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운동연구소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동안 우정사업본부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한 근로자 숫자만 75명이다. 같은 기간 산재다발사업장으로 특별관리되고 있는 현대건설(110명), 대우건설(102명), GS건설(101명)을 제외하면 집배원업무가 가장 위험한 직종이란 얘기다.

최근 집배원의 분신자살사건, 과로사로 추정되는 사망사건 등이 잇따르는 것도 집배원의 과중한 업무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노동연구원 이정희 박사가 24일 국회에서 열린 ‘집배원 과로사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발표한 자료에서도 장시간근로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집배원의 건강권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우정사업본부는 부실한 실태조사로 문제를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연 2869시간 근무…한국인 평균 2113시간보다 많아

이정희 박사가 지난 1일부터 10일까지 전국우정노동조합 조합원 2400명중 2077명을 조사한 결과, 회사에서 정한 출퇴근시간은 각각 오전 8시와 오후 6시24분이다. 즉 1일 평균 10시간24분을 근무한다. 그러나 ‘실제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이 언제인가’를 묻는 질문에 각각 오전 7시24분, 오후 6시54분이라고 답했다. 실제 근무시간은 11.5시간, 회사에서 정한 근무시간보다 1시간이 더 길다. 월 22일로 계산하면 239시간(점심 및 휴게시간 제외), 연간 근로시간은 2869시간이다. OECD에 발표한 한국인 평균 근로시간 2113시간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24일 국회에서 열린 ‘집배원 과로사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한 집배원은 “7시에 출근을 해도 8시부터 출근도장을 찍으라고 하고, 저녁 9~10시까지 일해도 7시에 퇴근도장부터 찍으라고 한다”고 밝혔다.   ©중기이코노미

다시말해 우체국이 정한 근로시간 10시간24분 중 식사시간과 휴게시간인 84분을 제외하면 실근로시간은 9시간정도 돼야 한다. 하지만 우체국 직원들이 답한 실근로시간(11.5시간)에 실제 식사 및 휴게시간인 38분을 빼면 약 11시간에 달한다. 또 여기에 조사대상 10명중 8명 이상(86.2%)은 법정한도인 1주 12시간 이상의 연장근로를 월 2회이상 하고 있다.

매일 매일의 장시간근로도 문제지만 휴일 역시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집배원들은 월 평균 2.1일 토요일 근무, 즉 격주 토요일 근무를 하고 있는 셈이다. 토요일 근무시 절반정도는 6시간 이하로 근무한다고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7시간 이상을 근무한다.

또 조사대상자들의 연차발생일은 평균 19.1일이지만, 실제 사용일수는 3.4일에 불과하다. 대부분 ‘동료에게 피해주기 싫어서’(41.9%), ‘업무량 과중 때문에’(39.3%), ‘회사에서 연차를 쓸 수 있는 환경이 안돼서’(9.1%) 등 일상적인 업무과다로 주어진 연차를 거의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정신적 스트레스도 심한 편이다. ‘반복되는 CS교육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가지고 있다는 비율은 70.7%, ‘고객의 과도한 서비스 요구로 인한 업무의 고됨’을 느낀다는 비율은 82.3%, ‘업무시 감정억압이 필요하다’는 질문에는 89.5%가 ‘그렇다’고 답했다. 또 업무시 언어폭력 및 기타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질문에 10명중 7명(69.7%)이 ‘경험이 있다’고 했다.

근로시간, 우정사업본부 실태조사 결과만 양호하다

집배원이 초장시간근로를 하고, 휴게시간 및 휴일을 적정하게 보장받을 수 없는 이유는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근로시간 정상화를 위한 개선조치’에 대해 95.6%가 ‘인력확보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업무량대비 인력부족이 구조화된 이유중 하나는 우정사업본부가 시행중인 ‘집배부하량 산출시스템’ 때문이다. 지난 2004년부터 추진해 지난해 도입한 집배부하량 산출시스템은 집배원 한명당 적정 배달물량을 과학적으로 산출하는 시스템이다. 이를 통해 배달물량, 이동거리 등 집배업무 총 190개 단위요소를 업무별 표준시간으로 각각 계산해서 1인당 부하량을 산출한다. 문제는 ‘집배부하량 산출시스템’으로 계산된 1인당 집배부하량이 실제보다 낮게 나와 인력을 증원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집배부하량 산출시스템이 적정 업무량을 반영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73.8%가 ‘부적정하다’고 했다. 전국집배노동조합은 지난달 22일 보도자료를 통해 집배부하량 산출시스템에 ▲토요배달업무 ▲배달업무중 도보이동 소요시간 ▲우편물을 배달순서에 따라 자동으로 구분해 주는 순로구분기 이용시 대기시간 등이 반영되지 않았음을 지적한 바 있다.

우정사업본부의 집배원 근로실태에 관한 조사는 고용노동부 등 여타 기관들과 차이를 보인다.<그래픽=김성화 기자>   ©중기이코노미

우정사업본부의 현실인식도 문제다. 이정희 박사는 “이번 실태조사와 2014년부터 2016년에 실시한 노동자건강연구소의 조사 그리고 올해 5월에 실시한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는 유사한 반면, 지난해 우정사업본부가 실시한 실태조사 자료는 다른 조사 결과와 차이가 크다”고 지적했다.

실제 이 박사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집배원의 1일 평균 근로시간은 10.9시간이지만, 우정사업본부의 조사결과는 10.1시간이다. 또 1주 평균 근로시간은 각각 55.2시간과 48.7시간, 월평균 근로시간도 239.1시간과 201.9시간 그리고 연평균 근로시간 역시 2869시간과 2531시간으로 차이가 컸다.

월평균 초과근로시간도 이 박사의 조사에 따르면 65.8시간이고, 우정사업본부 조사결과는 50.1시간으로 15.7시간의 격차가 난다. 우정사업본부 조사에 따른 집배원의 월평균 연장근로시간(50.1시간)은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법정한도(월 52.2시간)에 미달하는 양호한 근로조건이다.

우정사업본부의 실태조사 결과가 이렇게 나오니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올 수가 없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김군현 우정사업본부 우편집배과장은 “우정사업본부 자료는 설문조사가 아닌, 500여개 우체국에서 1만6000명 직원 전체에 대한 통계를 받아 산출했다”며 “집배부하량 산출시스템이 10년이 넘다보니, 정합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제기됐고 작년에 이 부분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명환 전국우정노동조합 위원장은 “우정사업본부는 지급한 시간외수당을 바탕으로 통계를 내고 있다. 집배원들은 무료노동을 강요당하고 있다”며 “실노동시간을 바탕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7시 출근 8시 출근도장, 10시 퇴근 7시 퇴근도장 찍어라”

이날 참석한 한 집배원은 “7시에 출근을 해도 8시부터 출근도장을 찍으라고 하고, 저녁 9~10시까지 일해도 7시에 퇴근도장부터 찍으라고 한다”며 “인력부족에 대한 문제가 나오니까 은폐하거나 왜곡하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특정 관서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우정사업본부는 ‘본인들이 할 일이 없는데 미리 나와서 일하고 있다’, ‘집배원들 사고를 우리가 낸 것이냐’고 말하고 있다. 우정사업본부장은 ‘나는 임기가 끝나면 나가니까 새로온 본부장하고 얘기’하라고 말한다”며 우정사업본부의 태도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한편 김군현 과장은 “토요일 배달의 경우, 최근 5년간 우체국을 통한 배달물량은 줄어드는데 인건비가 5% 올라, 2012년부터 5년연속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며 “휴무를 한다고 하니, 농·수산물 민원이 많이 들어온다. 또 토요일 배달을 안한다고 했더니 우체국 창구에 금요일부터 물량이 떨어진다. 토요일 배달은 수익을 보충하기 위함도 있다. 우리 직장을 지키기 위해서는 희생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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