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2015년 11월 유엔 ‘조약감시기구’로부터 인종·성별·성적지향 등이 포함된 일반적인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또 유엔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위원회’, ‘여성차별 철폐위원회’, ‘아동권리위원회’, ‘인종차별 철폐위원회’는 우리나라가 가입 및 비준한 여러 규약에 규정된 차별금지조항을 국내법으로 전환하라고 우리 정부에 권고했다.

유엔 각종 기구들의 잇따른 권고는 우리 법에 차별금지조항이 없기 때문인가? 아니다. 황수옥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이 최근 국회에서 열린 ‘차별없는 노동시장 어떻게 만들 것인가’ 토론회에서 제시한 자료를 보면, 헌법을 비롯해 근로기준법, 국가인권위원회법, 기간제법, 파견법 등 많은 법률에서 차별금지규정을 두고 있다. 그럼에도 유엔의 법제화 권고가 잇따르는 이유는 이처럼 많은 법률에서 개별적으로 차별금지규정을 두고 있어 실효성이 없기 때문이다.

황 연구위원은 “모집·채용시 차별은 직업안정법, 임금·근로조건·인사상차별·정년·퇴직·해고시 차별은 근로기준법 및 기간제법·파견법에서 규율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법은 고용전반의 차별금지 등을 개별법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많은 법률에서 개별적으로 차별금지규정을 두고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따라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이미지 출처=이미지투데이>

차별행위 존재를 입증하는 방식도 각각 다르다. 남녀고용평등법 및 비정규관련법은 차별행위 존재에 대해 사용자의 입증책임을 명시하고 있지만, 장애인차별금지법은 피해자와 가해자에게 입증책임을 배분하고 있다. 여타 다른 법들은 입증책임에 대한 규정이 없다.

개별법에 규정한 차별금지규정은 피해구제도 어렵게 한다. 차별구제 관할기관이 보통 인권위나 고용노동부라 생각할 수 있지만, 교육부에서 담당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 근로자들이 이를 파악해 피해구제에 나선다는 것이 쉽지 않다. 또 대부분의 법들이 사용자에 대한 제재·처분만을 명시했을 뿐, 차별행위로 인한 피해자의 손해배상 기준도 없다. 기간제법에만 차별로 인한 피해액 3배이하 배상액을 명시했을 뿐이다.

황 연구위원은 “법률의 차별금지규정은 피해자를 구제하고 차별하는 사람을 제재함으로써 실효성을 확보하는게 중요한 핵심인데, 국내법상 차별금지 조항들은 개념조차도 중구난방”이라며 “피해자도 간접차별인지 직접차별인지 알 수 없으며, 어느 법을 보고 어느 기관을 찾아 그 피해를 얘기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개별법에 따라 관할기관이 달라지는데다, 구제제도도 굉장히 복잡해 피해자가 이를 활용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했다.

이에따라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그럼에도 지난 17대 국회부터 19대 국회까지 꾸준히 입법이 시도됐지만 입법화되지 못했다. 황 연구위원은 “19대 국회에서 성적지향을 문제삼은 일부 극단적 보수기독교 및 단체들의 항의가 거세지자, 차별금지법안 자체를 철회한 경우도 있다”며 “사회적 합의를 통해 어떻게 실질적으로 도입할 것인지 조율을 해야 할 시기”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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