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무역주의 타깃으로, 중국과 함께 한국은 미국이 주목하는 국가 중 하나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3월1일 발표한 ‘2017 무역정책 의제와 2016 연례보고서’를 통해 한·미 FTA로 미국의 적자가 두 배 이상 늘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미국의 對한국 수출은 12억달러(약 1조3000억원)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한국 제품 수입액은 130억달러(약 14조8000억원) 늘었다. 한국산 제품에 대한 미국의 보호무역 조치가 강화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미국은 지난 1월 한국산 가소제에 대한 예비관세를 부과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플라스틱 제조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인 가소제는 한국이 미국 수입시장에서 1위(56%)를 점유하고 있는 품목이다. 지난해 한국산 도금 강판·열연강판 등에 반덤핑관세를 부과한데 이어 석유화학산업에 대해 본격적인 견제를 시작한 것으로 풀이된다.

직접적인 무역구제조치는 국가간 무역분쟁을 불러올 수 있어 미국의 입장에선 부담이 갈 수 있지만, 원산지 검증은 그렇지 않다. 합당한 절차와 이유에 따라 수입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유력한 보호무역주의 수단이다. 원산지 검증이란 자국으로 수입된 협정당사국 상품이 FTA협정에서 정한 원산지 기준, 원산지증명서 또는 운송기준 등을 충족하는지 조사하는 것을 말한다.

2013년기준.<그래픽=이가영 기자>   ©중기이코노미

한·미 FTA의 경우 섬유·의류제품이 집중 검증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세계최대 의류시장이다. 지난해 섬유·의류제품 수입액만 1215억달러(약 141조원)를 기록했다. 미국시장과 섬유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전통적으로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이유다. 2014년 기준 제조업 평균 관세율은 3.2%지만, 직물과 의류의 평균 관세율은 각각 7.9%와 12%였다.

이와함께 일반물품과 달리 까다로운 원산지 기준을 마련, 검증하고 있다. 의류생산시 미국산 섬유 원부자재를 사용하도록 하는 ‘원사규정(yarn-forward rule)’, 섬유 비원산지 재료의 중량이 상품 총중량의 7% 이하일 때만 원산지 상품으로 인정하는 ‘최소허용수준’ 등이 대표적이다. 원산지 기준 충족여부와 함께 지식재산권, 저가신고 등 무역에 관한 여타 불법행위가 있는지도 조사한다.

원산지 검증이 까다로우니 관세추징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미국 관세청(CBP)은 전체 관세수입의 약 42%(137억달러)가 섬유·의류제품에서 거둬들인 것이라 밝힌 바 있다. 한국 섬유·의류기업의 대비가 필요한 대목이다.

‘미국 생산자 식별코드(MID)’로 생산시설 여부 추정

제품을 수출할 때 원산지증명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한·미 FTA에서는 수출자(또는 생산자)가 자율적으로 원산지증명서를 발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별도의 기관을 거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시간이 절약되고 편리하다. 그러나 수입국 세관과 직접 대응해야 하는 부담이 있고, 관련서류도 협의된 언어로만 제출해야 해서 어려움이 따른다. 한·미 FTA는 모든 서류를 영어로 작성해야 한다.

<그래픽=이가영 기자>   ©중기이코노미

특히 ‘미국 생산자 식별코드(MID)’에 주의해야 한다. 미국세관은 MID정보와 우리나라가 제공하는 ‘섬유류 연례 기업정보’를 분석, 실제 생산시설이 없는 것으로 추정되는 업체를 검증대상으로 선별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제 생산공정을 수행한 생산자 정보로 표기해야 한다. 아울러 MID정보를 인보이스(송장), 포장명세서 등 무역서식에 맞춰 작성하고 수입자에게 전달해야 한다. 여러 생산자가 생산한 물품을 1건의 인보이스로 수출하는 경우에는 각각의 생산자를 모두 MID정보로 기재해야 한다.

정확한 MID 정보를 지속적으로 수입자에게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의 ‘FTA섬유생산정보관리시스템(www.ftatex.or.kr)’에 연례기업정보를 등록한 기업이라면, 매년 자사의 연례기업정보 사항을 확인하고 변경사항이 발생하면 즉시 수정해야 한다. 협력업체 정보도 마찬가지다.

사전준비를 거쳤더라도 미국세관으로부터 ‘정보제공요청서(CBP Form28)를 받을 수 있다. 이때 당황하지 말고 입증자료를 제출, 현지검증 대상으로 선정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입자에게 자료를 제공하기 부담스럽다면 요청서에 나와있는 이메일주소를 통해 미국세관에 직접 제출할 수도 있다. 이 경우 관련자료는 반드시 영어로 작성해 송부해야 한다.

입증자료를 충분히 제출하지 못한 경우 ‘현지방문검증’ 대상이 된다. 한·미 FTA의 경우 미국세관에 의한 직접검증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섬유·의류제품은 간접검증을 적용하고 있다. 간접검증은 수입국 관세당국의 검증요청에 따라 수출국 관세당국이 수출자나 생산자에 대한 원산지 충족여부를 검증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수출국 세관과 함께 수출자 또는 생산자를 방문하는 ‘현지방문검증’이 가능하다.

현지방문검증은 사전 통보없이 이뤄진다. 따라서 현지방문이 진행된 경우 수출자 또는 생산자는 현지방문 당일 원산지 검증에 대한 동의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만약 동의하지 않으면 원산지 검증은 실시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경우 해당 수입제품에 대한 특혜관세 혜택은 취소되고 수입자는 관세 등을 납부해야 한다. 따라서 평소에 증빙서류를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지검증시 원재료 구매부터 물품의 수출 등 관련기록을 모두 확인한다. 이에 수출 인보이스 또는 구매주문서(P/O) 단위로 구분해 증빙서류를 관리하면 신속한 대처가 가능하다. 한·미 FTA 협정에 따라 관련 기록은 최소 5년간 보관해야 한다.

<그래픽=이가영 기자>   ©중기이코노미

현지방문검증은 하루에 2~3개 업체를 대상으로 실시된다. 통상 업체당 2~4시간이 소요된다. 따라서 짧은 시간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질문의 의도와 내용을 정확히 파악해 답변하고 입증서류를 제시해야 한다. 증빙자료를 잘 보관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도 중요하다. 생산시설을 견학시키고 제조공정을 충분히 설명하는 것도 필요하다. 현장에서 제출하지 못한 자료는 미국 검증팀이 출국하기 전까지 제출하면 된다. 실제 생산시설이 있는지, 수출물품이 당해 공장에서 실제로 생산되는지 등을 중점적으로 검증한다.

관세사 등 전문가 조언 따랐다면 제재수준 낮아질 수도

한·미 FTA협정과 FTA관세특례법에는 현지 검증시 변호사 또는 관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민간전문가의 조력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따라서 현지방문검증 통보를 받으면, 관세사 등 전문가를 참여시켜 자료제출 요청과 질문에 정확하게 답하는 것이 중요하다. FTA관세특례법에 따르면, 정부기관 등의 조언에 따라 행한 행위가 결과적으로 FTA 규정을 위반해도 ‘합리적 주의(reasonable care)’를 이행한 것으로 간주해 제재수준이 낮아질 수 있다. 원산지 검증뿐만 아니라 원산지증명서 작성, 품목분류 및 원산지 관리 등 다양하게 전문가를 적극 활용하는 게 좋다.

세관의 제도도 이용해 볼만하다. 세관은 FTA 활용확대를 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인증수출자 제도, 원산지확인서 세관장 확인제도, 품목분류 사전심사제도, 원산지 사전심사제도가 대표적이다. 이를 활용하는 경우 세관이 발행하는 인증서 또는 심사(결정)서는 원산시 증빙자료로 인정될 수 있어 반드시 챙겨둬야 한다.

현지검증을 통해 원산지 상품으로 인정되면 대미 수출시 통관지연 등 불이익을 최소화할 수 있으며, 안정적으로 FTA 세율을 적용받을 수 있다. 비록 부정적인 판정결과가 나오더라도 검증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보완·개선하면, 향후에는 FTA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서울세관의 한 관계자는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최근 트럼프 정부가 한국제품에 덤핑관세 부과 등 보호무역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이럴 때 일수록 한국에서 수출되는 상품은 높은 공정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식시켜야 한다”며 “정부와 기업 모두 미국의 원산지검증에 대비해 끊임없이 소통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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