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적세무조사’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세무공무원의 직권남용을 통제할 수 있는 제재수단이 미흡하기 때문이란 주장이 나왔다. 따라서 불공정한 세무행정을 차단하기 위해 세무공무원의 직권남용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하고, 불법행위로 인해 국민이 부담한 세금을 돌려줄 때 ‘징벌적 손해배상’ 성격의 가산금을 부과하자는 방안도 제시됐다.

현행 국세기본법 제81조의4 제1항은 ‘세무공무원은 적정하고 공평한 과세를 실현하기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에서 세무조사를 하여야 하며, 다른 목적 등을 위하여 조사권을 남용해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세무공무원 자신이 세무행정을 처리함에 있어 공정의무를 부과한 규정이다. 또 동조 제3항에는 ‘누구든지 세무공무원으로 하여금 법령을 위반하게 하거나 지위 또는 권한을 남용하게 하는 등 공정한 세무조사를 저해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했다. 세무공무원 이외 제3자가 청탁 등의 방법을 통해 세무공무원이 지위와 권한을 남용하도록 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이다.

현행법상 이처럼 세무공무원과 제3자 모두에 대해 공정의무를 부과하고 있음에도 세무행정의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공정의무 위반에 대한 벌칙규정이 없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세무공무원, 지인 청탁받고 관할권도 이전해 표적조사

7일 서울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세무행정의 불공정-세무조사의 개혁방안을 중심으로’ 토론회.   ©중기이코노미

사건 조사과정에서 세무공무원 甲은 이 사건 관할권이 없는 서울지방국세청으로 세무조사 관할이 이전되도록 조정했다. 또 조사과정에서 B의 조세포탈혐의가 인정되지 않자, 세무공무원 甲은 동료 세무공무원으로 하여금 B가 실질사주로 있는 乙사의 법인결산서 등을 조회하도록 하는 등 세무조사 권한을 남용했다.

이같은 표적세무조사를 통해 서울지방국세청은 B가 乙사 주식 1009주를 C에게 명의신탁한 사실을 확인했고, 관련법에 따라 C에게 증여세 4700만원을 부과했다. 이 사건 조사과정 중 세무공무원 甲은 B에게 A와의 합의를 종용하는 언행도 서슴지 않았다.

증여세 부과처분에 불복한 C는 조세심판원 및 서울행정법원에 취소심판·소송을 청구했지만 모두 기각되면서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했다. 서울고법은 “이 사건 세무조사는 당초 세무공무원 甲이 B를 압박하려는 목적의 탈세제보로 시작됐다”며 “세무조사 관할이 없는 서울지방국세청에서 세무조사를 실시한 것은 관할 위반이고, 조세포탈 혐의가 인정되지 않음을 알면서도 세무조사범위를 부당하게 확대한 것도 국세기본법 제81조의4 제1항에서 요구하는 필요 최소한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판단했다. 서울고법은 또 “합의를 종용하는 것으로 보여 지는 언행까지 모두 종합해보면, 이 사건 세무조사는 세무조사권을 남용해 이루어진 것으로 위법”이라며 “따라서 처분도 위법한 세무조사를 통해 수집한 과세자료에 기초해 이루어진 것으로 적법절차 원칙에 위반돼 취소돼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올라갔지만 상고기각 되면서 종결됐다(대법원 2016.12.15.선고, 2016두47659).

표적세무조사 “실제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乙사에 대해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시작했던 2012년 4월 이후 대법원 판결이 확정되기까지 4년6개월 이상 A와 C는 국세청의 ‘공세’를 견뎌낸 탓에 자신들의 권리를 회복할 수 있었다. 세무공무원들이 세무조사 권한을 남용, 법원에 의해 불법으로 확인된 사례는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경제개혁연대 이창헌 정책위원은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실제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며 “그동안 쉬쉬하면서 넘어간 사건들도 많았지만 이렇게 적나라하게 밝혀진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세무공무원의 지위와 권한 남용을 제지할 수 있는 근본적인 개선책이 필요한 대목이다.

<자료=세무행정의 불공정/그래픽=박홍기기자>   ©중기이코노미

한편 이 사건에서 공무원의 지위를 남용한 세무공무원 甲은 지인인 A가 부동산을 되찾을 경우 12억원의 뇌물을 받기로 약속했다는 등의 혐의사실로 공소제기돼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위법한 세무조사…징벌적손해배상, 가산금의 5배 지급

위법한 세무조사로 인해 권리가 침해받았을 때 구제하는 방안 중 가장 일반적인 것이 항고소송이다. 국세청의 부당한 처분에 대해 국세심판원 또는 법원에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심판 또는 소송이다. 세무조사결정은 납세의무자의 권리의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공권력 행사에 따른 행정작용으로 항고소송의 대상이라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다. 그러나 이는 사후적 권리구제 수단에 불과해 납세자의 실질적인 보호에는 미흡하다.

이창헌 정책위원은 실질적인 보호방안으로 국세환급가산금의 증액을 제안했다. “부과처분의 취소 등으로 이미 납부한 국세를 환급받는 경우, 과거에는 금리가 높아 연 5%정도 이자 상당의 가산금을 받았는데, 현재는 연 1.8%로 떨어져 제재효과가 미미하다”며 “적어도 법원판결을 통해 위법한 세무조사가 밝혀진 사안에는 징벌적손해배상의 의미로 가산금의 5배 지급을 법제화함으로써 마구잡이식 세무조사나 남용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위법한 세무조사를 한 공무원에 대한 형사처벌 제도도 신설하자고 주장했다. 현재 국세기본법은 세무조사권한의 남용을 금지하고 있고, 나아가 청탁에 기한 위법한 세무조사도 금지하고 있지만 위반한 경우의 처벌규정은 없다. 이 정책위원은 “일명 청부세무조사를 한 공무원은 형법상 직권남용죄로 규율할 수 있으나, 법 적용이 어려운 탓에 유죄로 인정된 사례를 본적이 없다”며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조세범처벌법 관련조항을 신설해야 한다”고 했다.

이와함께 세무조사 남용 등의 방지를 위해 현재 운영 중인 납세자보호위원회 및 납세자보호관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이 정책위원은 “이들 기관이 지방 국세청에 소속돼 있다보니, 세무조사의 제어보다는 강화 쪽으로 운영될 여지가 있다”며 “독립적 기관으로 격상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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