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느의 초상화<자료=아트브런치 제공>

잔느는 부유한 카톨릭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화가를 꿈꾸었던 잔느는 당시 가부장적인 여성관이 주류를 이루던 상황에서 파격적인 셀프 누드화를 선보이면서 파리 화단에 혜성같이 등장했다.

반면 그녀보다 14살 연상인 모딜리아니는 전도유망한 작가였지만, 냉담한 파리의 미술시장에 절망하며 술과 마약에 취해 살던 시절이었다. 그들이 운명적으로 만난 시점은 모딜리아니가 죽기 3년 전인 1917년. 큰 눈에 수려한 외모를 지녔던 모딜리아니에게는 앞다퉈 모델을 서겠다는 여자들이 줄을 섰지만, 그녀를 처음 본 그는 ‘천국에서도 나의 모델이 되어 달라’고 고백하며 연인 사이가 된다.

잔느는 그의 작업실에서 연인이자 모델로 행복한 한 때를 보낸다. 추운 겨울 장작을 살 돈조차 없을 만큼 지독한 가난과 동거했지만, 모딜리아니는 쉼없이 작업을 했고 잔느는 추위에 아랑곳하지도 않고 모델 역할을 했다. 상반신을 수건으로 살짝 가린 채 누군가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잔느의 초상화 작품에는 둘의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가 오롯이 표현되어 있다.

그렇게 부부의 인연을 맺은 둘 사이에 마침내 첫 딸이 태어난다. 모딜리아니는 그 당시 아이들과 소녀의 작품을 주로 그릴 정도로 인생 최고의 행복감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가난뱅이 화가인 모딜리아니가 꼴보기 싫었던 잔느의 부모는 두 사람을 떼어놓았고, 모딜리아니는 잔느를 보기 위해 그녀의 집 앞에서 한참동안을 서성이다 돌아가곤 했다.

불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919년 두 번째 아이를 잉태했다는 소식을 들은 모딜리아니는 개인전 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하지만 그의 누드작품들이 ‘풍기문란’ 논란에 휩싸이면서 전시는 오픈 몇 시간만에 문을 닫는 사태가 발생한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 절망스러운 상황 속에서 병마와 싸우던 모딜리아니는 1920년 1월 파리 자선병원에서 마지막 숨을 토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가족은 둘의 사후 10년이 지나서야 잔느를 그녀의 소원대로 모딜리아니의 곁에 묻어주었다고 한다. 당대 피카소와 종종 비교되기도 했던 모딜리아니는 사후에서야 작품성을 인정받는다.

현재 두 사람의 묘소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1884년 7월12일 리보르노(이탈리아)생. 1920년 1월24일 파리에서 죽다. 영광을 차지하려는 순간에 죽음이 그를 데려가다.’ ‘잔느 에뷔테른. 1898년 4월6일생. 1920년 1월26일 파리에서 죽다. 모딜리아니에게 모든 것을 바친 헌신적인 반려.’

<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관련기사 ㅣ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의 ‘뮤즈’ 에디 세즈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