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거래 행위의 가장 전형적인 형태는 대·중소기업간 불공정거래다. 하지만 개인 또는 다중을 대상으로 특정기업이 불공정행위를 행한 사례도 적지 않다. ‘폭스바겐’ 사태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해당기업이 소비자 다중을 상대로 범죄를 저질렀던 대표적인 사례였고, 피해규모도 커 사회문제화됐던 사건들이다. 반면 YBM한국토익위원회가 부당한 약관에 따라 토익시험 접수 후 시험을 포기한 응시자들에게 응시료의 40%만 환불했던 사건에서 보듯이 다수의 소액 피해자가 발생한 일도 있다.

이같은 사건에서 피해자들이 권리구제를 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실손해액을 입증하고, 직접 민사소송절차에 참여해야만 한다. 그러나 소송비용과 시간 등을 고려할 때 손해액이 경미한 피해자에게는 재판의 실익이 없어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 개인적으론 합리적인 선택이다. 현행 민사소송법 체계하에서는 특정기업이 불법을 저질러 다수 대중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에도, 개개인의 손해가 작은 경우에는 민사적 제재방법이 사실상 없다.

<자료=국회, 국가법령정보센터/그래픽=김성화 기자>   ©중기이코노미

소비자기본법에 규정된 소비자단체소송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소송당사자를 소액 다수의 피해자를 대신해 소비자단체로 제한하는 등 소송요건이 엄격해 2008년 시행 이후 2015년까지 단 1건의 소송만 진행됐다. 특히 피해구제 범위 또한 기업의 소비자권리침해행위를 중단시키는 효력만 있을 뿐, 개별 소비자가 손해를 배상받기 위해서는 민사소송절차를 다시 거쳐야 한다. 특정기업의 불법행위로 다수 소액 피해자가 발생한 경우, 소비자단체소송을 통해 개별 피해자가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는 셈이다.

이에 따라 다수 소액 피해자들의 권리구제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집단소송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계속돼 왔다. 집단소송제는 현행법상 인정되는 다수당사자소송제와는 차이가 있다. 집단소송제에서는 피해자들을 포괄적으로 명시하는 반면 다수당사자소송제는 소송절차에 참가한 사람들에게만 판결의 효력이 미친다. 결국 집단소송에서는 포괄적 피해자 전체가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지만, 다수당사자소송에서는 소송에 이름을 올린 피해자들만이 손해배상 대상자가 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이동우 변호사는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집단적 피해자가 발생해 이들을 모아 위임장을 받고, 소송을 제기하는 데만 수개월이 걸린다”며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위임하지 않아도 신청한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으니 피해자 구제에 훨씬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집단소송제를 도입할 경우 피해자를 포괄적으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소송요건을 통해 기준을 정하지 않으면 남소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있다. 현재 시행 중인 ‘증권관련 집단소송제’에서는 증권 거래과정에서 다수에게 피해가 발생한 경우,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진 피해자의 대표당사자가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앞으로 민사소송법 또는 개별법에 집단소송제가 도입된다면 ‘증권관련 집단소송법’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반영한 것이 20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발의한 ‘집단소송법안’이다. 개정안은 다수인의 집단적인 분쟁에서 피해자가 다수이고, 이들의 청구가 법률상 또는 사실상 주요한 쟁점을 공통으로 하는 사건인 경우 대표당사자에 의한 집단소송을 인정한다. 민사소송법 특례로 정한 개정안에 따르면, 50인 이상의 구성원이 법원의 허가를 받아 대표당사자를 선정한 후 소송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또 소송진행 과정에서 최소 소송에 참여했던 피해자 이외의 제3의 피해자도 소송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권리구제 대상자의 범위를 넓혔다.

이동우 변호사는 “현재 논의되고 있는 내용들이 이미 도입된 집단소송제와 기본틀이 유사하다”며 “공정거래 사건에 대한 손배배상액 산정에 통계가 없으면 법원이 산출하도록 하고 있는데, 개별법에 따라 이런 손배액 산정 기준은 달라질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집단소송제를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연계하는 내용도 함께 추진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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