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합업종 품목 중 49개가 올해 일몰을 앞두고 있다. ‘보호막’마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생계형’ 적합업종부터라도 법제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적합업종 품목은 지난 2011년 지정된 김치, 단무지, 고압가스(용기) 충전업 등 제조업 55개와 제과점업, 서적 및 잡지류 소매업, 음식점업 등 서비스업 18개 등 73개다.

소상공인 10명 중 8명은 ‘생계를 위해 창업’

통계청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소상공인 사업체 수는 306만3000여개로 전체 사업체의 86.4%다. 종사자 수를 보면 604만6000여명으로 전체 사업자 종사자 수의 37.9%을 차지한다. 소상공인을 업종별로 보면, 도·소매업이 85만2000개(28.2%)로 가장 많고, 이어 숙박 및 음식점업이 60만6000개(20.1%)다. 이를 합치면 소상공인 사업체의 절반에 육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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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아인 차상익 변호사는 지난 2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소상공인 생존권 보호 생계형 적합업종 법제화’ 토론회에서 “고용침체로 청년들이 취업을 포기하고, 여기에 베이비부머의 은퇴시기가 본격화 되는 시점에서 이들 세대의 재취업도 쉽지 않다”며 “퇴직 후 진입장벽이 낮은 생계형 창업이 늘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소상공인진흥공단에서 조사한 ‘2013년 전국 소상공인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1만490명의 소상공인 중 82.6%는 ‘생계유지를 위해서’ 창업을 한다. 같은 자료를 보면 소상공인 소득수준은 월평균 187만원으로 임금근로자의 평균임금(329만원)의 절반 수준이다. 월평균 영업이익이 월 300만원 이상인 소상공인은 19.4%에 불과했다. 제조업(254만원)과 전기·가스·증기 및 수도사업(261만원)이 가장 높았고, 부동산중개 및 임대업(121만원), 수리 및 기타 개인서비스업(151만원), 출판·영상·방송통신 및 정보서비스업(163만원) 순이다.

이처럼 수익이 낮은 데다, 대기업이 생계형 업종에 진출하게 되면 소상공인은 설 곳마저 잃게 된다. 이날 토론회 자료를 보면, 2009년에서 2013년 사이 대규모기업집단의 계열사 수는 1139개에서 1616개로 늘어난 반면 제조업 계열사 비중은 32.3%에서 28.3%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서비스업 계열사 비중은 67.7%에서 71.7%로 증가했다. 늘어난 477개의 계열사 중 387개가 서비스업이고, 이 중 111개 계열사는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업종이다. 2013년 기준 대기업집단 1616개 계열사 중 318개가 적합업종에 해당하는 대기업 계열사인 것이다.

차 변호사는 “생계형 업종 대다수가 저자본과 저부가가치 업종이므로 진입장벽이 낮고,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다. 결국 업체간 과잉경쟁을 유발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생존율과 부가가치 창출은 낮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고 지적했다.

소상공인 ‘보호막’ 적합업종…법제화에 사활

2011년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제조업분야 36개 품목의 481개 기업 대상<자료=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법제화 토론회 자료집/그래픽=김성화 기자>   ©중기이코노미

그나마 적합업종이 보호막 역할을 해 왔다. 이날 자료를 보면, 2011년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제조업분야 36개 품목의 481개 기업의 매출액 평균 증가율은 적합업종 지정 이후 2012년 7.19%로 증가했다.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5개 서비스업종도 2010년에서 2014년 사이 내수침체 등 전반적인 악조건 속에서도 연평균 5.68% 증가했다 또 영업이익률은 평균 20%대를 유지했고, 고용증가율도 연평균 4.22%였으며, 자기자본비율도 호전됐다.

이 때문에 올해 ‘생계형’ 적합업종이라도 법제화하려는 움직임이 국회 등 정치권에서 활발하다. 더불어민주당 이훈 의원은 중소기업청장이 생계형 적합업종을 지정·고시하고 대기업의 확장을 막도록 할 수 있는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적합업종 법제화는 19대 국회에서도 시도된 적이 있다. 하지만 반론이 만만치 않아 폐기됐다. 이날 토론회에서도 적합업종 지정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국경제연구원 윤상호 박사는 “시장이 완전경쟁시장이 되기 위해선 진입과 퇴출이 자유로워야 한다. 적합업종은 그 원칙에 반하는 제도”라며 “생계형 적합업종 자체가 부가가치 창출이 어렵고, 과잉경쟁 상태다. 그런 시장에 대기업이 뛰어들 이유가 없으며, 이미 중소기업만 영위하고 있어야 한다. 시장에 진출하는 건 현존하는 시장 참여자에게 보이지 않으나, 다른 사람에겐 (수익이)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기회를 막으면 결국 시장 자체가 후퇴하고 최종적으로 소비자들의 피해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한국순대산업협동조합 방재홍 사무국장(왼쪽 세번째)는 “순대 품목은 적합업종의 모범사례 중 하나”라며 “적합업종 법제화를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중기이코노미

이에 대해 참여연대 금융센터의 김성진 변호사는 “경제논리나 시장논리는 헌법적 틀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며 “시장지배적 위치를 이용해 경제력을 남용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경제논리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대기업의 경제력 남용 문제가 하루 이틀 제기된 문제가 아니다”고 반박했다.

한국순대산업협동조합 방재홍 사무국장은 “순대 품목은 적합업종 혜택을 본 품목 중 하나다”라며 “적합업종 지정 이후 업계 종사자들이 마음 편히 일을 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적합업종으로 지정돼 대기업이 진출을 못하면서 유통을 핑계로 접근해 제품에 대기업 마크를 붙여 자신들의 브랜드로 팔도록 제안하는 경우도 있다”며 “중소기업 업체들은 이런 제안을 받을 수도, 안받을 수도 없다. 그렇게 해서 도태된 품목이 냉동만두 품목이다. 15년 전부터 이런 방식으로 넘어가, 지금 마트에 가면 중소기업에서 제조한 제품을 볼 수가 없다. 대기업이 굳이 이런 품목에까지 뛰어드나 싶지만, 이런 대기업들로부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보호하는 것이 적합업종”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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