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10일 정부는 북한 핵개발을 이유로 개성공단 사업을 전면중단하고, 국내기업을 철수시켰다. 다음날 국내기업 철수가 시작되고, 5일 후인 16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국정연설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막기 위해서는 북한으로의 외화유입을 차단해야만 한다는 엄중한 상황 인식에 따른 것”이라며 “우리가 지급한 달러 대부분이 북한 주민들의 생활향상에 쓰이지 않고, 핵과 미사일 개발을 책임지고 있는 노동당 지도부에 전달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후 개성공단 사업 전면중단은 정부의 일방적 결정에 따른 것임에도 그에 따른 입주기업들의 손해에 대해 정부가 책임을 지지 않아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입주기업들은 정부가 내놓은 ‘지원’이 아닌 ‘보상’을 원하고 있다. 하지만 1년이 된 지금, 피해는 점점 늘어가고 이들에 대한 보상의 근거가 되는 특별법 제정은 기약도 없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6일 열린 ‘개성공단 문제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서는 개성공단 피해보상 특별법과 정부의 책임회피 태도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중기이코노미

한계가 있는 개성공단 피해보상 관련법

대한변호사협회 남북교류협력소 한명섭 위원장은 국회에서 6일 열린 ‘개성공단 문제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피해를 입은 입주기업들에 대한 현실적인 구제방법은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경협보험뿐”이라고 지적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에 보상을 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헌법 제23조 제3항은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정부는 관련 입법없이 헌법 규정만을 근거로 입주기업들의 손실보상청구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에 대한 보상 관련 발의안은 모두 4개다. 정의당 추혜선 의원이 발의한 ‘남북협력기금법 일부개정법률안’, 더불어민주당 원혜영 의원이 발의한 ‘금강산 관광사업 중단 또는 5·24조치로 인한 남북경제협력사업자 등 손실보상에 관한 특별법안’, 민주당 심재권 의원이 발의한 ‘개성공단 입주기업 등의 피해지원에 관한 특별법안’, 민주당 홍익표 의원이 발의한 ‘남북경제협력사업 중단에 따른 손실보상에 관한 특별법안’이다.

한 위원장은 “각각의 법들을 근거로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을 지원하기에는 한계가 존재한다”고 했다.

추 의원안은 경협보험 가입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127개 입주기업들 중 약 40%, 46개 기업들은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 원 의원안에 따르면, 손실대상은 금강산 관광사업 중단 또는 5·24조치로 인한 손실로 제한돼 개성공단 전면중단으로 인한 피해는 적용대상이 아니다. 심 의원안은 입주기업들의 피해 ‘보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원’을 위한 법이다. 따라서 입주기업들이 피해에 대해 정당한·완전한 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 개념이 아니라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는 피해 ‘지원’ 개념이기 때문에 피해범위와 수준을 둘러싼 충돌이 발생한 소지가 많다. 홍 의원안은 구제대상인 ‘개성공업지구 중단에 따라 경제적 손실을 입은 자’가 지난해 2월 중단조치만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향후 또 다시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를 의미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오는 11일이면 정부가 북한 핵개발을 이유로 개성공단을 전면 중단시킨지 1년이 된다.<사진=뉴시스>

이와 관련 한 위원장은 “홍익표 의원 발의안이 헌법 제23조 제3항의 규정에 가장 부합하는 법안이라 할 수 있다”면서도 “적용대상을 지난해 2월 개성공단 중단에만 국한할 경우, 개성공단 재개 후 유사사태가 발생하면 또 다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보험으로 충분’…입주기업 “정부, 책임있는 보상”

특별법 제정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원혜영 의원 발의안에 대한 검토보고서에서 나타난다. 외교통일위원회 전문위원 검토보고서를 보면 ▲경영 외적인 사유로 인한 경영손실 위험은 상존하며, 그에 따른 이득 또는 손실은 경제주체(입주기업)의 몫이며 ▲남북관계 변화에 따라 협력사업 손실 가능성은 예상 가능한 것으로, 국가가 보상하는 것은 일반사업자 등과의 관계에서 형평성 문제가 있을 수 있고 ▲남북협력사업 중단에 따른 보상을 법률에 규정할 경우 보상 책무로 인해 정부 대북정책이 영향을 받을 우려가 있으며 ▲손실 가능성에 대비해 보험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별도로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이런 입장은 피해자들에게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로 참석한 신한물산의 신한용 대표이사는 “2013년도에 개성공단 잠정 폐쇄시 그리고 재개됐을 때 경협보험규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역설했지만, 통일부는 현행법에서 보험으로 충분히 보상 가능하다고 말했다”며 “그 결과 지금 법률제정은커녕, 개성공단이 전면중단된 작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수 기업들에 대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신한물산의 신한용 대표이사(사진 맨 왼쪽)는 “2013년 개성공단 중단 당시 경협보험규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여러차례 역설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로 인해 입주기업들의 피해가 커졌다”고 했다.   ©중기이코노미

한 위원장은 “남북경협사업은 우리 헌법이 명시하고 있는 평화적 통일을 이루기 위해 국가가 직접 추진해야 할 의무가 있는 업무”라며 “정부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이를 중단하도록 조치할 경우 당연히 그에 따른 손실보상을 해야 하는 것이 헌법 규정의 취지”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 위원장은 “현재 발의된 특별법들은 개성공단 전면중단 원인을 어디에 뒀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다. 지원이라고 하면 입주기업의 권리가 아니라 정부가 안해줘도 되는 것을 해준다는 혜택을 뜻한다”며 “북한의 핵실험이 있었다고 하지만, 2013년과 달리 이번 전면중단은 우리 정부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북한이 개성공단 중단조치를 취할 경우 경협보험제도로 보상을 하는 것이 맞겠지만, 이번 같은 경우는 그렇지 않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입주기업들의 설비를 인수하고, 향후 개성공단 사업이 재개되는 경우 입주기업에 환매권을 주자는 제안에 대해서 한 위원장은 “지난해 개성공단 입주기업에 대한 보상조치를 논할 때, 입주기업의 설비를 정부가 인수하고 입주기업에 환매권을 주도록 하자는 의견이 이미 나왔었다”며 “이번 일로 인해 입주기업들이 다시 개성공단으로 들어갈지가 불투명하다. 무조건 입법화를 통해서만 해결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책임을 지고 관리하며, 입주기업에도 선택권을 주는 쪽이 현실적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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