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가 ‘세금폭탄’이라 했다. 과세표준 2000억원 이상인 대기업 116개 기업에 대한 법인세율을 현행 22%에서 25%로 3%p 올리는 것을 세금폭탄이라 비난했다. 연간소득 5억원을 초과하는 초고소득자 4만명에 대해 최고세율을 현행 40%에서 42%로 2%p 상향하는 것을 세금폭탄에 비유했다. 이렇게 법인세 및 소득세 과세표준 추가구간을 신설해 확보할 수 있는 세수는 3조7000억원 정도란 게 기획재정부의 추산이다. ‘폭탄’이라 하기에는 법인세 및 소득세를 추가로 부담하는 대상자의 숫자도 미미하고, 확보할 수 있는 세수규모도 그리 크지 않다.

정우택 원내대표가 말한 의도와는 반대로 ‘폭탄’ 수준의 세제개편은 불가피하다. ‘조세정의 실현’이란 당위성 차원을 떠나 빈부격차 확대와 소득양극화 추세를 저지하고, 증가세를 멈추지 않는 가계부채의 뇌관을 제거하기 위해서도 폭탄에 버금가는 증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당장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지원에 필요한 순수한 재정규모만 1년간 3~4조원 내외다.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기초연금 및 장애인연금 인상에만 23조원, 5세이하 아동수당 지급에도 10조3000억원이 소요된다. 무엇보다 국정기획자문회원회가 밝힌 ‘100대 국정과제’ 수행에 추가로 소요되는 예산만 178조원이다. 100대 국정과제 수행을 포기할 것이 아니라면, 정부가 그에 따른 재원마련 방안을 내놓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증세를 하더라도, 대상은 초고소득층과 초대기업에 한정될 것이다. 일반 중산층과 서민들, 중소기업에는 증세가 전혀 없다. 이는 5년 내내 계속될 기조”라고 선을 그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중소기업, 중산층 및 서민의 부담을 고려하겠다는 선의는 이해가 되지만, 증세의 대상과 범위를 못 박은 것은 유감이고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촛불혁명을 통해 탄생한 정권은 더할 나위 없는 시대적 ‘정통성’을 확보했다. 한국 현대사에서 유일하게 지역감정을 극복하고, 전국에서 고른 지지를 받은 ‘국민정권’이다. 또 지난 대선과정에서 자유한국당 후보를 제외한 모든 대선주자가 어떤 방식으로든 증세를 공약했고, ‘복지국가’를 약속했다. 지난 연말 촛불 이후 대선과정 그리고 문재인정부의 출범 과정에서 이뤄진 사회적 합의는 ‘증세를 통한 북지국가’였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많이 벌면 많이 내고, 적게 벌면 적게 낸다는 공평과세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또 그렇게 거둔 세금을 우리사회 공동체 구성원 누구하나 빠짐없이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의 두가지 원칙이 지켜진다면 증세에 반대할 국민은 없다.<이미지=이미지투데이>

조세개편 방향과 원칙 그리고 구체적인 대안도 나왔다. 다만 집권여당이 아닌 정의당 이정미 대표 입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자성해야 한다. 이정미 대표는 24일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은 GDP 18.3%로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5.2%에 비해 6.9%p, 즉 110조원이나 부족하다”며 “정부여당의 부실한 증세방안은 복지공약을 후퇴시키고, 국가채무를 급격히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이 대표는 “복지증세에 대한 책임있는 논의를 위해 여·야·정은 물론, 노사와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국회 차원의 ‘중부담·중복지’ 사회를 향한 복지증세 특위’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정확한 상황인식이고 합당한 지적이다. 이 대표의 말을 풀어쓰면, OECD 평균 수준의 ‘중부담 중복지’ 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1년에 110조원 가까운 세금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당장 북유럽의 ‘고부담 고복지’ 국가로 가자는 것도 아니다. 문재인정부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밝힌 ‘모두가 누리는 포용적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슈퍼리치 증세’, ‘핀셋증세’가 아닌 과감한 수준의 ‘복지증세’가 필요하다고 이 대표가 제안한 것이다.

책임있는 집권여당이 해야 할 말을 이 대표가 대신했다. 헌법에 명시된 ‘납세의무’를 이행하도록 국민들에게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전제는 많이 벌면 많이 내고, 적게 벌면 적게 낸다는 공평과세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또 그렇게 거둔 세금을 우리사회 공동체 구성원 누구하나 빠짐없이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의 두가지 원칙이 지켜진다면 증세에 반대할 국민은 없다. 이른바 조세저항은 국민이 낸 세금을 국민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일부 특권층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강화하는데 사용했기 때문이다.

노후준비를 위해, 혹시 모를 질병에 대비하기 위해 각종 민간보험사에 국민들이 갖다 바치는 돈이 1년에 200조원이다. 노후불안을 해소시켜주고, 국가가 질병관리에 나선다면 200조원 상당의 증세여력이 있다는 얘기와도 같다. 그래서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복지국가 지향’이란 분명한 노선을 밝히고, 그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보다 공고하게 하는 일이다. 또 복지국가에 필요한 재원을 재벌대기업과 초고소득자에서부터 순차적으로 국민 개개인에게 형편에 맞는 세금을 부담해 달하고 요청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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