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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액주주·우리사주 사외이사, 재벌 불법 막는다 30대그룹 사외이사 찬성률 99.6% ‘빈껍데기’ 불과…독립성 결여

기사입력2017-02-16 10:29

김성화 기자 (rukawasss@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최순실·박근혜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으로 재벌총수들의 전횡과 불법이 낱낱이 드러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재벌기업을 포함해 기업의 경영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법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월 임시국회에 계류 중인 상법개정안에 포함된 ‘사외이사제’는 그 중 하나로, 재벌총수들의 관행화된 횡령과 배임을 예방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 중 하나다. 우리사주조합 또는 소액주주를 대표하는 사외이사 선임을 규정한 상법개정안인 것이다. 또 서울시의 경우 지난해 9월 전국에서 최초로 사외이사제와 유사한 ‘근로자이사제’ 조례를 제정하고, 산하 공공기관에 이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근로자이사제는 노동조합이 사외이사를 선임해 이사회에 파견하는 제도다.

비상임이사인 사외이사는 업무집행 결정권 및 이사의 직무집행에 대한 감독권을 가지며 이사회의 구성원이 된다. 법률상 상임이사와 동일한 권한과 책임을 갖는다. 사외이사제는 외환위기 이후 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와 투자자의 이익을 보호하고,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도입했다. 사외이사는 사외인사이고, 전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독립성이 보장되는 경우 이사회를 통해 경영진에 대한 감시와 견제역할을 할 수 있다.

재계 반대하지만…30대그룹 사외이사 찬성률 99.6%

<자료=CEO스코어>

사외이사제 또는 근로자이사제 모두에 대해 재계는 확실한 반대입장을 밝혔다. 지난 9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발표한 ‘상법개정안에 대한 경제계 의견’ 자료 중 ‘근로자대표 등 추천자 사외이사 의무선임’ 부분을 보면 “회사 발전보다 근로자, 소액주주 이익만 주장해 의사결정 지연과 왜곡 초래가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대한상의는 또 “시장의 꽃이라는 ‘주식’제도는 1주1의결권 원칙이 생명이다. 주주의결권 행사방법과 이사회 멤버 구성까지 규제하는 선진국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며 “현행 기업 지배구조 관련 제도는 이미 선진국 수준인 만큼 제도를 계속 강화한다고 해 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렵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일인 만큼 제도강화로 추구할 것과 시장감시로 할 것을 구분해야 한다”고 했다. 대한상의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대안으로 기관투자자의 역할을 확대한 ‘스튜어드십 코드’를 활용할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현재의 사외이사들이 사실상 ‘거수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부정할 수는 없다. 지난 2015년 5월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을 의결한 삼성물산 이사회에서 불리한 합병비율에도 합병을 반대한 사외이사는 없었다. 당시 삼성물산의 이사회는 총 7명, 그 중 사외이사가 4명으로 과반수가 넘지만 이를 승인한 것이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지난해 3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30대그룹 180개 계열사의 이사회 안건 4001건 가운데 1명이라도 사외이사가 반대한 건은 17건에 불과했다. 찬성률이 무려 99.6%다. SK그룹과 LG그룹 등 18곳은 찬성률이 100%다. 그리고 삼성전자는 99.7%, 현대자동차는 99.6%로 거수기 수준을 넘어 사내이사와 사외이사는 한 몸이란 표현이 맞다.

사외이사 후보 추천도 어렵고…선임 자체도 불가능

<자료=네이버 금융/그래픽=김성화 기자> ©중기이코노미

사외이사가 거수기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선출과정에 독립성이 없는 탓이다. 현행 상법에 따르면, 상장회사의 자산규모 등을 고려해 이사 총수의 1/4 이상을 사외이사로 선임해야 한다. 또 주주총회를 통해 사외이사를 선임할 때 과반수 이상 사외이사로 구성된 후보추천위원회를 설치, 후보를 추천받아야 한다.

후보추천위원회는 ▲의결권없는 주식을 제외한 발행주식 총수의 3% 이상을 보유한 주주 ▲주총 6개월 전부터 계속해 상장회사 발행주식 총수의 1.5% 이상을 보유한 주주 ▲주총 6개월 전부터 계속해 상장회사의 의결권 없는 주식을 제외한 발행주식 총수의 1%를 보유한 주주가 추천한 후보를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국내 4대 재벌을 대상으로 보면 15일 기준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262조7890억원으로 이 중 1.5% 지분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3조9418억원, 1%는 2조6278억원이다. SK그룹 시가총액의 1.5%는 2358억원, 1%는 1572억원이다. 현대자동차는 각각 4741억원·3160억원, LG그룹은 1656억원·1104억원에 달한다. 이들 재벌기업에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하기 위해서는 적게는 1000억원, 많게는 2조6000억원 상당의 지분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재벌기업 총수가 허락하지 않으면 사외이사를 후보에 올리는 것조차 사실상 어려운 셈이다. 설사 소액주주를 대표한 인사가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됐어도 1주1표를 행사하는 주총에서 재벌총수의 의사에 반해 선임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 또한 현실이다.

우리사주조합 또는 소액주주 추천 독립적 사외이사제

이같이 허울뿐인 사외이사에 대한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추천과 선임절차를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고, 그 내용을 담은 상법개정안이 나온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의원은 현행법상 소액주주가 보유한 사외이사 추천권을 우리사주조합으로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소액주주와 우리사주조합은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에 각각 1인의 후보를 추천하도록 요구할 수 있으며, 주총에서는 이들 2명의 후보 중 1명을 반드시 사외이사로 선임해야 한다.

김 의원안의 경우 우리사주조합 또는 소액주주가 추천하는 후보 중 1인이 최종적으로 사외이사에 선임되는 반면 국민의당 채이배 의원 발의안은 소액주주가 추천한 후보가 사외이사로 선임된다. 여기서 소액주주란 최대주주 및 그의 특수관계인을 제외한 주주 중 발행주식 총수의 3% 이상을 6개월 전부터 계속해 보유한 주주를 말한다.

발행주식 3%를 보유해야 하는 소액주주 요건 자체를 충족하기 어렵다는 지적에 대해 채이배 의원실 강정민 보좌관은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최소한의 견제와 감시가 가능한 독립이사를 1명은 둘 수 있는 길을 열어두자는 것”이라며 “재벌그룹의 경우 3% 지분이라는 기준점을 소액주주라고 볼 수 없지만, 총수일가의 경영을 견제하기 위해 이 정도 규모의 주주에게 권한을 좀 더 주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소액주주와 우리사주조합에게 사외이사 추천권을 부여한 김종인·채이배 의원안과 달리, 노회찬 의원안은 사외이사 중 1인은 근로자대표가 추천한 인물로 선임해야 한다. 서울시 산하 공공기관들이 도입하고 시행 중인 근로자이사제를 법안으로 명시한 것이다.

근로자이사제와 관련,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소장은 중기이코노미의 취재과정에서 “특정 주주에게 사실상 사외이사 선임권을 특별히 부여하는 것은 법체계상 논란의 소지가 있다”며 “노동자의 경영참여는 상법이 아니라 노동관계법을 포함 특별법 제정으로 접근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또 근로자이사제가 사실상 노동자 경영참여의 취지로 제안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노동조합에 대한 국민신뢰를 쌓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채이배 의원실 강 보좌관 또한 “근로자이사제 도입도 고려한 바 있지만, 우리나라 노동조합에 대한 신뢰가 낮은 상태에서 무조건 추천권을 주는 것이 맞느냐에 대해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독일도 근로자이사제를 개별 특별법을 통해 도입했듯이, 상법에 도입할 것인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며, 노사간 대타협도 선행적으로 이뤄져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신뢰가 낮기 때문에 근로자이사제 도입을 사실상 반대하는 의견에 대해 반론도 적지 않다.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의 대부분은 보수언론에 의해 왜곡 또는 과장된 것이 많다는 이유다. 노동조합이 정치적인 문제를 제기하면 ‘정치투쟁’이라는 논리로 비판하고, 임금인상을 주장하면 ‘이기주의 집단’이라고 비난했던 당사자가 정부였고 또 보수언론이라는 얘기다.

서울시 노사정 서울모델협의회 박태주 위원장은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근로자이사제는 근로자들이 기업의 이해당사자로서 책임있게 경영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지금까지 사외이사들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었고, 내부 이해당사자인 근로자이사가 현 사외이사들 보다 적극적이고 책임있는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근로자대표가 이사로 들어가면, 근로자들의 의견을 반영함으로써 노사갈등을 사전적으로 해결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며 “서울시에서 근로자이사제를 도입함으로써 주주자본주의 성향이 강한 우리나라에 근로자들 또한 기업의 이해당사자임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