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해 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의 합병과정에서 국민연금이 찬성하도록 부당한 압력을 가한 혐의로 28일 오전 최순실게이트를 수사 중인 특별검사팀에 긴급체포됐다.<사진=뉴시스>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 중에는 ‘독립성 강화를 전제로 한 국민연금 등 공적기금 의결권 강화’가 포함돼 있지만, 결국 이행되지 못한 것이다. 이에따라 20대 국회에서는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하는데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이사장과 기금이사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도록 하는 등의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불리한 합병조건에 손을 들어준 국민연금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과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10대그룹 계열 상장사는 9월말 기준 89곳 중 62곳(69.6%)이다. 또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국내기업은 모두 289개다.

국민연금의 영향력은 삼성물산 합병을 찬성하는 과정에서 여지없이 드러난다. 삼성물산 합병 안건은 2015년 7월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찬성 69.53%로 승인을 받았다. 이는 합병 가결을 위해 필요한 최소 지분인 66.67%를 2.86%p로 간신히 넘긴 수치다. 당시 국민연금의 구 삼성물산 지분은 11.61%로 합병 가부를 결정할 큰 손이었다.

지난 11월 재벌닷컴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보유한 삼성물산 주식가치는 11월18일 종가 기준 1조5186억원으로, 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전의 양사 지분가치 2조1050억원과 비교하면 5865억원(27.9%)가 감소했다. 합병 이전 국민연금이 보유한 제일모직 주식은 5.04%다. 국민연금은 구 삼성물산 주식평가가 높을수록 손해가 적다. 하지만 구 삼성물산 대 제일모직 합병비율 ‘0.35 대 1’은 구 삼성물산의 주식가치가 최저로 평가되던 시점으로 여겨진다. 국민연금이 이 비율을 찬성한 이유가 납득이 되지 않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에 외부 영향력이 개입됐다는 의혹이 나온다.

<자료=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전문위원회 거치는 관례도 이례적으로 예외 적용

국민연금 의결권은 국민연금기금 행사지침 제8조 ‘의사결정의 주체 등’ 1항에 따라 기본적으로 공단 내 투자위원회 심의·의결에 따라 결정한다. 또 2항에는 ‘기금운용본부가 찬성 또는 반대하기 곤란한 안건은 주식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에 결정을 요청’할 수 있으며, 국민연금 기금운용지침 제17조 ‘의결권 행사’에는 ‘의결권 행사는 원칙적으로 공단에서 행사하되, 찬반을 판단하기 곤란한 안건은 주식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에서 결정한다’고 돼있다. 투자위원회와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이하 전문위원회) 위원들은 복지부에서 위촉한다.

전문위원회를 거친 의결권 행사가 의무사항은 아니다. 그러나 삼성물산 합병건은 평가가 갈리던 사안인만큼 전문위원회를 거칠 수도 있고, 또 그것이 관례였다. 국민의당 채이배 의원은 지난 11월 ‘박근혜 정부의 퇴행적 정경유착 문제점과 해소방안’ 토론회에서 “전문위원회에 안건을 회부하지 않고 자체 결정한 것은 과거 10년간 확립된 관행 및 형평성 차원에서 맞지 않는 것”이라며 “관례적으로 투자위원회가 안건을 전문위원회에 회부할 지를 먼저 결정했지만, 삼성물산 합병건부터 ‘투자위원회 표결 결과 찬성·반대·중립·기권·표결기권’의 5가지 선택지 중 어느 하나도 과반을 넘지 못하는 경우에만 전문위원회에 안건을 회부하는 방식으로 변경했다”고 지적했다.

투자위원회는 결국 전문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의결권을 행사했고, 여기에 외부 영향력이 있었다는 의혹이다. 지난 10월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이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을 독대한 사실이 확인됐고, 홍 전 본부장은 특검조사에서 복지부로부터 합병에 찬성하라는 압력을 받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채 의원은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합병 찬반을 결정하기 2주전, SK그룹 합병 건의 경우 전문위원회에 안건이 회부된 점을 감안하면, 삼성물산 합병건부터 변경된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대 국회, 이사장·기금이사 국회 청문회 거치도록

<자료=국회>   ©중기이코노미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에 독립성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는 운용기금 성격 때문이다. 지난 2012년 국회입법조사처 원종현 입법조사관은 참여연대에 기고한 ‘국민연금기금의 주주권 행사와 지배구조’에서 “이론상 공적연금기금의 실제적인 주인은 가입자들이다. 그리고 기금운용자는 가입자를 대신해 기금을 운용해 가입자들이 퇴직 후에 정해진 연금급여를 지급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다”고 말했다. 단순히 수익률이 아닌 ‘공공이익’을 추구하는 주주권 행사의 수단으로 공공의 기금이 활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20대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제윤경 의원이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재 이사장은 복지부 장관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며, 운용본부장 즉 기금이사는 공단 내 추천위원회를 거쳐 이사장이 복지부 장관에 추천해 승인을 받는다. 개정안은 공단의 이사장과 운용본부장 임명 요건에 국회 청문회를 추가했다. 또 ▲금융기관 및 집합투자기구평가회사에서 자산운용·자산운용평가 및 위험관리를 담당하는 직에 10년 이상 근무한 경력 ▲공공기관에서 재정 또는 자산운용을 담당하는 직에 10년 이상 근무한 경력을 운용본부장의 요건으로 추가해 전문성을 높였다.

또 국민연금 기금운용지침에 전문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대한 사항을 마련하도록 조항을 신설해 전문위원회의 설립근거를 마련했다. 전문위원회와 관련해 이사장은 회의의 일시·장소·토의내용·의결사항 및 각 참석자의 발언내용이 전부 기록된 회의록과 녹취록을 작성해 보관하고, 주요 내용을 요약해 공개하도록 했다. 회의록과 녹취록의 전체 내용은 기본 6개월, 중대사항의 경우 1년 후에 공개하도록 했다.

또 새누리당 김승희 의원안은 주주권행사위원회를 신설해 국민연금이 주주로서의 권리 행사 시 사전승인을 거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위원회는 ▲보건복지부 소속 3급 국가공무원 또는 고위공무원단에 속하는 일반직 공무원 1명 ▲사용자 단체 추천 2명 ▲노동조합을 대표하는 연합단체 추천 2명 ▲농어업인 단체와 농어업인 외의 자영업자 관련 단체 추천 2명 ▲시민단체 추천 1명 ▲국민연금제도와 국민연금기금 운용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있는 2명으로 구성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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