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정부 시절 규제개혁의 골격을 마련하고,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규제개혁은 꾸준히 진행돼왔다. 박근혜정부는 2014년 3월 ‘제1차 규제개혁 장관회의’ 이후 규제개혁을 정부내 최우선 국정과제로 선정하는 등 규제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는 ‘현장·수요자 중심의 규제개혁’으로 포장하고 ‘성과’를 내세우지만, 규제개혁 방향은 특정 산업을 부양하기 위한 정책수단 또는 기업민원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조선대학교 행정복지학부 이민창 교수는 중소기업옴부즈만과 (사)한국규제학회가 5일 주최한 ‘중소·중견기업 규제개혁 오늘과 내일’ 세미나에서 “규제변화를 의미하는 제도개선보다는 산업정책이 목표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으며, 시장질서를 중심으로 개혁하기보다는 불편사항 개선 등 기업민원 중심의 개혁이라는 비판도 있다”고 그동안의 규제개혁 성과를 평가했다.

정책 추진개혁과 생계형·민원형 규제개혁이 충돌한다

조선대학교 이민창 교수는 ‘규제개혁,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라는 주제발표에서 “규제는 법·령·규칙·조례 등에 담겨 그 자체가 복잡하고 이해관계가 얽혀, 개혁은 결코 쉽지 않은 고난도의 머나먼 여정”으로 비유했다.   ©중기이코노미

중소기업옴부즈만에 따르면 지난 2009년 7월 중소기업옴부즈만 개소 후 2821일 동안 550회 현장을 방문하고, 4191명의 기업인과 만나 불합리한 중소·중견기업 규제애로 2463건을 개선하는 등 총 1만2990건을 처리했다.

중소기업옴부즈만은 중소기업인,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관점에서 불편한 규제와 애로를 발굴, 개선하기 위해 중소기업기본법에 따라 설립된 정부기관이다. 중소기업옴부즈만은 규제애로 조사분석 및 개선사례를 평가하는 기능도 하고 있다. 중소기업옴부즈만의 원활한 활동지원을 위해 중소기업청 산하에 기재부·행자부·국토부·환경부·식약처·중기청·지자체 등에서 파견한 공무원들로 구성된 ‘옴부즈만 지원단’도 설치·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정부가 이룬 성과가 적지 않지만,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여전히 규제에 따른 어려움을 호소한다. 새로 생기고 또 사라지는 규제들로 인해 정책담당자들은 ‘규제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얘기도 오간다.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중소기업만 규제하는 법률은 없지만, 일반규제에 대해 느끼는 강도는 중소기업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다시말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중소기업은 ‘제도 자체를 바꿔달라’는 요청을 하고 있지만, 중앙정부에 가면 결국 ‘법대로 해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오고, ‘대통령이 지지하는 산업의 규제만 바뀐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이민창 교수는 ‘규제개혁,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라는 주제발표에서 “규제는 법·령·규칙·조례 등에 담겨 그 자체가 복잡하고 이해관계가 얽혀, 개혁은 결코 쉽지 않은 고난도의 머나먼 여정”으로 비유했다. 복잡하게 얽혀 하나의 규제만 풀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며, 사안에 따라서는 정책적으로 추진되는 규제개혁과 생계형·민원형 규제개혁이 충돌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는 얘기다. 게다가 기존규제의 수요자는 이미 시장에 진입해 활동하고 있는 기득권인 경우가 많아, 이들은 기존 규제의 테두리에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성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규제개혁은 민간의 자율과 창의를 보장하면서도, 공정한 시장경쟁이 가능하도록 하는 두 가지 목표를 다 충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픽=채민선 기자>   ©중기이코노미

관료주의, 행정절차가 불필요한 규제의 개혁 막고 있다

이 교수는 특히 규제개혁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규제개혁 주체인 공무원들이 권한을 시장에 뺏기는 것으로 인식한다는 점을 꼽았다.

중소기업옴부즈만이 전국의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규제개혁 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원활한 규제개혁에 가장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행정절차’가 50.2%(중복응답 허용)로 가장 많았다. 이어 ‘법체계(40.6%)’, ‘관료주의(34.5%)’ 순이었다. 이밖에도 ‘지방현실에 대한 이해부족’, ‘규제복잡성’, ‘중앙부처 공무원의 의지부족’ 등도 중요한 요인으로 나왔다.

이 교수는 “규제개혁의 가장 큰 저해요인인 관료주의, 행정절차 등을 타파하는데 힘써야 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이와함께 “규제공급과 품질관리를 위해서는 국회에서도 규제개혁 추진체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와 입법정책처가 순수입법 지원기능만을 수행하고 있다면, 향후에는 규제집행 비용, 규제품질, 규제의 사회비용 관점에서 객관적인 분석과 모니터링을 수행하는 기능도 추가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이날 국무조정실 길홍근 규제혁신기획관은 ‘규제개혁 주요 성과와 향후 방향’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그동안의 규제개혁은 강력한 규제개혁 리더십, 현장·수요자 중심의 규제개혁, 신산업 규제혁신, 전수조사로 일괄개선, 지방규제 혁신 등을 통해 약 17조4000억원의 직간접적 경제효과를 산출했다”고 했다.

이어 “앞으로도 신산업·서비스산업·토지이용 등의 규제혁신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공직자가 적극적인 행정을 했을 때 면책을 해주고, 적극적으로 규제개혁을 했을 경우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한편 ‘인허가 간주제’ 등을 현장에 정착시키는 등 공직사회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허가 간주제는 인허가를 신청한 당사자에게 인허가 여부나 지연사유를 통지하지 않고, 처리기한이 경과되면 인허가가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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