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앞두고 성과급 잔치가 벌어졌다. 연봉의 50%, 연차가 낮은 사원들도 1700만원 이상을 받을 수 있단다. 삼성전자 이야기다. SK하이닉스도 연봉의 10%를 성과급으로 지급할 계획이라고 한다. 포스코와 정유업체인 SK에너지·에쓰오일도 작년보다 더 큰 규모의 성과급 지급을 추진하고 있다.

성과급 잔치는 기업의 실적에 기인한다. 삼성전자는 지난 4/4분기 매출액 53조3300억원, 영업이익 9조2200억원으로 2013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 한해 SK이노베이션은 3조4000억원, 에쓰오일은 1조70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냈다. 포스코도 매출 24조원, 영업이익 2조7800억원의 추정치를 내놨다.

기업이 수익을 내고 그 수익을 사원들과 나누는 일은 환영할 일이다. 더구나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수출부진 그리고 얼어붙은 내수를 생각하면, 이뤄낸 성과가 위대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영업이익과 성과급 이면을 보면, 무작정 박수칠 수는 없는 일이다. 연일 죽는 소리를 하던 대기업들이 사상 최대의 이익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점점 더 힘들어지는 대다수 국민의 살림살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성과급 잔치가 국가경제·국민경제와는 아랑곳없는 그들만의 잔치인 까닭도 있다.

삼성이 갤럭시 노트7의 판매중단 사태와 PC사업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지난 4/4분기 사상최대의 매출을 올릴 수 있었던 건 환율을 빼놓고 말하기 힘들다. 3/4분기 1100원이었던 환율이 4/4분기 1200원이 돼, 삼성의 설명만으로도 3000억원 이상의 환율 이득을 봤다. 정유사들은 어떤가? 국제 원유가 폭락에도 불구하고 국내 기름값 인하는 생색내기에 그쳤으니, 국민 호주머니 돈이 기업의 이익으로 쌓이는 건 당연한 귀결이었다.

고환율과 국제유가의 하락, 기업에는 세계적 불황의 탈출구였을 것이다. 그러나 3000억원의 환율 차익을 삼성이 얻었다면, 높아진 물가로 3000억원을 내놓아야 했던 건 국민이다. 국제 원유가가 국내 기름값에 제대로 반영됐다면, 차량유지비 뿐만 아니라 전기요금 등 공공요금도 인하가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행을 통해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수출 위주의 환율정책은 계속됐고, 정유업계와 높은 유류세를 유지하려는 정부는 기름값 인하에 매번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수출 대기업의 사상 최대 매출과 이익에 마냥 박수만 칠 수 없는 이유가 이것이다.

기업의 실적이 투자로 이어지는 것은 상식이다. 더 많은 이익을 내기위해 설비투자를 서두르고 인력을 보강한다. 그러나 사상 최대의 이익을 낸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늘린다거나 신규채용을 늘린다는 소식은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삼성은 연 1만4000명 규모의 신규채용을 올해는 일정조차 잡지 않았다. 다른 수출 대기업들도 경기침체를 구실로 신규인력 확충은커녕, 인력의 재배치를 통해 정규직을 줄이고 비정규직 늘리기에 나서고 있다. 기업이 잘 돼야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정부의 성장 논리를 대기업 스스로가 틀렸음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해마다 이맘 때면 벌어지는 기업들의 성과급 잔치. 부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영세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처지에서 보면, 1회 성과급이 1년치 수입보다도 많으니 부러운 것이야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고환율과 저유가 때문에 막대한 이득을 보고도 일자리 창출이나 기업의 사회적 책무는 뒷전인 채 자기들만의 돈잔치를 벌이고 있으니 진정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설이다. 누구나 넉넉한 설이면 좋겠지만 올해도 그렇게 될 것 같지 않다. 수천만원의 성과급을 받은 대기업 가족들은 해외여행으로 공항을 메울 것이지만, 대부분의 국민은 얼어붙은 내수에 명절 분위기를 느끼기도 힘들다. 고향갈 차비조차 마련하지 못하는 무직자와 실업자들, 연휴 내내 정규직의 빈자리를 채워야 하는 비정규직과 편의점에서 설날 아침을 맞아야 하는 아르바이트생들. 이들에게 명절은 어떤 의미일까? 그 어느 때보다 춥게 느껴지는 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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