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원주에는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2014년 5월28일)가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관이자 다른 곳에는 없는 꿈같은 뮤지엄’이라고 소개한 미술관이 있다. 바로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Ando Tadao)의 설계로 8년에 걸쳐 지은 ‘뮤지엄 산(SAN)’이다. 이곳은 독특한 건축과 수려한 자연경관이 있고, 한국의 대표 회화와 판화 그리고 세계적인 조각품들이 전시되고 있어 그것만으로도 이목이 집중되는 미술관이다. 하지만 사실 그곳의 백미는 따로 있다. 바로 아시아 최대 규모의 제임스 터렐 전용 전시관이다. 빛과 공간의 예술가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 1943~)의 작품이 바로 그곳에 있다.

자연이 작품이 되는 공간

제임슨 터렐은 ‘빛’과 ‘공간’을 통해 우리에게 숭고함을 경험케 하는 작가다. 그가 이러한 감성을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어린 시절 퀘이커(Quaker)교의 독실한 신자였던 부모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17세기 영국교회로부터 분리된 기독교의 한 교파인 퀘이커교는 모든 사람이 자기 안에 지닌 신성(神性)만 기른다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는 종교다. 특히 각자가 침묵을 통해 내면의 빛을 볼 수 있게 하려고 침묵의 예배를 드리는 특징이 있다.

터렐은 이러한 부모의 종교성 아래에서 침묵과 정신적 수련을 중요시하는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이런 종교적 교육의 영향이 그의 작품에 스며들어 종교적 숭고미가 작품에서 배어 나오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마치 수련을 하듯 침묵 속에서 오랜 시간 바라보고 경험하며 깊이 숨어있는 자신 안의 신성을 발견하도록 이끄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작품은 단순히 공간에 놓여 있는 이동 가능한 작품이 아니다. 특히 그의 최근 작품은 공간이며, 건축이며, 자연이 되고 있다. 아시아 최대 규모라는 뮤지엄 산의 터렐 전용 전시관에 오직 4개의 작품만으로 구성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전시관은 터렐의 작품에 맞게 건축된 건물로 건물 자체가 터렐의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놓이는 작품이 아니라 건축하는 작품이기에 규모가 큰 4개의 작품만 존재하는 것이다. 여기 있는 4개의 작품은 모두 빛에 의한 작품으로 2개는 자연광을, 2개는 인공조명을 경험하도록 구성돼 있다.

자연광에 의한 작품은 하늘을 향해 뚫려있는 타원을 가진 ‘하늘공간(Skyspace)’과, 하늘과 지평선이 맞닿는 곳으로 뚫려 있는 사각형을 가진 ‘지평선의 방(Horizon Room)’다. 터렐은 타원형으로 뚫린 ‘하늘공간’의 천장과 사각형으로 뚫린 ‘지평선의 방’의 벽에 두께를 없앰으로써 뚫린 곳을 본다는 느낌이 아닌, 마치 평면 LCD 화면이나 얇은 사진의 하늘을 보는 것으로 착각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그 하늘은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인지의 교란이 일어난다. 마치 벽에 걸려있는 마그리트의 하늘 그림을 보는 듯 느끼다가 그 하늘이 진짜 하늘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때 순간적인 인지의 교란이 일어나는 것이다. 바로 착시의 교란이다.

‘하늘공간’과 ‘지평선의 방’은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일상적인 하늘과 지평선을 아주 특별한 작품으로 만든다. 예술이 미메시스(mimēsis, 모방)라고 말한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터렐은 예술을 원본 자체로 제시함으로써 원본의 재현(再現, representation)으로서 예술을 넘어선다. 그는 일상의 자연하늘을 그대로 작품으로 감상하게 만듦으로써 비재현적이면서도 낯설지 않은 현대미술을 완성하고 있다.

빛이 주는 착시의 신비

터렐은 자연 그대로를 예술작품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인공조명을 사용해 신비로운 공간을 창조해 내는 것이 특기다. 밝은 날 진짜 하늘이 작품이 되는 ‘하늘공간’과 ‘지평선의 방’도 특정 일몰시간이나 우천 시에는 인공조명에 의해 신비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스페이스 디비젼(Space-Division)’으로 명명한 이 프로그램은 자연광이 약해지는 시기에 점진적으로 색이 변하는 내부조명을 비춰서 자연광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색채의 감성을 느끼게 한다.

사실 인공조명이 주는 신비로움에 완전하게 빠져들게 하는 작품은 독일어로 ‘완전한 영역’을 뜻하는 ‘간츠필드(Ganzfeld)’와 쐐기모양의 작업을 뜻하는 ‘웨지워크(Wedgework)’라 할 수 있다.

‘간츠필드’는 모서리를 둥글게 한 거대 공간에서 변화하는 조명의 색채가 주는 빛의 충만함과 착시를 경험케 한다. 감상자는 먼저 얇고 거대한 평면 색면종이 같은 곳으로 계단을 통해 들어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큰 공간과 맞닥뜨리며 신비로운 느낌을 받게 된다. 이 공간은 마치 우주 공간처럼 무한히 넓은 느낌을 주며, 비현실적인 상황에 자신이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그곳에서 감상자는 시시각각 변하는 내부조명의 색채와 거리감을 측정할 수 없는 환경으로 인해 여러 가지 신비로운 착시 현상을 체험하게 된다.

‘웨지워크’는 터렐이 오랜 시간 빛을 연구해온 작가의 고민과 열정이 담긴 작품이다. 이 작품은 붉은 내부 조명이 착시현상을 일으켜 내부 공간에 마치 뿌연 안개가 껴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손에 잡히지 않는 광선이 가진 비물질성이 손에 잡힐 것 같은 뿌연 안개의 물질성으로 감상자 앞에 드러나는 것이다. 당연히 이건 환영일 뿐이다. 그 어디에도 뿌연 안개는 존재하지 않는다. 터렐의 빛에 대한 집요한 연구가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제임스 터렐 작품의 완성은 단순히 놓여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감상자가 바라보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아마도 감상자가 그의 작품 안에서 침묵의 명상을 통해 자신 안에 있는 신성을 발견하는 것이 그의 작품이 완성되는 순간일 것이다. 그래서 터렐의 작품을 완성하는 것은 어쩌면 감상자일 줄도 모른다. 기회가 된다면 뮤지엄 산에서 제임스 터렐 작품을 감상(체험)하길 강력히 권한다.[안진국 미술평론가, 종합인문주의 정치비평지 ‘말과활’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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