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낮 시간에도 문전성시를 이룬 시장 안에 또랑또랑한 DJ의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못골시장 ‘상인 DJ’다. ‘못골온에어’는 2009년 개국한 대한민국 최초의 시장 라디오 방송이다. 건어물가게 노총각의 소개팅 사연도 전해지고, 오늘따라 기분이 울적한 족발집 사장님의 신청곡도 흘러나온다. 못골시장에서 오복떡집을 운영하는 DJ 김찬미씨는 “장사하랴, 방송하랴 힘들죠. 그래도 합니다. 왜? 즐거우니까!”라며 밝게 웃는다.

못골시장에서 오복떡집을 운영하는 DJ 김찬미씨는 “장사하랴, 방송하랴 힘들죠. 그래도 합니다. 왜? 즐거우니까!”라며 밝게 웃는다. 아래 사진은 상인들이 직접 그린 못골카툰.   ©중기이코노미

왕이 만든 도시 수원 화성. 220여년 전 조선 제22대 왕 정조는 화성 안에 상설시장인 팔달문(남문)시장을 개설하고 성 외곽에는 5일장을 열었다. 사통팔달 교통이 편리해 ‘돌멩이를 갖다놔도 팔린다’는 곳이 이 남문시장이었다. 하지만 동네마다 대형마트들이 들어서면서 이 시장을 찾는 사람은 줄어갔다. 전국적인 현상이었다.

못골시장은 남문시장을 형성하는 9개의 시장 가운데 하나다. 규모가 가장 작고 외곽에 있다. 1975년 남문시장 끄트머리 골목에 노점들이 하나둘 자리잡으며 생겨난 시장이었다. 87개 점포가 영업 중인 작은 시장이지만 상인들이 중심이 된 문화사업으로 못골시장은 수원시민 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그리고 외국인들까지 즐겨찾는 유명 골목시장이 됐다.

2003년 처음 설립된 상인회는 강력한 추진력으로 시장 변화를 이끌었다. 특히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진행한 문화체육관광부의 문전성시 프로젝트는 시장의 체질을 뿌리부터 바꿔놓았다.

못골시장은 87개 점포가 영업 중인 작은 시장이지만 상인들이 중심이 된 문화사업으로 수원시민 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찾는 유명 골목시장이 됐다.   ©중기이코노미

문전성시 프로젝트는 문화를 이용해 궁극적으로 ‘시장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상인이 신바람 나는 시장을 만들어야 했다. 우선 시장 천장에 아케이트 공사를 하고 바닥도 깨끗하게 다시 깔았다. 시장 한켠에는 상인이 차도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며 쉬어갈 수 있는 ‘못골쉼터’도 만들었다. 상인들 개개인이 마음속의 이야기를 담은 책 ‘우리는 못골시장 라디오스타’도 출간했다. 바빠서 서로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이었다. 또 상인을 대상으로 문화, 마케팅, 회계 등의 교육도 진행했다. 상인들은 평소 관심있던 분야,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찾아 동아리를 만들었다. 단순히 시장의 단점을 보완하는 사업이 아니라 시장의 고유성과 독특함을 발굴해 이를 키우는 문전성시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못골시장 이충환 상인회장은 “시장 상인들의 문화활동은 정말 큰 힘이 된다. 장사도 안되고 일은 힘들고 지친 표정의 상인들이 운영하는 시장은 그만큼 활기가 덜하다. 신이나서 장사하는 시장은 분위기가 활기차다. 그 기운이 손님들에게도 옮겨가 시장에서 웃음과 사랑을 덤으로 얻어가게 된다”고 말했다.

100% 상인만의 문화동아리…시장생활 ‘신바람’

못골시장에서 활동중인 동아리는 ▲예쁜손글씨반 ▲못골온에어 ▲줌마불평합창단 ▲늦바람밴드 ▲상인요리강사 ▲상인기자단 ▲스포츠댄스 등 7개다.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신이나서 활동하는 동아리다 보니 처음에는 5개 팀이었던 것이 지금은 7개팀으로 늘었다. 2008년에 시작된 동아리 활동이 1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평일 낮 시간에도 못골시장은 문전성시다.   ©중기이코노미

◇못골온에어=2009년 1월 개국한 못골시장 라디오 방송국이다. 일주일에 두번 진행하는 방송에서 상인들은 DJ, 작가, 엔지니어를 겸한다. 현재 활동중인 4기까지 라디오팀 멤버들은 선배들이 직접 교육했다. 시장안 이야기를 전할 뿐만 아니라, 지역의 장애우들을 위해 라디오체험교육도 하고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는 라디오사랑방도 운영한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 정홍원 전 국무총리 등 정치인들이 마이크를 잡기도 했다. 역대 수원시장들은 장보러 오듯 이곳을 자주찾는 단골손님이다.

◇줌마불평합창단=‘서로 돕는 시장’이라는 의미를 함께 하기 위해 여성상인들이 만든 합창단이다. 시장의 불평거리, 개인의 불평거리를 투덜투덜 노래로 부르던 줌마불평합창단은 못골시장을 전국에 알리는데도 한몫했다.

◇늦바람밴드=처음 상인들은 ‘무언가 악기 하나 배우고 싶어서’ 모여 밴드를 만들었다. 하루 12시간씩 서서 장사를 하는 틈틈이 창고에 앉아 트럼펫을 불고 생선도마 위에다 드럼스틱을 두들기며 음악은 어느새 이들의 삶의 일부가 됐다. 악보도 볼 줄 몰랐던 이들이 만든 밴드라 이름도 늦바람밴드다.

이밖에도 팔기위해 쌓아온 지식을 요리에 접목한 ‘상인요리강사’들은 주말 요리강좌를 운영하며 주말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또 시장 구석구석 이야기와 지역의 이야기를 찾아내고 알리는 ‘상인기자단’의 활약도 있다.

상인들과 시장방문객들의 커뮤니티 휴식공간 못골휴식터(사진 위)와 못골시장 상인들의 손을 담은 모습.   ©중기이코노미

이충환 회장은 “정부의 지원사업이 끝나면 사업기간 중에 했던 모임들은 다 해산되고 흐지부지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는 어떻게 계속 이끌고 갈지 고민했다. 그래서 만든 것이 못골문화사랑”이라고 소개했다.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도 여러 프로그램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상인이 주체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했다. 상인회는 ‘못골문화사랑’이라는 비영리단체를 만든 것이다. 못골문화사랑은 동아리활동 등을 운영관리하고 경기문화재단 사업을 유치하기도 한다.

못골시장 상인회가 처음 구성되던 2003년 당시만해도 시장 방문객은 하루에 3000~4000명에 그쳤다. 하지만 지금은 하루에 1만명은 기본이다. 주말이면 2만명 가까운 방문객이 시장을 찾는다. 찾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상인들의 수입도 늘고, 시장생활이 즐거워지니 상인들끼리 화합과 단결도 잘 된다.

이 회장은 “무엇보다 상인들이 먼저 시장을 사랑해야 한다. 시장에서 장사하는 상인도 퇴근하면서 대형마트에 들러 장을 보기도 하고, 또 어떤 상인은 대형슈퍼에서 값싼 콩나물을 사오기도 한다. 조금 더 비싸더라도 과일 하나, 채소 한 묶음이라도 옆집가게에서 사고 해야 함께 잘 살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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