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연구원의 ‘대기업 성장의 협력기업 낙수효과 분석’ 보고서는 자동차 및 조선 업종 대기업의 성장이 협력업체의 매출과 투자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한국산업경영학회의 ‘협력사의 성과에 관한 연구’와 한국국제경제학회의 ‘낙수효과의 존재에 대한 제한적 증거’ 보고서 역시 대기업의 1차 협력업체 표본을 근거로 낙수효과가 작동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명지대학교 금융지식연구소의 ‘대기업 성과가 중소기업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대기업의 성과개선이 대기업과 직접 거래관계에 있는 중소기업의 성과개선으로 이어져 낙수효과가 발생했다. 앞서 언급한 연구보고서의 저자를 포함 대다수의 연구자들은 대기업과 직접 거래관계가 있는 1차 협력업체의 경영지표 등을 제시하며 낙수효과의 존재를 주장했다.

그러나 중소기업연구원의 홍운선 연구위원은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낙수효과의 존재여부를 얘기는 하는데, 기존 연구를 보면 종합적·전반적 시각의 연구는 없다”며 “낙수효과를 대·중소의 하도급 거래관계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게 분석하면 대기업 1차 협력업체에는 어쨌든 효과가 있을 수밖에 없고, 이를 통해 낙수효과를 증명해 왔다”고 지적했다. 낙수효과의 실질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대기업과 직접 거래관계가 있는 1차 협력업체 범위를 넘어 2차, 3차 협력업체로 확대해서 분석해야 한다는 얘기다. 

중소기업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낙수효과에 관한 통계 분석이 주는 시사점’ 자료를 보면, 1차 협력업체를 넘어 2차, 3차로 내려 갈수록 대기업 매출증가에 따른 긍정적인 파급효과가 급격하게 약화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매출이 100% 증가할 때 1차 협력사의 매출은 43% 증가했으나 2차 협력사의 매출은 5%, 3차는 0.4% 증가하는데 그쳤다. 또 삼성전자 매출액이 100% 늘면 1차 협력사의 매출은 56.2% 늘었으나 2차는 7%, 3차 협력사는 0.5%만 증가했을 뿐이다. 낙수효과라고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은 1차 협력업체에 한정되고, 2, 3차 협력업체의 경우에는 낙수효과가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표현해도 틀리지 않는다.

<그래픽=김성화 기자>   ©중기이코노미

2,3차 협력업체로 내려가면 낙수효과 존재하지 않아

삼성전자와 현대차 이외 다른 대기업의 경우에도 1차 협력업체를 넘어서면 낙수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미 확인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의원(기획재정위원회)이 수출입은행으로부터 받은 비공개구용역 ‘수출의 국민경제 파급효과 분석’에 따르면, 지난 2000년 이후 수출대기업(삼성전자·현대차·현대중공업·포스코)의 매출액이 100% 증가할 때 하청업체의 매출액 증가는 0.5% 수준에 불과했다. 포스코의 매출이 100% 증가할 때 1차 협력업체의 매출은 48% 증가했지만 2, 3차로 가면 각각 5%와 0.5%만 늘었다. 현대중공업도 마찬가지여서 1차 협력업체만 74% 늘었고 2, 3차로 가면 매출증가는 각각 7%와 0.6%에 그쳤다.

홍 연구위원은 “대기업 매출액이 늘어날 때 1차 협력업체에서 2차, 3차 협력업체로 내려갈수록 매출액 증가폭이 줄어드는게 상식이다”며 “평범한 조사를 통해 알 수 있는 내용인데, 지금까지 낙수효과를 입증했다는 연구보고서들이 도대체 무엇을 분석했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중소기업연구원이 3차 협력업체까지 거래관계를 분석한 이번 자료는 거래관계가 2차, 3차 협력업체로 내려갈수록 대기업 성장의 효과가 급감하고 있다는 상식을 입증한 것”이라고 밝혔다.

매출액 이외 대기업과 1, 2, 3차 협력업체의 영업이익률을 비교해도 낙수효과가 미미하거나 제한적임을 알 수 있다. 윤 의원이 공개한 수출의 국민경제 파급효과 분석에 따르면, 2000~2005년 삼성전자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16.34%, 2006~2010년은 9.0%, 2011~2014년은 11.27%로 전체 기간 평균 영업이익률은 12.54%다. 반면 2000~2014년까지 삼성전자 1, 2, 3차 협력업체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4.98% 수준이다. 1, 2, 3차 기업의 영업이익률은 삼성전자의 그것과 비교하면 7.56%p 낮다. 

낙수효과가 아니라 ‘단가 후려치기’가 의심된다

삼성전자 영업이익률이 1, 2, 3차 협력업체의 그것보다 2.5배 이상 많다. 1, 2, 3차 협력업체의 2.5배 이상 달하는 삼성전자의 영업이익률을 확인했음에도, 낙수효과가 존재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1, 2, 3차 협력업체에 대한 ‘단가 후려치기’ 등 삼성전자의 불공정 거래행위의 존재를 의심할 수 있는 정황으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이다.

<그래픽=김성화 기자>   ©중기이코노미

그나마 통계에 잡히는 1, 2, 3차 협력업체의 영업이익률이 해당 기업에 고르게 분배되는지도 사실 의문이다. 특정 재벌기업과 특수관계에 있는 협력업체들의 영업이익률은 높은 반면 그렇지 않은 기업들의 그것은 상대적으로 낮을 것이라 추정되기 때문이다. 

실제 산업연구원이 지난해 8월 발표한 ‘자동차산업의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한 전제’ 보고서를 보면, 2015년 현대차·기아차에 자동차 부품을 납품한 37개 비계열 부품사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3.23%다. 반면 현대차의 계열사인 현대모비스 영업이익률은 10.06%, 37개 비계열사 평균 영업이익률 보다 3배 이상 높았다. 현대모비스를 제외한 현대위아, 현대파워텍 등 9개 현대차 계열 부품사의 평균이익률도 4.96%, 37개 비계열사 보다 1.73%p 높다. 

이에 대해 산업연구원은 “현대차와 비계열 부품사 간 거래원가 계산서 등을 보면, 비계열사가 적정한 수익을 낼 수 있을 만큼 현대차가 납품 단가를 보장하지 않아 계열사와 비계열사 부품사간 영업이익률 격차가 발생한 것”이라고 밝혔다. 점잖게 얘기했지만 ‘단가 후려치기’를 했다는 말이고, 이같은 불공정 거래행위가 현대차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낙수효과 주장은 이제 폐기하는 것이 맞다. 설사 낙수효과가 있더라도 대기업과 직접 거래관계에 있는 1차 협력업체에 제한적으로 미칠 뿐이다. 

이와 관련 중기연구원 홍 연구위원은 “모든 중소기업이 1차 협력업체가 아니다. 낙수효과에 대한 제대로된 분석을 위해서는 기업간의 미시적 분석 뿐만 아니라 거시적 분석이 동반돼야 한다”며 “부가가치 유발계수 변화와 고용유발계수 변화, 또 생산유발계수와 수입유발계수를 비교하면 우리 경제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기업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국내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낙수효과의 실효성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낙수효과에 근거한 대기업 중심의 산업정책을 폐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아울러 중소기업 중심 그리고 대·중소기업이 공존할 수 있는 산업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