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트는 심원사<사진=상상출판>

성산가야의 옛 터전이던 성주군. 여행지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고장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고장에 비해 이름난 관광지를 품고 있지 못하다. 성주를 말하면 으레 ‘상주’를 먼저 떠올리고, 대표적 특산물인 ‘참외’를 이야기해야 “아~ 성주참외!” 하는 정도다. 비록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진 않지만 성주는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다. 성주의 매력처럼 가야산에 자리한 심원사도 옛 문화와 해인사의 가풍을 유지하며 기도처로 사랑을 받는다. 가야산을 중심으로 해인사가 있고 산 너머 동북쪽에 심원사가 있다.

심원사는 조용한 사찰이다. 등산객으로 발 디딜 틈 없는 가야산이라도 이곳만큼은 딴 세상인 양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탓에 조용히 절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인 장소다.

본래 심원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고찰이라는 기록이 있지만, 18세기 말경에 폐사되어 빈 터로 남아 있었다. 근래에 심원사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해 사지의 규모와 위치를 확인하고 대웅전, 극락전, 약사전 등을 차례로 중창해 옛 모습을 되찾았다.

만불상 트레킹<사진=상상출판>

성주는 커다란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싸이지 않고 평안을 유지해 온 몇 안 되는 지역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주를 두고 “역사에 큰 사건도 없었고 지금까지 별다른 변화도 없었다”는 말을 곧잘 한다. 사방이 산으로 가로막혀 외부와의 교류가 원활하지 못했던 자연환경은 훼손되지 않은 전통마을과 가야산을 보존하게 만들었다.

‘애써왔다’ 소리 없이 나를 토닥이는 위로

심원사 템플스테이에 참가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새벽예불, 공양, 명상 딱 이것만 하고 싶었다. 마음이 복잡해 선택한 템플스테이다. 그래서 모든 걸 내려놓고 나를 보고 싶었다. 오후 3시에 하얀 조끼에 계량한복처럼 생긴 옷으로 갈아입었다. 템플스테이 진행자가 기본적인 일과를 설명해준다. 휴식형은 ‘휴식, 만물상 트레킹, 아침 명상, 스님과의 대화’가 프로그램의 전부다. 애써 간섭하지 않겠다는 심원사 템플스테이의 배려다. 차분하게 듣고 나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휴식형’을 하겠다고 말을 건넸다.

고무신 풍경<사진=상상출판>

그리고 뒤돌아 저 멀리 보이는 산을 바라봤다. 숨을 가다듬고 다시 돌계단을 올랐다. 오른쪽에는 강당으로 쓰이는 문수전과 요사채과 있고 정면에는 삼층석탑과 대웅전이 있다. 대웅전 왼쪽으로 종무소가 있다. 가람이 거대하지도, 작지도 않게 올망졸망 자리 잡고 있다. 대웅전에서 삼배를 올리고 다시 나와 살짝 오솔길을 따라 산신각에 올랐다. 산신각에 들어가 간절하게 마음을 내려놓는 기도를 올렸다. 40분 정도 절을 하고 기도를 하고 나오니 종무소 직원이 기다린 듯이 마중한다.

산신각 마당에서 산세를 내려다보니 장관이다. 중앙에 봉긋하게 솟아있는 산이 대구 달서의 비슬산이다. 그리고 비슬산을 어머니의 품처럼 감싸 안고 넓게 팔을 펼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산이 갓바위가 있는 팔공산이다. 해인사는 가야산을 남쪽으로 바라보지만 심원사는 가야산을 등지고 대구 쪽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말을 남긴다. 잠깐 말을 나누다 내일 7시에 다시 이곳으로 오라는 말을 남기고 총총 오솔길을 내려갔다.

다시 수련관으로 내려와 숙소에 들어갔다. 공양을 알리는 종소리가 퉁퉁퉁 울린다. 선반 위에 있는 동화책 한 권을 읽었다. 선반 아래에는 다기 세트가 있다. 전기 포트에 물을 끓이고 공복에 녹차를 한 잔 마셨다. 생각을 너무 깊게 했더니 입이 텁텁해지는 느낌이 들어 은은한 차가 마시고 싶어졌다. 두 잔을 천천히 음미하고선 공양간으로 갔다.

운무와 비슬산<사진=상상출판>

생각보다 크고 깔끔한 공양간에는 뷔페식으로 음식이 차려져 있다. 공양주 보살이 센스 있게 김과 치즈도 놓아 아이들 입맛도 챙겨두었다. 십여 명이 천천히 소리 없이 공양을 했다. 공양을 마친 후 스님께 차 한 잔 마시러 방에 찾아뵈어도 괜찮겠냐고 여쭈었다. 스님은 맑게 웃으며 언제든지 오라고 말을 건넨다. 공양간 마루에 앉아 한참동안 어둠이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다시 숙소로 들어가 뜨끈한 방바닥에 누워 찜질하는 것처럼 등을 붙이고 쉬었다. 따뜻한 온기에 나도 모르게 스르르 선잠이 들었다.

1시간 정도 자다 잠에서 깨어나 다시 책 한 권을 뒤적였다. 방에서 뒹굴기보다 스님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툇마루에 나와 잠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가야산 산줄기를 따라 쏟아질 것만 같은 심원사의 별빛에 화들짝 놀랐다. 도대체 얼마 만에 보는 별빛인가. 마루에 앉아 한참동안 상념에 잠겼다.[유철상 상상출판 대표]

가야산에 안긴 해인사와 팔만대장경

장경각<사진=상상출판>

해인사는 한국 화엄종의 근본 도량이자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461호)인 장경판전 및 국보 70여점을 봉안하고 있는 우리나라 제1의 사찰이다. 대표적인 한국 사찰양식을 보여주는 절이다. 홍류동 계곡물을 따라 오르다 보면 약수암, 국일암, 지족암 등 15개 암자가 차례로 반기고 일주문, 봉황문, 해탈문을 지나니 국내 최초이자 최고의 비로자나 불상이 아름다운 미소를 머금고 있다. 

 

국보급 문화재와 함께 고즈넉한 산사의 향기에 취해 걷다 보면 우리 민족의 자존심이자 슬픔이 배어 있는 장경각과 그 안에 보관되어 있는 팔만대장경을 만나게 된다. 일반적으로 팔만대장경이 세계유산에 포함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장경각이 지정된 것이지 장경각 안에 보관되어 있는 팔만대장경이 지정된 것은 아니다. 물론 팔만대장경이 지정되지 않은 것은 장경각보다 가치가 떨어져서가 아니라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는 대상은 유적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녀들과 동행했다면 장경각의 소박함 속에 숨어 있는 우리 민족의 뛰어난 과학성을 하나하나 찾아보고 이야기해보자. 물론 여행을 출발하기 전, 장경각에 대한 충분한 사전 지식을 챙겨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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