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가계간 ‘부익부 빈인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기업은 더 부자가 되고 있고, 가계는 갈수록 가난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1901개 상장사의 지난해 실적을 추산한 미래에셋대우에 따르면, 이들 기업의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158조원과 107조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상장기업의 사내유보금은 832조원(2015년 기준)이다. 사내유보금이 대기업의 곳간에만 쌓이고, 순환이 되지 않자 2015년 정부는 2017년 일몰을 전제로 기업소득환류세제를 도입했다. 자본금 500억원 이상이거나(중소기업 제외)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대기업에 한해 이익 가운데 80% 이상을 투자, 임금 증가, 배당에 사용하지 않으면 미달금액의 10%를 과세하는 제도다. 사내유보금을 환류시킴으로써 가계소득 증가를 도모코자 했음에도, 결과는 대주주의 배만 불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연말 이후 최근까지 ‘배당서프라즈’란 이름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사상 최고 수준의 배당잔치가 이어지고 있다.

대주주에 대한 ‘슈퍼배당’이 계속되는 가운데 일자리는 외환위기 직후 수준으로 악화됐다. 통계청의 ‘2월 고용동향’을 보면, 2017년 2월 실업률은 지난해 2월 대비 0.1%p 상승한 5.0%, 실업자 수는 3만3000명 증가한 135만명이다. 실업률은 2월 기준으로 2001년 2월 5.5%를 기록한 이후 16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실업난과 함께 가계소득은 줄어들고, 줄어든 소득을 메워 생활비로 사용하기 위한 생계형 빚 또한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2인 가구 이상 연간 월평균 명목소득은 439만9000원, 전년 대비 0.6% 늘었다. 관련통계가 작성된 2003년 이후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물가인상률을 감안하면 지난해 실질소득은 오히려 0.4% 줄었다. 가계 실질소득이 감소한 것은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7년 만이다. 실질소득 감소에 따라 작년 가계소비지출 또한 0.5% 줄었다. 내수침체를 현실을 보여주는 가계소비지출 감소 역시 2003년 관련통계가 나온 이후 첫 번째다. 가계 소득 및 소비와 관련한 대부분의 통계가 악화일로다.

문재인 전 대표는 최근 토론회에서 이재명 성남시장의 법인세 인상 주장에 반대하면서 “(법인세 인상으로)기업이 죽으면 어떡하나?”라고 되물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안희정(왼쪽부터) 충남도지사, 문재인 전 대표, 이재명 성남시장, 최성 고양시장이 19일 ‘KBS 대선후보 경선토론회’ 시작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급증하는 가계부채 문제는 또 다른 뇌관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6년말 기준 가계부채는 1344조원, 가구당 7000만원이다. 지난해 가계부채 증가율(11.7%)은 경제성장률(2.7%)의 4배를 웃돌았다. 경제규모가 커지는 것과 비교해도 가계부채의 규모와 증가속도가 너무 가파르다. 저금리 기조가 계속된 최근까진 가계부채 문제를 후순위로 미룰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금리인상 압력이 높아지고 있어, 발등의 불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12월말 국회에 제출한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대출금리가 1%p 오르면 가계의 추가 이자부담은 9조원 늘어난다. 원리금 상환에 따라 가중되는 부담은 가계의 소비성향을 더 떨어뜨릴 것이 불 보듯 하고, 침체된 내수는 더욱 깊은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 또 저신용, 저소득, 영세 자영업자들의 신용경색은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가계의 파산을 포함 서민경제의 돈 줄은 이미 말라 가계 및 영세 자영업자는 생존 그 자체를 걱정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기업엔 돈이 넘치고 가계엔 빚만 늘어나는 현실을 반영, 국민총소득(GNI)에서 가계(가계에 봉사하는 비영리단체 포함)의 비중은 줄어든 반면 기업의 비중은 늘었다. 한국은행 국민계정 통계에 따르면, 2015년 GNI에서 가계의 소득비중은 62.0%다. 외환위기 때인 1998년 72.8%를 기록했던 가계소득 비중은 외환위기·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최근 7년 이상 60% 초반대에 머물고 있다. 반면 기업의 소득비중은 1998년 13.9%에서 금융위기 이후인 2012년에는 25.8%까지 상승했다. 2015년에는 24.6%로 전년 대비 0.2%p 낮아졌지만, 1998년과 비교하면 10%p 가깝게 높아졌다. 반면 같은 기간 가계의 소득비중은 7.6%p 떨어졌다.

기업소득이 급증한 반면 가계소득이 급감한 이유는 기업이 직접 고용인력을 축소하고, 외주용역 등 비정규직 사용을 남용하는 방식의 구조조정을 추진한 결과다. 수직 종속적 하도급 관계를 시장에 고착시켜 중소기업에 대한 불공정 거래행위로 이익을 독점한 결과다. 또 최대 22% 명목법인세율에도 불구하고 실효세율은 16% 수준, ‘역진적’ 세금구조 역시 GNI에서 기업의 비중을 과도하게 끌어올린 주범 중 하나다.

기업소득이 가계소득으로 이전되지 않으면, 소비→투자→고용→소비로 이어지는 경제성장의 선순환은 이뤄질 수 없다. 천문학적인 규모의 자금이 지금과 같이 기업의 곳간에만 머물고 있다면, 가계와 기업간 소득 양극화 현상은 심화될 것이다. 또 서민경제 위협 차원을 넘어 국가경제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 빠른 시간 내에 기업에 몰린 소득을 가계로 전이시킬 수 있는 유효한 수단을 찾아야 할 때란 얘기다.

기업의 소득을 가계로 돌릴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방안은 법인세 인상이다. 그럼에도 차기 대권에 가장 근접했다고 평가받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법인세 인상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문 전 대표의 핵심공약 중 하나가 재벌개혁임에도 경제민주화법 중 하나인 법인세 인상에 반대하는 것은 다소 의외다.

심지어 문 전 대표는 최근 토론회에서 이재명 성남시장의 법인세 인상 주장에 반대하면서 “(법인세 인상으로)기업이 죽으면 어떡하나?”라고 되물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변명이 문 전 대표 입에서 나온 것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지난해 상장사의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사내유보금과 기업소득의 급증으로 죽어나는 것은 서민가계와 중소·영세기업뿐이다. 부익부 빈인빈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역편향이 동반된 강력한 제재수단이 필요하고,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법인세 인상이다.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의 첫 단추는 법인세 인상이다.

문 전 대표의 법인세 인상 반대입장에 대해 이재명 시장은 “모든 법인을 상대로 하자는 게 아니라 영업이익 500억원 이상의 대규모 기업 440개만 증세하자는 것”이라며 “(법인세) 8%p 증액한다고 죽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 시장은 이어 “이 정도는 있어야 문재인 후보의 기초연금, 아동수당 공약에도 10조원이 드는데 그 일부라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권좌에 앉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고, 문 전 대표가 대통령직 수행을 통해 서민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한다면, 법인세 인상 반대 방침을 철회해야 한다. 법인세 부과대상인 440개의 대기업 중 법인세를 인상하지 않는다는 공약을 믿고 문 전 대표를 지지할 기업은 단 한 곳도 없다. 오히려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지지하는 민주당 지지자를 포함 서민 대다수가 등을 돌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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