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 투자·진출한 한국기업이 매매계약 위반 등 상사분쟁을 겪고 있다면, 법원에 의한 구제보다는 중재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베트남 법원의 소송절차와 비교해, 중재 절차와 시스템이 잘 정비돼있고 또 중재인을 당사자가 선택할 수 있어 전문성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소요되는 시간 역시 소송에 비해 훨씬 빠르다.

대한상사중재원 권희환 국제협력팀장은 29일 열린 ‘2017 Doing Busuness in Vietnam’ 세미나에서 “베트남에 진출하는 국내기업이 늘면서 매매계약 등 다양한 분쟁에 휘말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분석하고, “현재는 베트남 산업구조가 단순하고 계약종류도 한정돼 5억원 미만 분쟁이 대부분이지만, 산업이 고도화될수록 분쟁규모는 커질 것”이라 말했다.

상사분쟁 중재건수, 중국·싱가포르 이어 세번째로 많아

베트남은 매년 6% 이상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풍부한 노동력에다 아세안·중국·인도를 잇는 지리적 위치 등 이점도 많아 국내기업 진출이 활발한 국가중 하나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기업은 약 6000개에 달한다.

<그래픽=이가영 기자>   ©중기이코노미

이처럼 한국기업 진출이 늘면서 분쟁을 경험하는 기업도 증가하고 있다. 대한상사중재원에 따르면 지난해 베트남 국제중재센터에 접수된 중재건수는 총 155건이다. 1993~2016년까지 한국기업이 제기한 중재건수는 80여건으로 중국, 싱가포르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분쟁원인도 대금결제, 인도지연 및 불이행, 각종 계약서 관련 등 다양하다.

베트남은 오랫동안 공산주의국가였던 탓에 현재와 같은 사법제도는 비교적 최근에 구비됐다. 법원을 통한 분쟁해결 절차에서 당사자들의 권리·의무 실행 등에 관한 규정이 불명확한 것이다. 게다가 사법부의 독립이 충분히 보장돼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비즈니스에 대해 법원의 이해와 국제상사분쟁에 대한 전문지식이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부정부패도 적지 않아 뇌물을 통해 유리한 재판결과를 얻어내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소송결과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게 권 팀장의 말이다. 아울러 베트남 경제에서 외국인직접투자(FDI)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국가간 분쟁으로 확대되는 것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베트남에서는 소송보다 국제중재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국제중재는 한 쪽 당사자에게 익숙한 국가의 소송절차에서 벗어나, 제3의 중재원에 해결을 맡기는 제도다. 일방 당사자 국가의 법원에서 재판을 받는 것과 비교하면, 상대편의 공정성 우려를 줄일 수 있다. 중재인을 당사자가 직접 선택할 수 있어 전문성도 높다. 단 중재절차는 양 당사자가 중재에 동의한 경우에만 가능하다. 예컨대, 계약체결시 분쟁이 발생하면 중재원의 판정에 따른다는 조항을 넣을 수도 있고, 분쟁발생시 소송이 아닌 중재로 해결하자고 합의할 수 있다.

중재판정은 법원의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이 있고, 재판절차와 달리 2심 또는 3심 등 불복방법이 없다. 따라서 소송절차와 비교하면 중재절차는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또 비공개 진행이 원칙이기 때문에 기업의 영업비밀과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보호받을 수 있다. 기업의 신용도 하락도 막을 수 있다.

베트남은 2011년부터 국제중재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양 당사자 사이에 국제중재에 관한 합의가 있었다면, 국제중재원에 신청해 절차를 개시할 수 있다. 베트남은 국제상공회의소(ICC, International Chamber of Commerce) 산하 국제중재재판소(ICC International Court of Arbitration), 싱가폴 국제중재원(SIAC), 베트남 국제중재원(VIAC) 등을 중재기관으로 두고 있다.

대한상사중재원 권희환 국제협력팀장은 “베트남에 진출하는 국내기업이 늘면서, 매매계약 등 다양한 분쟁에 휘말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분석하고 “베트남은 2010년부터 중재를 장려하는 상사중재법을 시행하고 있어 국제중재보다 국내중재의 강제집행률이 높다”고 전했다.   ©중기이코노미

중재판정 결과는 베트남 법원의 승인판결을 받아 집행

중재판정 결과는 베트남 법원의 승인판결을 받아 집행한다. 패소한 당사자가 베트남에 거주하고 있거나 영업활동을 하고 있어야 하고, 신청 당시 분쟁대상이 되는 재산이 베트남 내에 있는 경우 베트남 법원의 승인을 받아 중재판정 결과를 집행할 수 있다.

베트남 법원으로부터 집행승인 판결을 받는 외국중재판정은 베트남 법원이 내린 판결과 동등한 법적효력을 갖는다. 그러나 ‘외국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에 관한 UN협약(뉴욕협약)’은 중재판정의 승인이나 집행이 집행국가의 공공질서에 반하는 경우에는 집행국가 법원이 중재판정의 승인이나 집행을 거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외국 상사중재원의 중재판정이라도 베트남 법원에서 집행승인판결을 받지 못하면 판정을 집행 할 수 없다. 베트남 법령에 따르면 ‘베트남법의 기본 원칙에 위반하는 경우’ 법원은 중재판정 승인이나 집행을 거절할 수 있다. 성급인민법원이 중재판정을 승인하지 않는 경우 불복하고자 하는 당사자는 법원의 불승인 판결일로부터 15일 이내에 베트남 최고인민법원에 항소할 수 있다.

권 팀장은 “베트남은 2010년부터 중재를 장려하는 상사중재법을 시행하고 있어 국제중재보다 국내중재의 강제집행률이 높다”며 “집행에 목적이 있고, 상대방의 자산이 베트남에 많은 경우에는 국내중재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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