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된 사건을 조사·심사하고 최종 처분을 내리는 공정위 심결제도가 ‘피해구제를 통한 공정행정 구현’이란 목적에서 벗어나 행정편의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불공정행위로 피해를 입은 신고자가 공정위에 신고를 한 경우, 조사과정에서 무혐의 처분이 내려지면 불복할 수 있는 수단이 사실상 없다는 얘기다.

또 심사보고서나 조사자료는 피심의인에게만 공개되며, 신고인은 물론 법원과 국회가 요구해도 공개하지 않는다. 심결과정에서 정보를 가지고 있는 대기업에만 유리하다는 비판과 함께 제도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공정위 홈페이지에 게재된 공정위원회 심결제도 절차<자료=공정거래위원회>

공정위의 무혐의 처분에 불복할 수 있는 단 한가지 방법은 재판청구권(헌법 제27조 제1항) 침해를 이유로 한 헌법소원만이 유일한 구제방법이다. 헌법재판소는 공정위의 자의적 조사 또는 판단에 따른 무혐의 처분이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신고인의 권리를 침해한 경우 헌법소원의 대상으로 본다.

그러나 신고자가 헌법소원 절차에 따라 구제받기 위해서는 심리과정에서 공정위의 조사가 부실했고, 무혐의 처분이 부당함을 입증해야 한다. 또 헌법소원은 보통 1년 이상 시간이 걸린다. 헌법소원은 다른 합헌적 해석 여지가 없는 최후의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위헌판정을 하고, 9명의 위원 중 6명이 위헌의견을 내야한다. 이를 통해 위헌결정을 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기간적으로나 절차적으로나 실효성이 없다. 따라서 공정위 내부 절차를 통해 조사와 심사과정에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재심위원회를 두거나 검찰의 항고, 재항고와 같은 행정소송을 신청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김남근 변호사는 중기이코노미의 취재과정에서 “공정거래 사건의 신고인이 공정위의 무혐의 처분에 대한 불복방법은 전무하다. 재신고를 해봐도 이미 처리된 사건이라며, 사건조사를 거부당하는 일이 대다수”라며 “헌법소원에서 인용 가능성이 있어도 결과가 나오는 시점까지 너무 오래 걸려, 사실상 방법이 없다. 피해자들이 공정위의 무혐의, 심사종결, 무혐의 심결 등에 대해 그 처분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정해진 기간 이내 행정소송으로 다툴 수 있는 절차를 신설하고, 이와 병행해 공정위 내 재심위원회를 신설해 이의신청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사·심사보고서 공개 못하는 이유=또 조사·심사보고서는 피심의자의 소명기회를 위해서만 제공한다. 법원이 자료제출을 요청해도 법적 의무가 없기에 공정위는 자료제출을 거부할 수 있다. 신고자로서는 무혐의 처분에 대해 자료를 보충해 재신고하려 해도 이유를 알 수 없으니 손놓고 있을 수밖에 없다.

김남근 변호사는 “민사소송의 경우 사건이 구체적으로 진행된 과정을 살펴 사실관계를 입증하는 것이 중요한데, 대기업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불법임을 알고 문서를 없애는 경우가 많다”며 “타 기관들은 사법부를 존중해 요청한 서류를 보내오는데 유독 공정위만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석연치 않은 태도를 보인다. 강제로 제출하도록 하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익명을 원한 국회 입법조사처 한 관계자도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조사단계에서 무혐의가 내려지는 여러 이유가 있을텐데, 이를 내부적으로 처리하니 신고인으로서는 증거를 보충해 재신고를 하려해도 어려움이 있다”며 “공정위 접수사건에서 신고인의 법적지위는 제보자 역할에 국한돼 있고, 신고인을 피해당사자로 법적지위를 보장해야 할 공정위의 의무도 없다. 이 부분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와관련 법원이 필요한 심사보고서와 조사자료 등 관련 자료에 대해 문서송부촉탁이나 사실조회를 하는 경우 또 국회에서 자료열람과 등사를 요청하는 경우에는 공정위가 의무적으로 자료를 제출하도록 관련 법령을 신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자료=국회>   ©중기이코노미

◇공정위 심결과정에서 피해액 산정해야=공정위가 제공하는 자료는 공정위 행정의 주요 기능중 하나인 피해구제에 이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공정위는 심결과정에서 피해액을 구체적으로 산정하지 않는다. 공정위 심결 이후 피해자들은 피해액을 재산정한 후 민사소송을 통해 피해보상을 받아야 하는 부담을 떠 안는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같이 정확한 피해액을 산정하는데 전문성이 필요한 경우가 있으며, 피해감정비용 부담이 있고 다수 소액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손해배상보다도 손해액 감정비용이 더 클 수도 있다.

대안으로 피해자들이 공정위에 신고하면 공정위가 손해액에 대해 직권으로 조사하거나 전문가에게 감정을 의뢰하는 방법이 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이학영 의원실의 전재현 비서관은 “공정위를 접하지 못한 피해자들은 공정위 처분이 손해배상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도 많다. 공정위가 과징금 처분을 내려도 국고로 귀속되고 실제로 피해자에게 돌아가는 것은 없다”며 “피해자들은 민사로 따로 피해를 청구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했다. 또 “피해자들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금액이 100%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공정위가 나서서 피해자의 손해액에 대해 전문적으로 조사하는 것이 정확하게 손해액을 산정하는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이학영 의원은 이같은 내용을 담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이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20대 국회에서 발의했다. 이에 따르면 공정위가 손해액을 필요적으로 조사하고, 조사를 위해 전담부서를 설치한다. 또 공정위가 직권 또는 피해자의 신청으로 공정거래법 위반 사업자 등에게 피해자에 대한 배상명령을 내릴 수 있으며, 배상명령은 법원의 재판으로 다툴 수 있게 했다.

또 ‘공정위가 혐의 없음을 인정하는 경우 신고인에게 서면으로 통지’하고, 신고인은 통지서 수령일로부터 90일 이내에 행정법원에 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소가 제기되고 법원이 기록송부를 요구하는 경우애는 공정위가 의무적으로 응하고, 국회가 요구하는 경우 영업비밀·사생활보호와 직접적으로 관련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열람·등사할 수 있도록 했다.

같은 당 박찬대 의원은 공정위가 법률위반으로 결정한 경우 이외의 무혐의 결정에 대해서도 의무적으로 의결서를 작성하도록 한 개정안을 발의했다.

<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관련기사 ㅣ ‘불공정’ 조사 1년 걸려…긴급구제 방안 만들자
• 관련기사 ㅣ 전속고발권 매달리지 말고 검찰과 공조범위 넓혀라
• 관련기사 ㅣ 공정위 불공정행위 조사권한 지자체와 나누자
• 관련기사 ㅣ 공정위, 미스터피자 불공정신고 조사 22개월째
• 관련기사 ㅣ “과징금 산정 불합리하고 예외기준 과도 적용”
• 관련기사 ㅣ ‘징벌적손해배상액’ 감액 여지 많아 실효 적다
• 관련기사 ㅣ 공정위에 힘 실어준 ‘고발독점권’ 있으나 마나
• 관련기사 ㅣ 계열사 통한 간접지분 규제 못하는 ‘일감몰아주기’
• 관련기사 ㅣ 옥시 폭스바겐…피해크다, 집단소송 허용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