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조선·해운업이 친환경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면, 또 다른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영무 한국선주협회 상근부회장은 28일 국회에서 열린 ‘글로벌 해운강국 도약을 위한 국회 정책세미나’에서 “한진 파산 이후 컨테이너업계가 위기를 겪고 있지만, 환경규제도 생각해야 한다”며 “현재 조선·해운업계는 선박평형수관리(BWMS)협약, 황산화물(SOx) 배출규제, 저탄소정책 등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2020년 이후에 위기가 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경고했다.

중국은 ‘China Shipping’의 ‘OOCL’인수, 일본의 경우 ‘NYK’와 K-Line’ 그리고 ‘MOL’ 등 3개 컨테이너선사가 통합을 통해 구조조정과 함께 대형화를 추진하며 경쟁력을 높이고 있는 반면, 한국은 선복량 세계 7위였던 한진해운이 파산하며 추격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김 부회장은 “한진해운 파산으로 국내화주들은 해외선사 물류네트워크에 기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시행까지 2년 남은 환경규제까지 더해지면, 조선·해운업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될 것이란 얘기다.

<자료=‘글로벌 해운강국 도약을 위한 국회 정책세미나’ 자료집/그래픽=김성화 기자>   ©중기이코노미

◇BWMS, SOx, 온실가스 등 강화되는 ‘친환경’=BWMS는 유해한 해양생물종과 병원균의 이동을 막기 위해 선박평형수 처리장치를 모든 선박에 의무적으로 탑재하도록 국제해사기구(IMO) 회원들이 맺은 협약이다. 배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싣는 평형수에 포함된 다양한 해양생물이 다른 국가 해안으로 이동해 생태계를 교란시킨다는 문제제기에서 나왔다. 올해 9월8일부터 시행이 예정돼 있었지만, 한국을 비롯한 몇몇 회원사들의 요청으로 2019년 9월8일로 2년 연장됐다.

김 부회장은 “국내 선박들의 선박평형수 처리장치 설치현황을 보면, 국적선 925척중 172척(19%)만이 설치했다. 나머지 753척은 협약이 발효된 시점부터 운항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선박평형수 처리장치 설치를 위해서는 선박규모에 따라 3억원에서 50억원까지 소요된다.

SOx 배출규제도 풀어야할 난제다. IMO는 지난해 10월 해양환경보호위원회에서 일부 선주들의 연기요청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2020년에 SOx 배출규제를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규제가 시행되면 모든 선박들은 황산화물 함유량이 0.5% 이하인 선박연료유를 사용해야 한다(현재는 3.5%까지 허용). 결국 국내 해운업계도 기존 연료를 대체한 저유황유를 사용하거나, 스크러버(Scrubber, 황산화물 저감장치)를 장착해야만 운항이 가능하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비용이다. 한국선급이 올해 1월에 발표한 자료를 보면, 저유황유 공급가는 고유황유에 비해 40~80%정도 높고, 엔진부품을 마모시키는 위험도 크다. 연료를 저유황유로 대체하는 비용에 더해 엔진부품 소모에 따른 교체 및 관리 비용 등 추가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친환경 LNG선도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저장장치나 이중관설비 등 추가로 설치해야 하는 설비비용이 크고, 그만큼 화물을 실을 공간도 줄어든다. 스크러버 설치도 만만치 않다. 김 부회장은 “선박 한척에 스크러버를 설치하는데 200만달러에서 많게는 500만달러의 비용이 들며, 1개월에서 3개월 이상의 설치 소요시간이 필요하고, 국내제품이 없어 해외메이커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IMO는 자료를 수집해 선박의 온실가스 감축 이행시기를 2023년 결정할 예정이다. 이를위해 2019년 1월1일부터는 국제항로를 운영하는 5000톤이상 선박은 연간 연료사용량, 운항거리, 운항시간 등 연료사용에 관한 자료를 의무적으로 수집해 정부나 정부대행 검사기관에 보고해야 한다, 선박평형수 처리장치 규제와 SOx 배출규제 시행이 확실시 되는 가운데 온실가스 감축까지 더해지면 선사들의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28일 국회에서 열린 ‘글로벌 해운강국 도약을 위한 국회 정책세미나’에서는 2020년을 전후로 시행되는 조선·해운업 친환경 규제를 앞두고,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중기이코노미

하지만 EU는 올해 3월 ‘EU해운에 대한 우선정책’을 채택하며 준비에 나섰다. 안전·보건·환경 및 근로조건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일례로, EU는 IMO결정에 상관없이 2020년부터 SOx 0.5% 규제를 EU지역 해변 200해리 이내에 적용하기로 했다. 또 선박연료의 대체에너지 사용을 장려하며, 친환경 선박건조 및 대체연료 시설구축 등에 대한 지원도 확대했다.

김 부회장은 “EU지역 항만의 환경규제를 강화해 경쟁선사 선박의 유럽지역 기항을 제한하고, 반대로 친환경선박인 유럽선박은 타 지역으로의 자유로운 접근을 보장하고자 한 의도가 보인다”고 설명했다.

해외동향으로 보나, 예정된 규제일정을 고려하면 빠른 대응이 절실하다. 무엇보다 조선·해운업계는 금융지원을 가장 원하고 있다. 국내 해운업계가 구조조정에 들어감으로써 국내선사의 국제적 신인도가 하락하고, 이에 따라 선복량도 줄어든 상태다. 당연히 수익도 줄어, 강화되는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내용을 알고 있어도 돈 때문에 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법무법인 광장의 정우영 대표변호사는 “국내 해운선사들이 친환경 선박을 보유할 재정상태가 아니다. 자체적으로 위기를 극복할 능력이 없고, 업종 특성상 높은 부채비율을 보이는데, 수익성 악화로 대출마저 여의치 않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지원내용과 수준을 다양화하고, 정책기관의 투자성 지원을 제안했다. 아울러 부족한 해운업 자금지원을 만회하기 위해 (가칭)‘한국해운진흥기금’ 설립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김태일 실장은 “내년부터 시행되는 외항선박 폐선보조금 적용대상은 선령기준 19년 이상된 선박이 245척이다. 또 선령 19년 이하지만 온실가스 배출등급 D등급 이하인 선박도 164척”이라고 했다. 잠정적으로 당장 지원이 필요한 선박만 409척으로 전체 선박의 1/3이다. 따라서 김 실장은 “정부 국정과제에 포함된 폐선보조금을 친환경선박 위주로 운영해야 하며, 당장 지원이 필요한 409척뿐만 아니라 남은 600여척에 대한 계획도 함께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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