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분양제를 하면 재무구조가 취약한 중소 주택건설사가 대량 도산할 것이란 주장이 있지만, 현행 선분양제에서도 대기업의 브랜드 선호도가 청약경쟁률에 그대로 반영되면서, 이미 중소건설사는 몸살을 앓고 있다.<이미지 출처=이미지투데이>

선분양제에서는 주택에 대한 정보가 공급자에게 편중돼 있다.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정보는 건설사가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자료나 모델하우스 정도다. 실질적인 정보가 전무한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높고, 프리미엄도 많이 붙는 대기업 브랜드 위주로 청약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주택시장의 속성을 감안하면, 선분양제보다 후분양제가 중소건설사에 유리하다. 후분양제를 도입하면 중소건설사가 대량 도산한다는 주장은 그 근거가 없거나 약하다.

오히려 브랜드 파워가 약한 중소 건설업체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후분양제를 실시하기도 한다. 건설업체 입장에서는 소비자로부터 미리 자금을 받을 수 있는 선분양이 후분양보다 훨씬 유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소업체 일부가 후분양을 하는 이유는 브랜드 약점을 품질로 극복함으로써 주택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이에 대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국책사업감시팀 최승섭 부장은 중기이코노미와의 인터뷰에서 “작은 기업들이 선분양을 해보고, 브랜드에 밀려 분양이 안 돼 어쩔 수 없이 후분양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후분양제가 오히려 중소업체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근거는 많다.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주택시장도 소품종 대량생산체제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체제로 바뀌고, 이때 소비자의 다양한 니즈를 탄력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중소건설사로선 호기다. 또 중소건설사가 틈새시장을 찾아 장기적으로는 주택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도 있다.

한양대학교 도시공학과 이창무 교수는 “후분양제가 대기업에만 유리하고 중소기업에 불리한 제도는 아니다”라고 했다.   ©중기이코노미

지난 2015년 정부가 중산층 주거안정을 위해 도입한 ‘뉴스테이’ 사업은 후분양제에서도 중소건설사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뉴스테이는 의무 임대기간인 최소 8년 동안 상승률이 연 5% 이하인 임대료만으로 거주할 수 있는 기업형 임대주택이다. 사업에 참여한 건설사는 정부로부터 주택도시기금 저리융자, 택지 할인공급 및 인허가 특례 등의 지원도 받을 수 있다.

이창무 교수는 “뉴스테이를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8년 임대 후 분양제”라며 “최근 뉴스테이 진행 상황을 보면, 대기업만 독차지하는 구조가 아니다. 이를 보면 중소기업이 개발금융에 취약하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뉴스테이가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 금융장치들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라며 “후분양제에서도 뉴스테이에서 시도했던 개발금융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선분양제 하에서 건설사들은 공급물량을 하나라도 더 밀어내기 위해, 견본주택이나 홍보책자 제작에만 심혈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후분양제에서 소비자가 직접 주택을 보고 판단할 수 있게 되면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선택받기 위해 주택의 품질을 높이는 노력을 할 수밖에 없다. 공정한 경쟁이 가능해져 실력있는 중소건설사엔 기회가 될 수 있고, 소비자들은 지금보다 양질의 주택을 공급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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