찬반 여부를 답변하도록 강제했다. 표결이 가까워오자 운영자들은 찬반여부를 밝히지 않은 국회의원들을 상단에 배치해서 국민들의 청원을 독려했다. 탄핵 표결일인 9일까지 92만여 건의 청원이 이뤄졌다. 이 청원들은 개별 국회의원의 이메일로 전달됐다. 이미 외부에 공개돼 있었지만 활용하는 방법을 몰랐던 국민들을 위해 다리를 놔준 셈이다.

인터넷에 유출된 국회의원의 전화번호가 청문회에서 증인의 시인을 이끌어내는 일도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국회의원은 지난 7일 밤 9시경 최순실 국정조사 2차 청문회 도중 모르는 이로부터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 증인인 김기춘 청와대 전 비서실장이 최순실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정황이 담긴 동영상이었다. 당시 김 전 비서실장은 최순실을 몰랐다고 줄곧 부인하던 중이었다. 박 의원이 해당 영상을 보여주자 김 전 비서실장은 그제야 “(최순실을) 못 들었다곤 못 한다”며 말을 바꿨다. 유출된 개인정보를 통한 제보이기는 하나, 파급력은 상당했다. 

정보통신 발달이 민주주의의 모습을 바꿔놓고 있다. 국민들의 정치 참여는 한결 쉬워졌다. 정치인이 거짓말을 하면 인터넷 검색 몇 번으로 금세 탄로난다. SNS로 국회의원들에게 직접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다. 오래 여의도 생활을 해온 국회의원들은 예전보다 의원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바람직한 방향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국민들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들은 바쁜 국민들을 대신해서 탄핵 표결에 참여한 ‘대리인’일뿐이다. 의뢰인의 뜻을 거스르는 대리인은 애초에 성립할 수 없는 얘기다. 대리인이 제 역할을 못하니 의뢰인이 팔을 걷어붙인 게 이번 촛불집회다. 대리인으로서의 책임감은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오늘부로 대통령 권한이 정지된 박근혜 대통령이 잊고 있었던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