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국 미술평론가, 종합인문주의 정치비평지 ‘말과활’ 편집위원

하지만 예술가들은 가짜뉴스 제작을 공익이나 사회적 발언을 위한 퍼포먼스로 사용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이런 활동을 하는 대표적인 예술활동 그룹이 바로 ‘예스맨’이다. 이들은 가짜뉴스를 만들고, 가짜 웹사이트를 만들고, 명의를 도용하고, 사칭한다. 이들에게 당한(?) 언론과 기업, 인물은 BBC, 뉴욕 타임스, 세계무역기구(WTO), 다우 케미컬, 뉴올리언스, 맥도널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등 누구나 이름만 들으면 아는 존재들이다.

‘예스맨’이 세상을 고친다

과연 세계적인 언론방송에 명의를 도용해서 출현하는 것이 가능할까? 다시 말해,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 마치 어떤 기업의 관계자인 것처럼 방송에 나와 그 기업의 입장을 발표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그곳도 공신력 높은 BBC 같은 곳에서? 전설로 남을 엄청난 사건이 2004년에 있었다. 바로 예스맨(The Yes Men)이 저지른 일이다.

1984년 12월 인도 보팔에서 미국의 다국적 화학회사의 유해물질이 유출돼 8000여명의 주민이 사망하고 20만명이 호흡기장애, 실명 등 질병에 시달리는 사건이 있었다. 일명 ‘보팔 사건’이라 불리는 이 사건 발생 20주년을 맞아 2004년 12월3일 BBC는 황금시간대에 가해그룹인 다우 케미컬의 대변인 ‘쥬드 피니스테라’와 인터뷰를 했다. 생방송이었다. 이 대변인은 방송에서 보팔사건에 대해서 사과를 하고 중대 발표를 했다. 바로 그 피해자 모두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겠다는 발표였다.

그런데 방송에 나온 다우 케미컬 대변인 ‘쥬드 피니스테라’는 진짜가 아니었다. 예스맨의 앤디 비클라움이 대변인으로 위장해 가짜 인터뷰를 한 것이다. 당연히 두시간 뒤, 회사 측은 반발하며 자신들의 주주들에 대해서만 책임지겠다고 표명했다. 하지만 이 일로 다우기업의 주가는 3.4% 하락했다. 약 2조4000억원 정도가 공중 분해된 것이다. 바로 예스맨이 국제 자본 권력에 대항해 저지른 대표적 행동주의 퍼포먼스다.

예스맨은 ‘예스맨이 세상을 고친다(The Yes Men Fix The World)’라는 구호 아래 앤디 비클라움(본명 자크 세르빈)과 마이크 버나노(또는 이고르 바모스)가 만든 퍼포먼스 그룹이다. 그들은 2000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는데, 주로 그들은 유명 기관이나 기업의 명의를 도용해 행동주의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Re:publica 2014’에서 발표 중인 예스맨, 2014.<출처=위키피디아>

그들은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 관계자를 사칭하기도 했다. 그들은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휩쓸고 지나간 뉴올리언스 시(市)를 재개발하려는 정부 계획에 반발해 미국주택도시개발청(HUD) 관계자로 위장해 공식 석상에서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내쫓긴 시민들과 습지대 보수를 위해 지원하겠다는 발표였다. 그런가 하면, GWBush.com이란 웹사이트를 개설해 자신을 생태 주지사이며 교육대통령이라고 미화시킨 ‘조지 W.부시’의 거짓과 위선, 탐욕을 대대적으로 폭로하기도 했다.

명의도용이 아닌 명의보정(Identity Correction)

예스맨의 가장 우스꽝스러운 사건은 2006년에 ‘서바이버볼(The SurvivaBall)’ 이라는 황당무계한 생존용 장비를 시연하고 홍보한 사건이다.

미국 군수업체 핼리버튼 사에서 기상이변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는 획기적 생존 장치를 개발했다고 발표하고 보도자료를 뿌렸다. 그리고 그것을 시연·홍보하기 위해 ‘서바이버볼’을 회의장에 들고 나왔다. 이 발표도, 보도자료도 모두 예스맨이 주도한 해프닝이었다. 하지만 이 보도자료는 기사화되기도 했고, 보도자료를 보고 ‘서바이버볼’에 대한 문의가 핼리버튼 사로 폭주했다. 회의장에서는 이 우스꽝스럽고 황당무계한 장치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모든 것이 예스맨이 꾸민 일이다.

예스맨은 자신들이 이름을 도둑질하는 ‘사칭’이나 ‘명의도용’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명의보정(Identity Correction)’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우리의 대표라고 떠벌리며 이런저런 못된 짓을 하는 개인이나 단체의 정체를 낱낱이 밝히는 활동을 한다고 말한다. 못된 짓을 하는 개인이나 단체의 실체를 밝혀 우리에게 그들의 본래 이미지를 볼 수 있도록 바로잡는다(보정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스맨은 자신의 행동주의 퍼포먼스를 제 이름 찾아주기란 뜻의 ‘명의보정’이라고 부른다.

그들의 블랙코미디 같은 퍼포먼스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2009년에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전쟁 종식을 선언한 가짜 뉴욕 타임스의 특별판을 뉴욕에서 뿌렸고, 미국 상공회의소 대변인으로 위장해 소동을 벌였다. 2011년에는 스마트폰 업계의 어두운 측면에 관한 게임을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그들의 행동을 예술로 볼 수 있느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스탕달은 예술이 ‘행복에의 약속’이라 했다. 예스맨이 보통 사람들에게 아직 이뤄지지 않은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 행동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들의 활동을 예술의 범주에 넣어도 되지 않을까. 그들의 더욱 유쾌한 반란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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