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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재판 3심제인데, 공정거래 사건만 2심제 공정위가 사실상 1심…“법원이 1심해야” vs “중복재판, 소송비 증가”

기사입력2017-02-01 19:28

김성화 기자 (rukawasss@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우리나라 심급제도는 원칙적으로 3심제다. 재판의 공정성 등을 위해 동일한 ‘사건’이 세번의 재판을 받을 수 있다. 지방법원에서 고등법원, 대법원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그런데 공정거래 사건의 경우 공정거래위원회의 심결 이후 공정위 시정조치·과징금부과 등에 대한 불복소송은 고등법원부터 시작한다. 공정위가 사실상 1심의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공정거래 사건의 경우 사실관계에 대해 법관의 심리를 받을 기회는 고등법원 한 번에 불과하기 때문에 3심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우리 대법원은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심리하지 않고, 하급심에서 한 법리해석 위반여부에 대해서만 심리하는 법률심이란 것이 이유다.

공정위가 사실상 1심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근거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55조 ‘불복의 소의 전속관할’에 있다. 동법에 따르면 불복의 소는 ‘공정위의 소재지를 관할하는 서울고등법원을 전속관할로 한다’고 돼 있다. 공정거래 사건에서 1심을 생략하도록 한 것이다.

20대 국회에서 국민의당 손금주 의원은 공정거래법 제55조에 명시된 ‘서울고등법원’을 ‘서울행정법원’으로 개정하는 개정안을 제출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공정거래 사건의 경우에도 일반 행정소송과 동일하게 서울행법-고법-대법 3심제가 적용된다.

<그래픽=김성화 기자> ©중기이코노미

공정거래 사건만 예외 적용 vs 세계적인 추세

법무법인 태평양은 지난 12월13일 공정거래법 제55조에 대한 위헌성을 판단해 달라며 서울고법 재판부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냈다. 조세·노동·토지수용·산업재해 등 전문분야 행정소송 심급구조가 모두 3심제인데, 공정거래 사건에만 예외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 공정위 처분이 1심과 같은 공신력을 가지고 있고, 향후 손해배상의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다른 행정사건보다 사실심리가 충실해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의 황인학 선임연구위원은 이와관련 “공정거래 사건에 대해 3심제 도입이 논의되는 이유는 공정위 심결이 1차 사법적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 내용이나 절차적으로 충분치 않아 피해자 권리구제에 부족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라고 중기이코노미에 밝혔다.

반면 공정위는 공정거래 사건에 대해서는 2심제를 채택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고 주장한다. 지난 2014년 5월 대한변호사협회가 발표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의견’에 따르면 미국과 EU집행위를 비롯 독일, 프랑스, 스위스 등 조사대상 23개국 중 17개국이 2심제를 채택하고 있다. 일본, 폴란드, 영국, 네덜란드 4개국만이 3심제로 운영하고 있다.

익명을 원한 공정위 한 관계자는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겉으로 봤을 때는 3심제이지만, 사실상 4심제로 개편하자는 것”이라며 “3심제 주장은 법률적인 면에 치우친 감이 있다. 공정위가 충분한 조사를 통해 사실심 역할을 하고 있는데 굳이 3심으로 개정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황 연구위원은 “여러 국가에서 2심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공정위처럼 공정위 직원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아니다. 판결을 내리는 판사는 따로 존재한다. 외견상 2심제일뿐 사실상 준사법기구로서 심결과정을 준수하고 있다”며 “규제기관으로서 독립성을 담보하기 위한 실제 운용방식에 차이가 있으며, 해외사례는 사실상 3심제라 볼 수 있다”고 했다.

“심사관·위원회 분리돼 있지 않아 독립 운영 어려워”

3심제 요구는 공정위에 대한 신뢰도와도 연관이 있다. 행정소송 심급구조를 3심제로 적용하는 것은 행정소송 신뢰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1심 재판은 공개가 원칙이다. 그렇다면 사실상 1심인 공정위 전원회의도 공개가 원칙이어야 함에도 방청허가제를 통해 ‘반’공개로 운영되고 있다. 또 공정거래 사건에 대해 심결 이전 조사보고서가 공개되지 않고 불복수단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공정거래 사건 피해자들에게 불리한 여건이라는 지적이 있다.

고등법원은 1심에서 이뤄진 사실인정과 법률판단을 전제로 항소심을 다루는 곳이다. 그러나 공정거래 사건에서 공정위가 1심 역할을 맡으면서 고법이 사실심리부터 다뤄야 해 부담이 커지고, 공정위 심결 결과를 사실관계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조사·심의기관(심사관)과 심의·의결기관(위원회)이 분리돼 있지 않아 심사관이 위원회에 영향력을 끼친다는 의견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심 역할을 하는 행정법원을 공정거래 사건에 추가함으로써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는 얘기다.

공정위 심결과정이 1차 사법적 기관의 역할로서 부족하기 때문에 공정거래 사건도 3심제를 해야한다는 의견이 나온다.<사진=뉴시스>

황 연구위원은 “위원회 위원들과 사무처가 직접 판단하고 처분까지 내리는 구조를 독립적이라고 보기 힘들다”며 “피해자 권리보장을 위해 3심제가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공정위 관계자는 “어떤 부분에서 신뢰성과 투명성이 떨어진다는 것인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공정위 심결결과는 의결서에서 다 공개하고 있으며, 조사보고서도 피심자들에게 제공되는 만큼 문제될 것이 없다”고 했다.

“전문성 없는 재판 중복, 소송 비용만 증가한다”

공정위는 3심제를 시행하면 전문성 없는 재판이 중복되고, 소송비용도 높아진다고 주장했다. 또 공정거래 사건의 피해자가 중소기업이 대다수인 점을 고려할 때, 3심제를 시행하면 손해배상 시점이 더 늦어지고 기업피해도 그만큼 더 커진다는 것이다. 이밖에 재판기회가 많아지면 공정거래 사건 특성상 정보를 더 많이 가지고 있는 대기업에 유리해질 수밖에 없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공정위 관계자는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에서 대기업이나 가맹본부가 가해자로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3심제가 도입되면 오히려 판결이 늦어져 중소기업이나 가맹점에 대한 피해구제가 늦어진다. 형사소송에서 3심을 채택한 이유가 정말 억울한 약자를 위해서 이지만, 공정거래 사건의 경우 3심제가 꼭 약자를 위한다고 볼 수 없다”며 “세계적으로 공정거래 사건에 대해 2심제를 채택하는 이유는 기업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전문가가 사건을 담당하는게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 관계자는 “법원이 공정거래 사건을 맡게되면, 시장이 불안해지고 궁극적으로 소비자 피해로 이어진다. 굳이 전문가가 아닌 1심을 추가할 명분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황 연구위원은 그러나 “과거 3심제를 도입하는데 전문성 부족을 우려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학계나 법조계에서 공정거래 사건에 대한 연구 저변이 넓어져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며 “그래도 우려된다면, 서울행정법원 또는 공정위 소재지인 대전지방법원에 공정거래 사건 전속관할 법원을 두는 방안도 있다”고 했다. 이어 “신속한 사건 처리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2심제라고 신속하게 처리된다는 보장은 없다”고 강조했다.

사건의 신속한 처리 논란은 심급제 때문이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민생경제위원장 김성진 변호사는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공정거래 사건의 조사결과와 처분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는 공정위의 적극적인 조사의지 부족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김 변호사는 “불공정거래 사건의 신속한 처리라는 관점에서 보면, 3심제 변경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공정위의 조사 및 소추권과 심의의결권을 엄격하게 분리하고 과중한 업무를 분산해야 일부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