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만 가입이 가능했던 개인형퇴직연금(IRP)를 오늘(26일)부터 자영업자 등 소득이 있는 모든 취업자에게까지 확대 적용된다. IRP 가입대상이 확대됨에 따라 금융소비자의 편의가 높아질 수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금융권의 실적압박에 따른 불완전판매, 금융실명제 위반 등 소비자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IRP가입, 취업자 증명 서류와 신분증만 있으면 가능

IRP는 취업자가 재직중에 자율로 가입하거나, 이직시 받은 퇴직급여 일시금을 계속해서 적립·운용할 수 있는 퇴직연금제도다. 기존 퇴직급여 일시금 수령자와 퇴직연금제도 가입자를 대상으로 제한했던 범위를 26일부터는 ▲자영업자 ▲근속기간 1년미만인 근로자 ▲4주간 평균 1주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인 단시간 근로자 ▲퇴직금제도 적용 재직 근로자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립학교직원연금, 별정우체국연금 등 직역연금 가입자까지 확대한다. 이에따라 늘어나는 대상자만 730만명에 이른다. IRP가입을 위해선 취업자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와 신분증만 있으면 된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월 IRP 가입대상을 확대하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고, 4월 국무회의를 통해 심의·의결했다. 이후 시중은행들은 IRP 확대 시행에 앞서 사전예약자들을 모집했다. 이 과정에서 은행들 간의 실적경쟁에 따른 부실판매 우려가 커지고 있으며, 그에 따른 피해는 소비자와 금융권 직원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제대로 된 상품설명을 듣지 못하고 가입할 가능성이 높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B국민은행지부 박홍배 위원장은 26일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은행권에 있어 금융상품 대상확대나 신상품 출시에 따른 실적압박은 항상 존재하며, 이번 IRP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며 “당국의 승인을 받았다고 하지만, IRP가 정기예금뿐만 아니라 보험·펀드 등 선택에 따라 운용수익을 얻을 수도 있고 당연히 손실위험도 있다. 이에대해 소비자가 정확하고 자세한 설명을 들어야 하지만, 실적경쟁 과열과 사전예약을 통해 제대로 된 상품설명을 듣지 못하고 가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특히 박 위원장은 “KB국민은행의 경우 본사차원에서의 압박은 없었지만, 지점별, 지역본부별 자체적인 실적압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여타 은행의 경우 이미 IRP에 대한 실적을 강요하는 행위가 있었던 것이 드러났다”며 “지부는 지난 14일 금감원에 IRP에 대한 특별감사를 요구했다. 사전예약으로 인한 문제점이 존재하는 만큼, 이에 대한 실질적인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방지하자는 차원에서 요구한 것”이라고 밝혔다.

“금감원에 IRP에 대한 특별감사를 요구했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우리은행의 경우 영업확대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지점별 하루 150만원 이상의 가입예약을 받도록 할당하고, 매일 가입자 실적을 보고하도록 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 KB국민은행 일부 지역본부가 소관 영업점에 직원별로 50개의 IRP 신규계좌를 개설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내려보내기도 했다. 이에따라 지난 21일 금융감독원은 각 은행의 감사부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IRP 가입 대상 확대를 앞두고 공격적인 영업으로 불법행위를 하지 않도록 유의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사전예약을 통해 실명제 위반의 우려가 높은 방문판매를 사실상 허용하는 점도 문제다. 박 위원장은 “금융회사 직원에 대한 감사의 경우, CCTV까지 확인하며 소비자가 누구에게 설명을 들었나를 확인할 정도로 감사수준이 높다”며 “실적경쟁에 따라 친인척이나 거래업체 등 주변지인들에게 영업을 하고 사전예약을 하도록 할 경우 소비자가 은행창구를 방문해 상품설명을 듣는 것 보다 제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암묵적으로 실적을 채우기 위해 자신이나 가족과 친지 등의 명의를 빌려 계좌를 개설하는 경우가 있고, 금융실명제 위반 문제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