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에서 5일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사건 2차 변론기일에 증인출석 대상인 ‘문고리 3인방’ 이재만·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또 휴대폰을 닦아 ‘공손하게’ 최순실 씨에게 건네준 동영상으로 익숙한 이영선 행정관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재만·안봉근 전 비서관은 청와대 외교안보문건 유출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 이영선 행정관은 공직자 신분임에도 최순실 씨를 수행, 최씨와 대통령의 국정농단 행위의 구체적 사실을 알고 있는 핵심 증인 중 한 명이다.

지난 3일 탄핵심판사건 1차 변론기일에 사건의 당사자인 박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은데 이어 또 다시 2차 변론기일에 이들 핵심 증인들이 불출석한 것이다. 이재만과 안봉근 전 비서관, 양자가 불출석한 이유는 모두 ‘폐문부재(閉門不在)’다. 헌재가 출석요구서를 발송했는데, 이재만과 안봉근 전 비서관의 집 대문이 잠겨서 전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영선 행정관은 불출석사유서를 제출하고 심판정에 나오지 않았다.

검찰에 의해 이미 구속돼 있음에도 특검조사에 불응, 특검이 또 다시 체포영장 또는 구속영장을 통해 최씨를 강제구인해 조사하겠고 한다. 검찰의 지명수배를 받고 도피중이었던 최 씨의 딸, 정유라 씨의 행태 또한 엄마와 다르지 않다. 불법체류 혐의로 덴마크 경찰에 의해 체포 구금된 정유라 씨는 덴마크 대형로펌 소속 변호사를 선임, 특검의 소환에 대응해 귀국시점을 늦추기 위한 법적검토에 들어갔다.

앞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우병우 전 정무수석 등이 청문회 등에서 보여줬던 조직적인 ‘태업’이 특검수사와 헌재 탄핵심판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이게 나라냐’라는 전 국민의 물음에 최소한 변명이라도 해야 할 당사자들 모두가 ‘쥐 죽은 듯’ 입을 봉하고 있다. 국정농단 사건에 책임있는 당사자 또는 부역자들의 조직적인 반발의 배후에 박 대통령이 있음을 확신한다. 대국민 담화를 통해 대통령 자신의 입으로 특검, 탄핵심판에 성실히 응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을 했다. 그럼에도 대통령 본인은 물론 그 수하 모두가 진실 규명에 대한 최소한의 성의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이쯤에서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대통령 자신이 만들었던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은 두 개의 당으로 쪼개져 각각 ‘보수’의 주류임을 자처하며 다투고 있다. 남겨진 새누리당 내에서도 국정농단 부역자 단죄를 둘러싸고 누구는 친박 핵심을 ‘종양’이라고 비난하고, 이에 친박 실세는 ‘거짓말쟁이 성직자’라고 반박하는 등 막말잔치가 계속되고 있다. 이 모든 사태는 박 대통령 한 사람 때문에 불거진 논란이다.

야당 또한 사정이 다르지 않다. 대권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연일 개헌, 엄밀히 말하면 권력구조 재편을 위한 원포인트 개헌을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고 있다. 야3당 이외 실체 자체도 불분명한 제3지대 옹호론자들에 의해 개헌을 고리로 한 합종연횡 시나리오가 난무하고 있다. 시나리오 내용엔 집권을 해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정책은 온데간데없고 정치공학적 이합집산만이 존재할 뿐이다. 여야 모두 정치권의 관심은 일정조차 불투명한 대선에 초점이 맞춰져있다는 얘기다. 소모적인 정쟁과 혼란, 이게 박 대통령이 원했던 것인지 정말 묻고 싶은 것이다.

정치적인 혼란 이외 탄핵국면에 따른 경제상황 또한 좋지 않다. 지난달 30일 발표한 기획재정부의 ‘2017년 경제정책방향’에 따르면, 내년도 실질 GDP성장률은 2.6%다. 정부의 전망은 대체로 공공 또는 민간연구소보다 낙관적인 것이 일반적이다. 다시 말하면 2%대 성장도 자신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나마 성장률을 끌어올렸던 건설·부동산정책도 옳고 그름을 떠나 임계치를 넘은 가계부채 부담으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에 따른 여진이 계속되고 있고, 철강·석유화학 등 경쟁력 취약업종에 대한 구조조정은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또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고착화에 따라 비정규직 등 저소득·취약계층의 소비여력이 사라지면서 내수시장 침체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수출시장 여건 또한 최악의 상황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에 맞선 정부의 대책이라곤 ‘시장을 모니터링 한다’는 수준의 무대책이 전부다. 표류하는 한국경제의 방향을 잡아 줄 수 있는 컨트롤타워로서 정부 역할 또한 실종됐다. 경제부처를 포함 정부 곳곳에 ‘최순실 부역자’들이 산재한 상태에서 ‘영’이 설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선장을 잃은 배가 한동안, 그리고 순풍을 전제로 항해가 가능하지만, 비바람과 폭풍을 뚫고 목적지로 순항하기를 기대하긴 난망하다. 내외환경 모두 어려운 조건에서 한국경제를 절체절명의 위기에 던져버린 당사자가 바로 박 대통령이다.

이외 박 대통령이 적폐로 남겨놓은 국가적 난제는 차고 넘친다. ‘사드’ 후폭풍인 중국정부의 비관세장벽에 대해 WTO 제소 운운하며 정부는 하나마나한 소리만 하고 있다. 국민적 반대여론에 밀려 밀실제작 논란까지 불러왔던 국정교과서도 폐기하지 못하고, 또 다시 국민적 여론과 식물대통령의 눈치만 살피고 있다. 10억엔의 돈을 대가로 국민의 자존심을 팔았던 한일위안부 협상 또한 국민여론과 식물대통령 중간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 그것도 국정농단 세력에 의해 간택된 관료들이기에 국가 아젠다 어느 하나 결정할 수 없는 권력공백이 계속되고 있다. 무엇보다 단 한사람, 대통령 때문에 생업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기한없이 광장을 메워야 하는 1000만 촛불의 존재는 국민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한다.

단 한사람이 결단하면 된다. 일말의 양심과 책임감이 있다면 이럴 수는 없다. 더욱이 국가의 최고 지도자였던 사람이 자신의 범죄행위를 감추기 위해 국가경제를 볼모로 삼고 도박을 해서는 안된다. 온 나라를 정쟁으로 몰아넣음으로써 자신에게 날라오는 비난의 화살을 피하려는 꼼수를 써서도 안된다.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 이상가는 반역사적인 범죄자로 기록되기를 정녕 원하지 않는다면 이젠 결단해야 한다. 대통령직에서 내려오겠다고.

그도 아니라면 대통령 스스로 특검조사에 정당하게 응하고, 수하들에게도 특검·헌재에 가서 정당한 심판을 받으라고 명령을 하라. 이도 저도 결단하지 못하고 청와대 한켠에 숨어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만 관제언론을 통해 반복하지 마라. 거짓말에 어법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말을 계속하겠다면, 그에 대한 역사적인 또 현실적인 죄과를 엄중하게 물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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