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내수시장이 작아 수출이 경제를 이끌어야 하며, 수출의 90% 이상을 책임지고 있는 대기업 중심의 수출주도 산업정책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지난해 5월 ‘통화 신용 정책 보고서’를 통해 “수출은 2012년 이후 증가세가 크게 둔화된 데다 세계경기 둔화, 유가하락 및 글로벌 공급과잉에 따른 수출단가 하락세 지속 등 단기·경기적 요인이 가세하면서 빠른 시일 내에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완곡한 표현이지만, 더 이상 수출주도 정책만으론 세계적 추세인 저성장 국면에서 탈출하기 어렵다고 꼬집은 것이다.

한국은행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대기업 중심 수출주도 정책이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한계는 지난 수십년간의 경제성장과정에서 이미 드러났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이 창출한 부가가치 비중, 수출로 만들어진 일자리 비중은 시간이 지날수록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또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국가적인 화두로 등장했음에도 중소기업 대비 대기업의 일자리 창출 능력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국부를 늘리는데 있어 수출의 역할이 축소되고 대기업의 일자리 창출 능력도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는 지금, 대기업 중심의 수출주도 정책을 고집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국민경제에서 수출이 유발하는 생산액은 투자나 소비에 비해 분명 크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4년도 산업연관표의 최종수요 항목별 생산유발 구성비를 보면 2014년 기준 수출은 41.2%, 투자는 19.4%, 소비는 39.4%다. 2014년 우리나라 국민경제에서 총 100원의 상품을 생산한 경우 41원은 수출로 인해 발생한 것이고, 나머지 19원은 투자, 39원은 소비로 인해 발생한 것이다. 국민경제에서 총생산을 늘리기 위해 수출에 주력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100원을 기준으로 소비로 발생한 생산액은 수출로 생긴 생산액보다 2원이 적다.

수출보다 소비의 부가가치·취업 유발계수가 높다

<그래픽=김성화 기자>   ©중기이코노미

그러나 국가가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많이 생산해서 파는 것 보다 많은 이윤과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수출에 통해 발생한 부가가치는 소비로 발생한 부가가치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 2014 산업연관표에 따르면, 소비를 함으로써 발생한 부가가치 비율은 50.0%다. 수출에 따른 부가가치 비율 31.2%다. 수출을 많이 하는 것보다 소비를 늘리는 것이 국민경제에 유익하다는 말이다.

최종수요 1단위당 부가가치유발계수 또한 소비는 0.797인 반면 수출은 0.564에 불과하다. 부가가치유발계수가 0.797이란 의미는 특정상품 1단위가 소비 또는 수출됐을 때 직간접으로 유발되는 부가가치가 0.797이란 얘기다. 앞의 사례에서 수출을 통해 생산된 41원의 직접 또는 간접적인 부가가치는 23원(41원×부가가치유발계수)이다. 반면 소비를 통해 생산된 39원에서 발생한 부가가치는 31원(39원×부가가치유발계수)이다. 소비에 따른 부가가치유발계수가 수출 부가가치유발계수 보다 높다는 점에서 국민경제 규모를 키우기 위해서는 수출증대전략보다 내수확대전략이 낫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2014 산업연관표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수출로 유발된 취업자 비중은 26.1%인 반면 소비로 인한 취업자 비중은 55.2%다. 소비가 유발한 일자리 숫자가 수출로 만든 일자리 보다 2배 이상 많다. 이는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2000년 최종수요에 따른 소비의 취업유발 구성비율은 59.5%, 2005년엔 59.3%, 2010년엔 55.3%였다. 수출주도 산업정책이 수십년 이상 계속되고 있음에도 취업자의 절반 이상은 늘 소비에서 발생했다.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됨에 따라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현실은 소비·투자·수출에 따른 취업유발계수가 떨어지는 지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취업유발계수란 10억원의 상품을 소비 또는 수출했을 때 모든 산업에서 직·간접적으로 유발되는 취업자 수를 말한다. 소비와 수출에 따른 취업유발계수가 하향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낙폭은 수출이 소비에 비해 현저하게 크다.

1990년엔 소비와 수출의 취업유발계수는 큰 차이가 없이 각각 48.2명과 46.3명이었다. 그런데 2000년을 넘기면서 상황은 급반전돼 수출의 취업유발계수는 소비의 그것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2000년에는 소비 24.0명, 수출 15.7명 그리고 2014년엔 소비 15.2명, 수출(8.1명)이었다. 10억원의 상품을 수출하는 것 보다 10억원의 제품을 소비하면 7.1명의 일자리를 더 만들 수 있는 셈이다.

<그래픽=김성화 기자>   ©중기이코노미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국정과제 최우선 순위로 등장한지 이미 오래됐다. 또 저성장에 따른 내수침체가 계속되는 현실에서 일자리를 만들고, 경기를 회복하기 위해 유효한 전략은 수출이 아니라 소비, 즉 내수시장 확대다. 수출주도 중심의 전략을 폐기하는 것과 함께 소비가 살아날 수 있도록 가계에 돈을 집어넣어야만 일자리도 생기고 경제도 살아난다는 얘기다.

소비확대에 따른 취업유발 효과에 대해 중소기업연구원의 홍성철 박사는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소비가 GDP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당연한 것”이라며 “내수 비중이 높은 해외의 경우 소비가 70% 이상을 차지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투자와 고용을 통해 소득을 증대시켜 소비로 내수를 살리고, 다시 투자와 고용으로 연계하는 선순환이 효과적인 대안일 수 있다는 말이다. 내수시장이 작다는 전제하에 해외시장에만 목을 맬 것이 아니라, 내수시장 확대를 위한 고민이 더 필요한 시점이다.

대기업 고용 기여율은 중소기업의 1/5 수준도 안돼

국민경제 성장을 위해 수출중심 산업정책을 내수중심으로 전환하고 이와 함께 대기업 편중의 산업정책 또한 폐기돼야 한다. 통계청 광업·제조업조사 자료에서 제조업 종사자 수 증감분에 대한 기여율을 보면, 중소기업의 기여율은 2000년에서 2009년 사이 128.7%, 대기업은 같은 기간 -28.7%다. 같은 기간 100명의 제조업 종사자가 늘었다고 가정하면, 중소기업이 128명을 고용하는 동안 대기업은 오히려 28명이 줄었다는 것이다. 이후 2010년에서 2014년 사이 5년 동안 대기업 제조업의 고용증가 기여율은 19.7%로, 중소기업 고용증가 기여율의 1/5 수준에도 못 미쳤다. 대기업의 투자 상당부분이 해외직접 투자로 진행되는 현실에서 대기업 편중의 산업정책을 계속 고집한다면, 국내 일자리는 계속해서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종합하면 우리나라 경제규모를 키우기 위해서는 부가가치를 생산해야 하고, 더 많은 부가가치 생산을 위해서는 수출보다는 소비를 진작시키는 것이 효과적이다. 또 고용유발 효과도 소비가 수출보다 크다. 2012년 기준 내수의 86%를 담당하는 중소기업에 대한 획기적인 지원을 통해 더 많은 고용을 창출해야 한다. 투자→고용→생산→소비→투자→고용으로 순환되는 선환의 산업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결국 대기업 수출주도 중심에서 중소기업 내수중심의 산업구조로 전환시키는 것이 저성장 국면에서 탈출할 수 있는 키가 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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