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수출계약서를 작성할 때는 용어사용에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유사한 단어라 할지라도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무법인(유)율촌 중국팀 변웅재 변호사는 8일 한국무역협회가 주최한 ‘중국 수출 제대로 알기 설명회’ 자리에서 “과거와 비교하면 중국의 사회·법률제도가 많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정비되지 않은 부분이 있어 분쟁이 생기면 의존할 것은 계약서뿐”이라며 “계약은 반드시 서면으로 작성하고, 권리를 구체화하는 등 계약서 작성에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래픽=이가영 기자>   ©중기이코노미

국제계약에서 계약서의 의미는 특별하다. 계약 당사자간 합의내용을 명백히 함으로써 문화나 언어 등 해석차이로 차후 발생할 수 있는 분쟁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당사자간 별 문제없이 거래가 진행될 경우 계약서의 중요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계약서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결정적인 근거가 되기 때문에 계약서에 사용하는 용어를 보다 정교하게 작성할 필요가 있다.

중국기업과 계약서를 작성할 때 우리 기업들이 가장 간과하는 것이 용어의 뉘앙스다. 동일한 한자문화권인 탓에 유사한 한자가 많지만, 법률적 해석은 전혀 다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중소기업의 경우 법률적인 해석대신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거액의 손해배상을 하거나 심한 경우 사업을 접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게 변 변호사의 설명이다.

대리상과 판매상은 법적지위와 책임이 다르다

대표적인 게 ‘대리상(代理商, Agent)’과 ‘판매상(经销商, Distributor)’ 개념이다. 대리상과 판매상을 혼용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법적지위와 책임은 다르다. 대리상은 단순히 제조업자의 대리인으로 상품에 대한 소유권을 취득하지 않고 제품의 ‘위탁판매자’로서 판매대금의 일부를 수수료 형태로 가져간다. 반면 판매상은 제조업자로부터 상품을 매수하는 방법을 통해 자기 자금으로 상품에 대한 소유권을 취득한 뒤 재판매해 수익을 얻는다.

제품이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지 미리 시험해보기 위해 다수의 국내기업이 활용하는 게 판매상이다. 문제는 두 용어를 헷갈려 계약서에 표기하는 경우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국내기업이 판매상과 계약하고 물건을 판매했지만, 용어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해 계약서에 ‘대리상’이란 용어를 썼다고 하자. 이 경우 물건을 사기로 했던 최종수요자가 물건을 사지 않거나, 제품을 수령하고 대금을 주지 않는 경우에도 대리상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 법적책임과 관련해 판매상은 매도인의 지위로 매수자에 대해 직접 책임을 져야하지만, 대리상은 말 그대로 대리인에 불과해 매수자에 대한 책임이 없기 때문이다. 상품의 A/S책임 등도 원칙적으로 매도자에게 있다.

법무법인(유)율촌 중국팀 변웅재 변호사는 “계약은 반드시 서면으로 작성하고, 권리를 구체화하는 등 계약서 작성에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기이코노미

‘협의(协议)’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협의’란 표현은 중국 계약서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용어 가운데 하나다. 투자협의서, 제품매매협의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한국기업은 보통 협의를 ‘논의(discussion)’와 비슷한 개념으로 생각한다는 게 변 변호사의 말이다. 어떠한 사안에 대해 양측이 의견을 나누는 과정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 협의는 ‘계약(contract)’이나 ‘약정(agreement)’의 개념에 가깝다.

예컨대 한국기업이 중국기업에 보내는 물건에 문제가 생기면 ‘협의’를 통해 바꿔준다고 계약서에 명시돼있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한국기업은 양측이 대화를 하되, 한국기업이 물건을 바꿔줄 수 있는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중국기업은 당연히 바꿔주기로 약속한 것으로 이해한다. 사소한 차이처럼 보이지만 분쟁이 발생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따라서 중국기업과 계약하는 경우 ‘협의(协议)’는 ‘계약’의 의미로 이해하고, 한글본 계약서에도 ‘계약’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

이밖에 매매계약시 ‘담보(担保)’ 또한 한국에서는 통상 물적담보를 말하는 경우가 많지만, 중국은 보증과 같은 인적담보를 포함한다. ‘해제(解除)’의 경우도 한국과 해석이 다르다. 한국에서 계약해제는 계약 당시로 소급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을 말한다. 장래 일정한 시점 이후의 계약채무를 소멸시키는 해지와는 구별된다. 그러나 중국은 해제와 해지의 의미를 모두 포함해 ‘해제(解除)’로 사용한다. 계약종료시 개념을 구별해 사용할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변웅재 변호사는 “계약서를 제대로 작성하지 않은 경우, 독자적인 개척 능력을 상실하는 등 최악의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면서 “계약체결 단계부터 자사의 목표를 설정하고 서류에 반영해, 계약서를 전략적으로 작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