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협치(協治)’를 말한다. 화합하여(協) 다스리는(治) 것 또는 협력해서 문제를 풀어간다는 의미다. 말뜻 그 자체만을 놓고 보면, 협치에 반대할 이유도 명분도 없다. 그러나 ‘화합’하거나 ‘협력’해야 하는 대상을 구체적으로 특정하면 사정이 좀 달라진다. 예컨대 재벌대기업의 불공정거래 또는 정경유착은 청산의 대상이지, 협치라는 미명하에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협치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협치가 정당성을 갖기 위해선 협치를 통해 얻고자 하는 목적이 정의(正義)와 부합해야 한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와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청문보고서 채택여부를 둘러싸고 여야간 대치국면이 계속되고 있다. 대다수 언론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나타난 양 후보자의 ‘흠결’이 갖는 경중(輕重) 또는 의미에 대한 판단없이 ‘협치’만을 주문하고 있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또한 ‘협치’의 틀에 스스로를 옭아매고, 야당과의 물밑협상을 계속하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 지명철회와 연계한 양 후보자에 대한 동의 시나리오가 끊이지 않는 것도 민주당이 ‘협치’의 끈을 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김상조 후보자가 아직 후보자 꼬리표를 떼지 못한 유일한 ‘흠결’은 김 후보자 부인의 고교 영어강사 특혜채용 의혹이다. 청문회 자리에서 김 후보자는 “2013년 채용됐을 때는 경쟁자가 없었던 걸로 안다”며 “경기도교육청이 실시하는 시험에 합격해, 교육청이 배정하는 학교에서 똑같은 업무를 수행해 자격을 갖춘 것으로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말 그대로 의혹이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김 후보자의 부인을 포함 특혜의혹 관련자들을 검찰에 고발함으로써 김 후보자에 대한 거부입장을 분명히 했다. 재벌개혁에 대한 양당의 반대입장은 너무나 분명하고, 김 후보자가 재벌개혁론자임은 공지의 사실이기에 양당의 이같은 행보는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문턱을 넘어 국회 인준표결로 나아가지 못한 이유 또한 특별히 놀랍거나 이상하지 않다.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사건에서 9명의 재판관중 유일하게 김 후보자만이 기각의견을 낸 것에 대해 한국당과 바른정당이 색깔론을 제기한 것은 예상된 수순이었다. 이에 대해 김 후보자는 “민주주의야말로 바다와 같아서 다양한 생각들을 포용해 가는 것을 그 제도의 본질”이라며 양당의 색깔론을 정중하면서도 단호하게 반박했다. 박정희정권의 공화당, 전두환정권의 민정당에 뿌리를 둔 이들 양당에게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김 후보자의 감수성을 공감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을 굳이 하게 하려는 ‘연목구어’와 다르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추가경정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협치가 필요하지만 협치만을 위해 재벌개혁을 포기할 것이 아니라면, 김상조 후보자가 거래의 대상이 될 이유는 단 한가지도 없다. 김이수 후보자를 협치의 수단으로 삼아서는 헌재의 존립 근거인 ‘국민의 기본권 확대’는 공염불이 될 것이고, 문재인정권의 성공 또한 보장할 수 없다. 

새 정부 출범 후 국무총리와 단 1명의 각료만이 야당의 동의 또는 묵인을 통해 후보자 딱지를 뗐을 뿐이다. 이제 줄줄이 이어지는 각료들의 인사청문회도 남았고, 일자리 추경안도 기다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 더불어민주당이 지금껏 가졌던 ‘협치’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하는 한, 야당의 ‘떼쓰기’는 무한반복 될 수밖에 없다. 어차피 한번은 끊어야 할 고리라면, 그 시점은 빠를수록 좋다.

‘가야할 길을 가라’는 요구에 대해, 상당수 언론을 포함 야당은 말한다. 국정농단의 주역이고 불통의 대명사인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무엇이 다르냐고? 분명히 대답하지만 인사를 포함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 대부분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달리 국민적 요구에 터를 잡고 있다는 점이다. 41%의 득표율로 대통령직에 오른 문재인 대통령의 최근 국정지지율은 80%를 훌쩍 넘고 있다. 국정운영에 대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명분없는 발목잡기기 계속되면 될수록 양당은 국민들로부터 괴리돼 설 자리만 없어질 뿐이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스탠스는 예상했던 것이지만, 국민의당의 최근 행보는 이해하기 어렵다. 재벌개혁에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철지난 반공제일주의를 되살리겠다는 것도 아니라면 김상조와 김이수 후보에 대해 토를 달 이유가 없다. 국민의당은 견제와 비판이라는 야당의 존재이유를 말하지만, 정의당이 국민의당보다 야성이 부족해서 양 후보자에 대한 지지방침을 밝히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국정운영에 대한 견제와 비판은 국민적 동의가 전제될 때 설득력을 갖는다는 것은 최근 국민의당 지지율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11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당 지지율은 6.7%로 정의당 7.7%보다 낮았다. 특히 스스로 텃밭이라고 했던 호남에서 국민의당 지지율은 전국 평균보다 1.3%p 낮은 5.4%를 기록했다.

국민의당은 대중정당으로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선택해야 한다. 새 정부에 대해 협력해야 할 것이 무엇이고, 비토(거부)해야 할 지점이 어떤 곳인지. 아무리 양보해도 김상조 후보자와 김이수 후보자는 비토의 대상이 될 수 없고, 공정한 시장과 바다와 같은 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해 협력해야 할 소중한 인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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