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국 미술평론가, 종합인문주의 정치비평지 ‘말과활’ 편집위원

목이 쉬도록 노래 불러야 하리.

폭풍우 몰아친 이 땅,

영원히 솟구치는 비분의 우리 이 강물,

쉬지 않고 불어대는 격노한 이 바람,

그리고 그 숲새에서 온

비할 데 없이 온유한 새벽…

― 그 후에 나는 죽어서,

깃털까지도 땅속에서 썩으리라.

왜 나의 눈엔 늘 눈물이 고이는가?

나는 이 땅을 깊이 사랑하기 때문이라…

[아이칭(艾靑), ‘나는 이 땅을 사랑한다’ 전문, 시집 ‘투명한 밤’]

시인의 아들

여기, 독일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의 다섯 개 기둥에 중동 난민들이 사용했던 1만4000여 개의 구명조끼가 묶여있다. 그가 기획한 프로젝트다. 기아와 분쟁, 불평등, 기후변화, 자연재해 등으로 난민의 수가 역사상 최고치에 달하는 상황에서, 이제 난민은 단순히 ‘골치 아픈 문제’가 돼버렸다. 영국이 지난해(2016년)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한 주요 이유도 난민 유입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거듭 발생하는 테러 때문에 난민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급기야 난민을 “독(毒)”이라고 표현하기에 이르렀다(헝가리 빅토르 오르반 총리).

아이 웨이웨이, ‘F.Lotus’, 2016, 구명조끼, 비엔나 벨베데르 궁전 연못.   ©Ai Weiwei

지금, 난민은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었다. 몇 해 전 시리아 내전을 피해 지중해를 건너던 세 살배기 알란 쿠르디가 터키의 보드룸 해변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돼 전 세계가 함께 울었지만, 이젠 그 기억조차 희미해진 듯하다. 그 때문일 것이다. 그가 그 많은 구명조끼를 그 높고 굵은 다섯개의 기둥에 매단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그의 눈엔 늘 눈물이 고여 있는 것 같다. 그 시인처럼. 그는 늘 한 마리 새처럼 목이 쉬도록 노래 부르는 것 같다. 그의 아버지처럼. 그는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가슴으로 품어낸다. 그 시인처럼, 그의 아버지처럼. 그는 쓰촨성 지진(2008년 5월12일)으로 희생된 아이들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투쟁하여 그것을 예술로 펼쳤고, 자신의 SNS(블로그, 트위터)로 자유, 거짓말, 기억 등을 주제로 현실 정치에 깊이 개입했다. 그리고 이제 난민이 사용한 구명조끼로 유럽으로 들어가려는 중동의 난민들의 피해를 예술로 상기시킨다. 우울하고 침울한 기조로 민중을 사랑하는 시를 지었던 그의 아버지의 기질을 그는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우리는 그를 ‘새 둥지(鳥巢, 냐오차오)’라는 별칭을 가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스타디움을 설계한 세계적인 예술가라고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사실 그는 반체제 예술가로 불리며 무책임한 현실 너머의 또 다른 현실을 늘 꿈꾸고 행동하는 실천가다. 그는 단순히 현실을 재현하지 않고 현실을 창출한다. 그가 바로 예술가 아이 웨이웨이(Ai Weiwei, 1957~)이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바로 시인 아이칭(艾靑, 1910~1996)이다.

아이 웨이웨이, ‘코카콜라 상표(Han Dynasty Urn with Coca-Cola Logo)’ 1994, 서한(西漢) 시기의 항아리에 채색, 25×28×28cm.   ©Ai Weiwei

하지만 그는 ‘중국좌익예술가연맹’에 가입해 활동하다 당국에 체포돼 감옥에서 길고 힘든 나날을 보내면서 시인으로 변신했다. 옥중에서 창작한 그의 시들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출옥 후 사회비판적 문인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보였던 아이칭은 중국 문화혁명 중 고발을 당해 18년간 중국 서부의 신장성 고비사막에서 강제노동을 하게 됐다. 하지만 이 유배기간에도 강직한 그의 신념을 절대 굽히지 않았다.

이 시인의 아들이 바로 세계적인 예술가 아이 웨이웨이이다. 아이 웨이웨이에게는 아버지의 체온이 느껴진다. 아버지의 젊은 시절과 같은 그의 예술적 열정이, 현실 정치에 참여하는 사회 비판적 모습이,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품는 인간애가 아버지를 고스란히 닮았다. 그의 작업에는 시인의 땀 내음이 배어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

영국 미술전문지 ‘아트리뷰’는 2011년 ‘미술계 파워 100인’ 중 1위로 아이 웨이웨이를 뽑았다. ‘artsy.com’은 2015년 12월 ‘영향력이 큰 생존 예술가 10인’ 중 첫 번째에 그를 올렸다. 그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이다.

하지만 그의 어린 시절은 척박했다. 아버지의 유배로 중국 북동부 고비사막 부근에서 자라던 어린 시절, 시인인 아버지는 날마다 화장실 청소라는 비천한 일을 해야 했고, 그는 학교도, 책도 전혀 없는 삶을 살아야 했다. 이후 아버지가 복권돼 가족이 베이징으로 돌아왔을 때 비로소 그는 난생 처음으로 미술서적을 접했다. 그 당시가 베이징의 전위파들과 어울려 다녔던 시기다. 하지만 미술가에 대한 정부의 탄압이 있자, 미국으로 거처를 옮겨 활동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점점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했다.

아이 웨이웨이, ‘쓰촨 명단(Sichuan Name List)’, 2008~2011.   ©Ai Weiwei

하지만 그의 진가는 사실 자신의 아버지 아이칭과 같은 사회 비판적 성향에 있다. 아이 웨이웨이가 반체제 예술가로 불리는 것은 중국의 인권문제, 사회·문화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해 왔기 때문이다. 베이징올림픽 주경기장 설계에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개막식에 초청받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다.

특히 사회비판적 성향과 인간애가 돋보이는 활동은 쓰촨성 지진 희생자를 추적하는 작업이다. 중국 정부는 쓰촨성 지진으로 희생된 아이들의 신원조차 제대로 파악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아이웨이웨이는 직접 여러 사람과 조사팀을 꾸려 무려 5000명이 넘는 사망한 아이들의 이름, 성별, 생일 등의 리스트를 완성하고 그것을 ‘쓰촨 명단(Sichuan Name List, 2008~2011)’이란 작품으로 전시했다. 전시 기간 내내 희생된 아이들의 이름이 음성으로 울려 퍼졌다.

근래에 아이웨이웨이는 중국을 넘어 세계적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 바로 난민문제다. 세 살배기 알란 쿠르디의 죽음이 그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그는 2016년 1월30일 쿠르디를 추모하는 행위예술을 펼쳤고, 아이의 죽음을 그대로 따라한 사진을 남겼다. 이어서 2월14일에는 난민들이 착용했던 1만4000여 개의 구명조끼로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의 거대한 기둥을 감쌌다. 그리고 7월14일에는 난민들이 착용했던 구명조끼를 5개씩 모아 하나로 연결해 연꽃 모양을 만들고, 그 연꽃 모양 201개를 연결해 알파벳 ‘F’형상으로 만든 설치작품을 비엔나 벨베데르 궁전 연못에 띄웠다(‘F.Lotus’, 2016). 그가 기둥을 감싼 구명조끼도, 연못에 띄운 구명조끼도 모두 유럽으로 들어가려는 난민의 주요 경유지로 알려진 레스보스 섬에 있던 것이다. 그래서 이 구명조끼에는 서글픈 난민의 현실이 스며있다.

아이웨이웨이는 인류애를 상기시키기 위해 구명조끼를 전면에 내세웠다. 하지만 우리에게 구명조끼는 ‘세월호 사건’을 떠오르게 한다. 어린 학생들이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이 흘러나오는 선내에서 구명조끼를 입고 구조를 기다리며 찍었던 스마트폰 영상들이 머리 위에서 맴돈다. 하루빨리 세월호가 인양되고 그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길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구명조끼가 세월호 사건이 아닌, 난민문제를 먼저 떠올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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