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 옛 새누리당 그리고 정부가 적합업종 법제화를 반대하면서 제시하는 주장의 근거는 미국 무역대표부가 2014년 발표한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다. 이 보고서를 근거로, 동반성장위원회가 2013년 외식업을 적합업종으로 지정함으로써 “적어도 한 개의 미국기업(외식업체 아웃백)이 사업을 확장하려는 계획에 제한을 받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이유로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적합업종 관련 입법안이 국회에서 잠을 자고 있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이 대표발의한 ‘중소기업·중소상인 적합업종 보호에 관한 특별법안’과 같은 당 이훈 의원이 대표발의한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안’은 관련 산업을 위축시키고, 통상마찰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는 정부의 반대에 부딪힌 것이다.

<그래픽=채민선 기자>   ©중기이코노미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상생법)’은 적합업종제도를 규정하고 있다. 적합업종은 대중소기업 간의 합리적 역할분담을 유도하기 위해 중소기업의 형태로 사업을 영위하는 것이 적합한 업종을 말한다. 상생법에 따라 동반위는 대·중소기업 당사자들 사이에 특정업종을 적합업종으로 정하는 합의가 이뤄지면, 그 합의내용을 공표할 수 있다. 하지만 동반위 적합업종 공표는 ‘권고’ 형식이고, 동반위가 권고한 내용을 대기업이 위반했을 경우 상생법 위반에 따른 벌칙은 없다.

즉, 대기업이 적합업종에 대한 합의를 지키지 않아도 강제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적합업종제도가 중소기업의 사업영역을 보호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나아가 적합업종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법제화해야 한다는 골목상권의 목소리를 반영, 20대 국회에 적합업종 관련 입법안이 발의된 것이다.

적합업종은 비차별적·합리적 국가정책

통상법 전문가들은 적합업종제도가 WTO ‘서비스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S)’과 FTA를 위반하는지 여부를 검토해봤을 때 통상법상 문제될 여지가 없다고 판단한다.

참여연대 김성진 변호사가 지난 2월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법제화를 위한 토론회’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GATS 제16조에서는 서비스공급자 수의 제한이나, 서비스영업의 총수·총산출량과 같은 ‘양적제한’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적합업종제도는 서비스공급자가 대기업인지 여부와 같은 공급자의 자격을 따지는 ‘질적제한’이기 때문에 GATS 제16조 위반이 아니다. 만일 제16조에 저촉된다 해도 ‘공공질서를 위한 것으로써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김 변호사는 주장했다.

또 GATS 전문에서는 ‘국가정책 목표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기나라의 영토 내 서비스공급을 규제하고, 신규규제를 도입할 수 있는 회원국의 권리를 인정’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적합업종제도가 합리적인 절차에 의한 법제화라면 GATS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김 변호사는 GATS 시행 이후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비차별적이고, 합리적인 국가의 정책이 통상위반으로 문제된 사례 자체가 없다는 점에서 적합업종제도가 WTO 등 통상법 위반으로 문제될 가능성은 없다고 강조했다.

한·미 FTA 간접수용에 대한 제소 현실성 없어

더불어민주당 이훈 의원은 “세계경제질서 속에서 다자간 내지 양자간 통상마찰 문제는 항상 있는 것이고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고민해야지, 마찰 우려 때문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중기이코노미

김성진 변호사는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미국 무역대표부에서 문제삼은 사례는 미국의 아웃백이 외식업 적합업종에 포함됨에 따라 피해보는 기업으로 거명된 것이고, 적합업종 합의로 입게 될 아웃백의 손실액은 몇 억원 수준에 불과할 뿐인데, 이 때문에 미국이 아웃백을 위해 통상분쟁을 개시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통상법이 금지하고 목적으로 삼고 있는 ‘보호무역주의’와 같은 조치라야 통상법상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인데, 생계형 적합업종이라는 법 자체가 외국기업이든 국내기업이든 상관없이 중소기업의 사업영역을 대기업이 침해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통상법상 위반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대형마트 규제때도 통상마찰 주장…반발논리?

대기업 규제로 인한 통상마찰을 주장하는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지난 2012년 대형마트에 대해 영업시간제한과 의무휴업일을 강제하는 유통산업발전법이 통과됐을 당시 대기업과 정부가 입법을 반대하며 내세운 논리가 통상마찰 우려였다. 하지만 현재까지 대형마트 규제에 대한 다른 나라의 문제제기는 한 건도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이훈 의원은 중기이코노미 취재과정에서 “정부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정부가 마찰을 자꾸 회피만 하려고 한다”며 “세계경제질서 속에서 다자간 내지 양자간 통상마찰 문제는 항상 있는 것이고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고민해야지, 마찰 우려 때문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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