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126개 지점 가운데 25개만을 남겨놓고 101개의 지점을 폐쇄한다는 한국씨티은행의 방침에 맞서, 씨티은행노동조합이 24일 조합원 2596명을 대상으로 파업찬반투표를 실시하기로 하는 등 파장이 커지고 있다. 중기이코노미와 만난 씨티은행노조 김호재 홍보부위원장은 “지난 13일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신청을 했다”며 “조정신청 결과가 예상되는 28일까지 은행측이 폐점방침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태업·총파업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투쟁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국 126개 지점 중 101개 폐쇄 “사실상의 정리해고”

한국씨티은행 노조는 “지방의 지점을 폐쇄하고 직원을 고객센터로 집중시키는 것 자체가 사실상 해고와 다름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기이코노미

씨티은행은 전국 126개 지점 중 101개를 폐쇄하고, 거점별 25개의 통합지점으로 축소 운영한다는 방침을 지난달 27일 발표했다. 지점폐쇄 이후 전화·인터넷·모바일을 포함한 다양한 비대면채널을 활용, 고객 맞춤형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고객가치센터’와 ‘고객집중센터’를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지점통폐합 작업이 끝나면 서울 역삼동 아남타워 씨티폰부서내 고객가치센터(인바운드)는 고객이 전화나 인터넷을 통해 상담을 해오면, 이를 응대하는 업무에 집중한다. 또 서울 창신동 씨티은행 본점 TM부서내 고객집중센터(아웃바운드)는 DB를 통해 고객에게 먼저 접촉해 금융상품 가입 등의 영업을 하게 된다.

지점통폐합을 결정한 이유와 관련해 은행측은 자체 분석한 결과, 고객과의 비대면거래가 95% 이상인 상황에서 고객이 영업점을 방문해 기다리는 수고로움을 덜어주고 장소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최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지점통폐합이 되면 전국 101개 지점에 근무하는 직원 650명의 고용유지 문제로 당장 노사간 충돌이 우려된다. 씨티은행노조에 따르면 650명중 약 50명 정도가 특정지점으로 편입되고, 나머지 600명 정도는 고객가치센터나 고객집중센터에 편입된다. 

은행측은 ‘인적 구조조정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노조 김 부위원장은 “지방의 지점을 폐쇄하면 지방영업점 직원들은 서울로 올라와야 되는데, 특히 여직원의 경우 자녀양육이 거의 불가능해 자연퇴직할 수밖에 없다”며 “직원을 고객센터로 집중시키는 것 자체가 사실상 해고와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노조 “영업점 인력 콜센터 업무” vs 은행 “비대면 새로운 채널”

지난 11일 한국씨티은행 제주지점 앞 1인시위 현장<사진=한국씨티은행 노동조합>

이에대해 은행측은 단순한 콜센터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은행의 한 관계자는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고객가치센터와 고객집중센터는 고객이 비대면으로 금융전문가를 만날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새로운 채널이지 콜센터가 아니다”라며 “단순한 고객상담이 아니라 상품가입 등의 업무도 있어 금융관련 지식이 없거나 금융전문가가 아니라면 해당 센터에서 근무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지점통폐합의 이유로 거론된 ‘비대면거래 95% 이상’이란 은행측의 주장에 대해서 김 부위원장은 “95%는 은행거래에서 입출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많아 나온 수치”라며 “비밀번호 변경, 방카슈랑스 가입, 통장재발급 등의 경우 빈도수가 적을 뿐 대면거래가 필요한데, 이에 대한 대책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어 “대출이나 펀드는 모바일뱅킹으로 가능하지만, 모바일 앱을 이용할 줄 모르는 사회적 약자는 거래하지 말라는 말”이라며 “각 시도마다 1개씩밖에 없는 영업점인 제주 울산 천안 등이 폐점될 경우, 해당지역 고객들은 통합된 영업점을 방문하기 위해 시도를 넘나드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용안정·근로조건 악화 등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은행 방침대로 지점통폐합 이후 2개의 중앙센터를 포함 25개 지점만으로 전국단위의 은행업무 수행이 가능할 것인가도 의문이다. 김 부위원장에 따르면, 전국 각 지점의 창구직원들은 해당 지역주민과 유대관계를 갖고 입출금거래과정에서 파악한 고객의 니즈를 지점내 여신팀이나 WM팀에 소개하는 역할을 한다. 창구직원이 대면거래를 통해 확보한 정보가 은행의 여신이나 자산관리위탁으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김 부위원장은 “모르는 사람 앞에서 자산내역이나 심지어 가정사를 얘기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라며 “수입이나 매출현황, 상속절세대안 등 개인적인 상담은 지점에서 지역고객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하면서 생긴 신뢰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대면거래를 통한 고객과의 신뢰구축없이 비대면거래만으로는 은행의 업무수행 자체가 어렵다는 의미다.

서울 중구에 있는 한국씨티은행 본사   ©중기이코노미

또 여신담당직원은 고객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를 찾아가거나,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하고 경조사를 챙기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생긴 유대관계는 은행과의 거래를 존속시키기도 하고, 새로운 거래를 유치하기도 한다. 김 부위원장은 “씨티은행이 타 은행대비 특별히 금리가 낮다거나 하지 않아, 시중은행간 차별성이 거의 없어 대부분 감성영업이 수익의 성패를 좌우한다”며 “유대관계가 단절되면 고객이탈에 수익급감이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 씨티은행노조가 고객을 대상으로 인터뷰한 영상을 보면, 천안지점 A고객은 “씨티은행은 외국계 은행이라 서민들이 처음 거래하는데 거부감이 있었다”며 “다른 은행보다 좋아서 거래했다기 보다는 지점 직원에게 신뢰를 느껴 거래한 것인데, 폐점한다면 비대면으로 거래할 의향은 없다”고 말했다. 또 제주지점 고객인 B씨는 “씨티은행과 관계를 맺어온 건 제주에 연고를 뒀던 지점장과의 관계 때문”이라며 “제주지점을 폐쇄하면 은행을 당장 바꿀 것”이라고 했다. 청주지점 고객인 C씨는 “적으나 많으나 자산을 위탁하는 건데,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전화로 돈을 어떻게 맡기느냐”고 물었다.

전국 각 지점의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점이 폐쇄된다면 대면거래를 통해 확보한 고객 상당수가 이탈할 것이란 예상은 충분히 가능하다. 김 부위원장은 “은행측은 폐점해도 대다수의 고객은 남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전략계획을 세워 실행하고 있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말이 안된다”며 “결국 기존고객들은 20% 정도만 남고, 나머지 80%의 고객은 타 은행으로 이탈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노조는 지점통폐합을 막기 위해 지난 11일부터 폐점대상인 제주지점을 시작으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14일에는 천안·청주지점 앞에서, 20일에는 금융위원회 앞에서, 21일에는 금융감독원과 창원·울산지점 앞에서 하루에 1~2시간 정도씩 시위를 벌였다.

또 시청 및 도청에 ‘한국씨티은행이 폐점하는데, 지역에 하나밖에 없는 은행이 없어지면 주민들이 많은 불편을 겪게 된다. 은행이 사회적 책임을 다 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달라’는 내용의 항의서도 보내고 있다. 현재까지 제주도청과 제주·천안·청주·울산·창원시청에 제출했다. 이밖에 폐점대상 고객과 직원들의 인터뷰동영상을 지속적으로 촬영해 유튜브에 올리면서 지점통폐합에 따른 부작용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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