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로 가기 위한 첫 관문인 재벌개혁, 박근혜 정부에서 주어진 마지막 기회인 2월 임시국회가 1일 문을 열었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행로도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다. 조만간 대통령은 청와대를 나올 것이고, 그리되면 이후 60일간은 정치권을 포함해 시민사회 모두 대통령 선거라는 격랑 속에 빠질 수밖에 없다. ‘최순실·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사건으로 백일하에 드러난 적폐를 완전청산은 아닐지라도, 그 길을 열 수 있는 최후의 ‘골든타임’이란 얘기다.

정치지형도 최악은 아니다. 정치권내 수구세력은 왜소화됐다. 탄핵정국 이전과 달리 국민적 여망에 맞서 대놓고 저항할 만큼 강력하지도 않다. 또 수구세력에게서 떨어져 나온 자칭 보수정당 역시 1000만 촛불과 재벌 중간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국민과 촛불의 힘을 믿고 좀 더 거세게 몰아붙이면, 바른정당 역시 재벌과의 동맹을 파기할 수밖에 없는 유리한 형국이다. 특검의 수사와 국회 청문회 등을 통해 재벌총수들의 불법과 전횡이 낱낱이 드러났다. 바른정당 역시 재벌개혁을 촉구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마냥 외면할 수 없는 것이 현재 정세다.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없이는, 시장질서의 토대 자체를 훼손하고 대기업 곳간만을 채우는 ‘갑을관계’에서 한발도 벗어날 수 없다. 사회적 양극화와 불평등 심화에 따른 ‘1:99 사회’, ‘헬조선’의 멍에 또한 벗겨낼 수 없다.

문제는 야당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그리고 정의당은 상호 경쟁관계이기도 하지만 개혁입법 국면에선 보완관계다. 야 3당이 대권에만 매몰돼선 보완보다는 경쟁 쪽으로 추가 기울어져 개혁입법 전선 전체를 깨뜨릴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해 최소한 2월 정기국회 기간엔 상대당 대권후보에 대한 불필요한 비난은 중지해야 한다. 특히 정책 또는 비전과 아무런 상관없는 상대당 대권후보 흠집내기 공세는 특히 자제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2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재벌·검찰·언론 등 3대 개혁을 2월 임시국회 핵심과제로 제시했다. 우 원내대표는 “정치·경제권력의 부정한 결탁과 국민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재벌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면서 “대기업 회장들은 권력이 두려워 모금에 참여했다고 하지만, 이들은 대통령의 부탁을 들어주면서 그 대가로 자신들의 민원을 제기했다”며 재벌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어 “소액주주들의 권리보호를 위한 전자투표제와 집중투표제 도입, 감사위원의 독립성 확보, 총수일가의 방만한 자회사 운영을 막기 위한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상법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법개정안 이외 민주당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킨다는 방침이다. 국민의당 그리고 정의당 또한 각론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민주당과 같은 입장이다. 바른정당을 제외하고 야 3당의 힘만 합쳐도 국회 재적인원 과반수를 넘어 국회통과를 위한 최소한의 대열을 갖췄다. 바른정당을 견인해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2월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것은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위한 최소한의 전제조건이다.

여기서 멈춰서는 안된다. 경제정의실천연합은 1일 보도자료를 내고 “엄중한 촛불 민심을 받아 안아 국민들이 원하는 진정한 개혁 요구를 수렴하고 입법화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고 촉구하면서 ‘18개 개혁입법 과제’를 발표했다. 18개 입법과제 중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와 직접 관련된 법안만 추려도 10개로 절반을 넘는다.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가 우리 사회 개혁의 중심고리란 얘기다. 경실련이 제시한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은 어제, 오늘 갑자기 논의했던 사안들이 아니다. 관련 입법내용 또한 숱한 토론회와 공청회 등을 통해 내용도 다듬어졌다. 결단하고 실천할 일만 남았다.

정경유착의 온상이었던 전국경제인연합회 해산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내자는 제안에 국민 누가 반대를 하겠는가. 경실련이 제시한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과제는 이런 정도 수준이다. 대기업의 관행화된 불공정 거래행위에 철퇴를 가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 중 하나인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도 그 중 하나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집단소송제도를 인정하자는 데 반대할 수 있는 명분은 없다. 계열사간 순환출자를 통해 지분 이상의 과도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은 해당 기업의 지속성장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모쪼록 이번 임시국회에서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위한 초석을 놓을 수 있도록 야 3당의 분발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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