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용 전기요금 개편안이 산업통상자원부 전기심의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13일 확정됐다. 개편안을 보면 종래 6단계 누진구간을 3단계로 축소하고, 1단계 대비 최고 11.7배인 누진율을 3배로 조정했다. 누진구간 축소와 누진율 조정에 따라 전체 가구의 전기요금 평균 인하율은 11.6%에 이른다는 게 산업부의 설명이다. 이와함께 산업용 전기요금 개편은 중장기적 과제로 검토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전기요금 개편안은 지난 여름 33년만에 폭염이 이어지고 ‘전기요금 폭탄’ 논란이 일면서 부랴부랴 마련한 수습책이다. 전기요금 폭탄 논란 당시 누진율이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논란의 핵심은 ‘불공정성’이었다. 원가 대비 가정용 전기요금보다 낮은 산업용 전기요금체계가 문제였다. 많이 사용할수록 단가가 낮아 대기업과 비교해 중소기업에 불리한 전기요금체계 또한 논란의 대상이었다. 전체 전기의 절반 이상을 사용하는 기업이 가계에 비해 낮은 요금을 부담하고 있음에도 블랙아웃을 초래한 주범으로 가계를 지목했던 정부의 탓도 있다.

한국은행 국민계정 통계에 따르면 1997년 경제위기 이후 10년 동안 국민총소득(GNI)에서 가계비중은 연평균 66%로 떨어졌고, 2008년 금융위기 후에는 62%로 더 낮아졌다. 반면 기업비중은 1998년 19.6%에서 급격하게 증가해 2011년에는 25.8%를 기록했다. 가계에 돌아갈 소득이 기업으로 쏠리면서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상장기업의 사내유보금은 832조원(2015년 기준)이다. 차고 넘치는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에 대한 국민적인 비난이 계속되자 정치권은 사내유보금에 10%의 법인세를 추가 과세하는 기업소득환류세제까지 검토하고 있다. 가계·기업간 소득의 양극화 심화 속에서 ‘언제까지 기업경쟁력 강화라는 명목하에 가계가 희생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제기가 터져나온 배경이다. 또 백번을 양보해 산업정책 차원에서 지원이 불가피해도 832조원의 잉여금을 보유한 대기업에 전기요금 특혜까지 제공하는 것이 ‘공정한’ 정책인가라는 의문도 있다.

주택용 전기요금 개편안이 산업통상자원부 전기심의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13일 확정됐다. 그러나 산업용 전기요금 개편은 중장기적 과제로 넘겼다. 20대 대기업에만 1년에 1조원 이상 혜택을 주는 ‘불공정한’ 현재의 전기요금체계 개편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된다.<이미지 출처=이미지투데이>

한전은 중소기업에 대한 전기료 부담을 줄이고, 평일 전력수요를 주말로 분산하기 위해 2015년 8월1일부터 2016년 7월31일까지 한시적으로 ‘토요일 산업용 전기요금 인하제도’를 시행했다. 인하제도 적용대상은 중·소규모 사업장으로 산업용(갑)Ⅱ, 산업용(을) 고압A형 요금으로 제한했다.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이 중소기업중앙회와 함께 전국의 뿌리기업과 섬유기업 141개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기업의 70.9%는 토요일 전기요금 인하제도가 원가절감에 도움이 됐다고 응답했다. 지난 7월말로 일몰된 이 제도로 전국의 총 8만5000개 중소기업이 받은 전기요금 인하액은 총 3200억원이다. 20대 대기업이 1년 동안 한전에 부담시킨 원가손실액의 1/3도 채 되지 않는 금액이다.

전기사용량이 많은 열처리·주조·용접·섬유업종의 중소기업들은 토요일 전기요금 인하제도 중단에 따른 부담을 호소하며 제도연장 또는 상설화를 요구하고 있다. 또 이들 기업들은 6월·11월의 전력수요가 여름·겨울이 아닌 봄·가을 수준임을 근거로 여름·겨울 피크요금이 아닌 봄·가을 요금으로 부과해 줄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들 중소기업들이 요구한, 특히 6월·11월 전기요금을 피크요금에서 제외해 달라는 주장을 수용하는 경우 현행 전기요금체계에서는 대기업도 적용될 수밖에 없다. 대기업에 대한 또 다른 특혜를 주지 않기 위해서는 산업용 전기요금체계를 전면적으로 개편해야만 수용가능한 주장이다. 또 가계는 물론 산업계 모두 장기적으론 전기소비량을 줄여야 한다는 환경적 요구에 부합해야 한다는 정책선택의 문제도 있다. 그렇더라도 중소기업이 부담하는 과도한 전기요금을 덜어내지 않고는 기업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면 선택할 수밖에 없다. 열처리·주조·용접·섬유업종 등 뿌리산업계에 따르면 이들 업종은 24시간 고온설비를 유지해야하기 때문에 전기요금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5∼35%에 달한다. 전기요금에 대한 원가 의존도가 과도하게 높아 업계 전기요금 자체가 기업경쟁력을 갖추는데 심각한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대·중소기업이 공존하는 산업생태계로 전환하기 위한 수많은 정책과 방법론이 이미 제시됐다. 대·중소기업 상생을 위한 정책을 수립·집행하는 과정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이해관계가 충돌, 좌초하거나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에 대한 정부의 의지 이외 이미 기득권화된 산업생태계에 대한 조정과 절충이 선행되지 못한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전기요금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정부가 산업용 전기요금체계를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재편한다면 그 혜택은 우리나라 고용의 88%를 책임지고 있는 중소기업 전체에게 돌아갈 수 있다. 좀 더 세부적인 정책검토가 필요하지만 20대 기업에만 1년에 1조원 이상 혜택을 주는 ‘불공정한’ 현재의 전기요금체계는 개편돼야 마땅하다. 1년에 3200억원만 부담하면 ‘원가절감에 도움이 됐다’는 8만5000개의 중소기업이 있는데, ‘토요일 산업용 전기요금 인하제도’를 유지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 주택용 전기요금 개편을 마무리지은 지금, 산업용 전기요금체계 전반에 대해 재편논의를 당장 시작해야 한다. 중소기업하기 좋은 나라,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라.

<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관련기사 ㅣ ‘개문냉방’ 단속 5분 필요한데…1분만에 끝?
• 관련기사 ㅣ 국민 뒷전…전기료도 대통령 지침 필요한 나라
• 관련기사 ㅣ 더운데…‘안된다’ 하기전 소통하려는 노력 어려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